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미폰서 바이러스 나온다" 동남아 해묵은 반중정서 폭발

임주리 2020. 2. 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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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미 스마트폰을 당장 버리세요! 중국에서 온 바이러스가 서버를 거쳐 샤오미 폰을 통해 나옵니다.”

중국 우한에서 귀국한 인도네시아 교민들이 소독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급격히 번지고 있는 음모론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확산하며 곳곳에서 음모론이 나오는 가운데, 인도네시아에선 이번 사태로 해묵은 반중 정서가 폭발했다고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보도했다.

인도네시아는 중국과 경제적으로 아주 밀접하지만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인은 이 나라 인구의 1.2%에 불과하지만 큰 부를 쥐고 있어, 현지인들의 경계심이 상당하다는 것이 FP의 설명이다. 독재자 수하르토가 집권하던 1998년에는 극심한 빈부 격차에서 시작된 분노가 중국인에게로 향해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중국이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무슬림 위구르족을 탄압하고 있단 사실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라서다.

때문에 아직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SNS에선 매일 같이 ‘중국인을 쫓아내라’ ‘화웨이 건물을 피하라’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신종 코로나의 확산을 두고 “중국 공산당 정권이 무슬림을 제거하기 위해 만든 생화학 무기”라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 FP는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중국 기업ㆍ자본의 영향력이 커지는 데 대한 경계심이 이번 일을 겪으며 ‘반중 정서’로 폭발한 것”이라며 "바이러스보다 음모론이 더 문제일 정도"라며 우려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마스크를 쓴 여행객들이 카오산로드를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도네시아뿐 아니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도 신종 코로나로 촉발된 반중 정서가 일고 있다.

중국 밖 첫 사망자가 나온 필리핀에서는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며 '두테르테는 나가라'는 해시태그가 퍼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 580만 명이 다녀간 베트남에서는 "중국인을 받지 않겠다"는 호텔과 식당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VN익스프레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SNS에는 이런 업체들을 지지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중국과의 영토 분쟁 등으로 2014년, 2018년에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일어났던 베트남에서 뿌리 깊은 반중 정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단 평이 나온다.

AP통신은 "말레이시아에서도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하는 청원에 40만 명 이상이 서명하는 등, 동남아 전역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오래된 반중 정서와 결합돼 표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하노이의 한 거리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문제는 동남아 대부분 국가가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각국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단 사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동남아는 신종 코로나 확산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임에도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어 시민들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 정부는 사망자가 나오고 나서야 중국발 외국인의 입국을 잠정 금지했고, 캄보디아에서는 마스크가 공포를 조장한다며 착용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 큰 비판을 받았다는 얘기다.

NYT는 "현지 의료 전문가들은 동남아 각국 정부가 초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하는 동안, 의료 인프라가 선진국보다 미흡한 동남아에서 감염증이 더욱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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