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59] 질병의 민주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입력 2020.02.04. 03:06 수정 2020.04.0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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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최초의 바이러스성 대유행(pandemic)은 1918년에 일어난 스페인 독감이었다. 당시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감염돼 적어도 5000만명이 사망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 속에 다닥다닥 들러붙어 있던 병사들이 바이러스를 공유한 채 비행기를 타고 제가끔 본국으로 돌아가 애먼 사람들에게 옮기는 바람에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스페인 독감 발병 약 40년 후인 1957년 아시아 독감으로 다시 200만명, 그리고 그로부터 11년 뒤인 1968년 홍콩 독감으로 100만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2002년 사스(SARS)와 2012년 메르스(MERS)로 숨진 사람이 각기 1000명을 넘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독감 바이러스보다 독성이 낮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일까? 이번 겨울 미국에서는 유행성 독감으로 이미 8200명이 숨졌다. 미국 독감은 감염자가 1500만명이나 돼 치사율이 0.05% 남짓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을 3% 이상으로 예상한다.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일수록 널리 전파되지 않는다. 독성이 별로 강하지 않을 때는 감염 사실을 모르는 채 돌아다니다 면역력이 약하고 덜 활동적인 사람들에게도 두루 옮겨 때로 훨씬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 우한 정부의 초동 대응에는 논란 여지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수칙대로 차분하게 대응하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21세기 인류의 정보력과 과학 지식은 이전 세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철저한 개인 위생은 기본이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증상이 나타나면 스스로 격리하고 방역 당국에 신고해 지침을 따라야 한다. 투표가 민주제도의 전부가 아니다. 질병을 대하는 자세에도 민주화가 필요하다. 아무리 치명적인 유행병이라도 성숙한 민주 시민을 거꾸러뜨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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