[남정호의 시시각각] 총선용 시진핑 방한 집착의 끝

남정호 2020. 2. 4.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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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성사 위해 중국 눈치보기 극심
선거 전 우한 폐렴 퇴치는 어려워
대북 경제제재 호기 삼는 게 현명
남정호 논설위원

총선을 앞둔 여권으로서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방한만큼 군침이 도는 카드도 드물다. 적이 알아도 막을 방도가 없는 게 최상의 작전이라면 이것만큼 딱 들어맞는 것도 없다. 싸움닭 같은 야당인들, 사드 논란 이후 빚어진 한·중 간 갈등을 씻어낼 빅 이벤트를 무슨 명분으로 반대하겠는가. 시 주석 방한으로 한·중 관계에 온기가 돌면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던 한한령(限韓令)이 사라진다면 손색없는 현 정부의 치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걸림돌이 튀어나왔다. 갈수록 창궐하는 우한 폐렴이 그것이다. 시 주석 방한에 기대를 잔뜩 걸었던 현 정권은 악화일로의 중국 상황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일 기세다. 지난 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중 간 외교 일정과 관련,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게 그 뜻이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 괴질로 하루 수십 명씩 죽어가는데 최고 지도자가 나라를 비울 수 있겠는가. 중국 정부 측은 이번 폐렴이 오는 7~10일 사이에 정점을 찍고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 정부도 그렇게 믿고 싶을 게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은 딴판이다. 홍콩의 전염병 전문가들은 4~5월께 절정에 이른 뒤 6~7월부터 수그러들 것으로 내다봤다. 우한 폐렴보다 전염성이 약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도 2002년 11월 첫 환자가 보고된 뒤 다음해 7월까지 9개월 동안 세계를 휩쓸었다. 전례에 비춰 3월 중 시 주석이 집을 비울 수 있을 만큼 사태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건 무리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시 주석 3월 방한을 어떻게든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돌이켜보면 우한 폐렴 확산 초기부터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은 괴질이 본격화된 지난달 27일, “정부를 믿고 과도한 불안은 갖지 말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내놨다. 비상한 대책은커녕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 다음 날, 청와대는 ‘우한 폐렴’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표기해 달라고 언론에 요구했다. 외신들은 죄다 ‘우한 바이러스(Wuhan Virus)’라고 쓰는데도 말이다. 미국은 지난달 31일부터 2주 내 중국에 갔던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막기 시작했다. 일본도 지난 1일부터 후베이성 체류 이력자의 입국을 막았다. 하지만 우리는 한발 늦은 지난 2일, 일본과 같은 조치를 결정했다.

압권은 지난 2일의 번복 해프닝이었다. 정부는 이날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시간 만에 “발급 중단도 검토 예정”이라고 황급히 말을 바꿨다.

만에 하나 시 주석이 3월 한국에 온다고 해도 이는 시기적으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이때쯤이면 우한 폐렴이 더 기승을 부리면서 대중 감정이 최악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 주석 방한은 한·중 간 화해의 계기로 삼아야 할 중요한 이벤트다. 하지만 중국발 괴질로 국내 피해가 쌓일 경우 반중 시위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화기애애해야 할 분위기에 얼음물을 끼얹는 꼴이 되기 십상인 셈이다. 이뿐 아니라 중국이 시 주석 3월 방한 대가로 큰 선물을 요구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럴 경우 ‘굴욕 외교’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목할 대목은 우한 폐렴의 창궐 자체는 비극이나 사안에 따라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북핵 해결을 위한 대북제재의 관점에선 더없는 호기다. 우한 폐렴은 김정은 정권의 숨통을 죄고 있다. 북한이 중국과의 통로를 막는 바람에 가뜩이나 어려운 외화벌이는 더 힘들어졌다. 그러니 이번 우한 폐렴 위기를 대북 압박정책의 기회로 활용하는 건 어떤가.

‘순천자존(順天者存) 역천자망(逆天者亡)’이라고, 하늘의 뜻을 따르면 살고, 거스르면 망하기 마련이다. 정치적 셈법에 빠져 무리한 외교를 밀어붙였다간 화를 피할 수 없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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