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묻자 어머니는 눈물만.."
-이승만 민간인 학살 보도연맹 70년만에 무죄
-마산에서 보도연맹원 1,681명 학살
-포승줄로 묶어 마산 바다 버린 뒤 총살
-'빨갱이 자식' 낙인, 연좌제 고통까지
-어머니께 아버지 물으니 우시며 '돈벌러 갔다'
-보도연맹 희생자 대부분 언제 죽었는지도 몰라
-진실규명 위한 특별법 국회에서 제동
-자유한국당 반대..친일/독재세력 후예들이 방해
-진실 밝혀내고, 작은 비석이라도 세워드리고 싶어
■ 방송 :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 (창원 FM 106.9MHz, 진주 94.1MHz)
■ 제작 : 윤승훈 PD, 이윤상 아나운서
■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국장)
■ 대담 : 노치수 회장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
◇김효영> 한국전쟁 때 '국민보도연맹원 사건'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보도연맹 사건이라고도 줄여서 부르죠. 당시에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마산 앞바다에 수장되는 등 수 많은 선량한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민간인 학살사건이었죠. 최근에 재심이 진행이 됐는데 검찰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문을 했습니다. 이제서야 그분들의 명예가 회복을 하게 된 겁니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부친을 잃으시고,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 회장을 맡고 계신 노치수 회장,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노치수 회장> 네, 반갑습니다.
◇김효영> 아버님의 명예가 근 70년 만에 회복이 되는 것이죠?
◆노치수 회장> 그렇습니다. 햇수로는 70년 만이고 소송을 한 기준으로 햇수를 보면 7년 만입니다.
◇김효영> 재심 소송이 7년이나 걸렸군요?
◆노치수 회장> 네, 그렇습니다.
◇김효영> 먼저, 얼마나 많은 분들이 억울하게 끌려가서 목숨을 잃으셨는지 그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노치수 회장> 1950년 한국전쟁이 나기 전 이승만 정부에서 좌익사상이나 정권에 반대했던 많은 사람들을 교화시킨다는 그런 측면에서 보도연맹을 결성을 했는데, 실제 거기에 가입했던 사람들은 거의 좌익 사람들은 가입을 하지 않고 일반 국민들이 강제로 상당히 가입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나니까 마산 강남극장이라든지 이런 데서 교육이 있다고 해서 불러서 가둬놓고 마산교도소에 집어넣게 됐죠. 1,681명입니다.
◇김효영> 1681명.
◆노치수 회장> 그 사람들 대부분이 2009년도에 진실규명 책자에 보면 4차례에 걸쳐서 괭이바다, 그러니까 거제와 진해와 원전 앞바다 그 사이에 수장시킨 걸로 그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김효영> 배에다가 싣고 서로 꽁꽁 묶어서.
◆노치수 회장> 4~5명씩 그리고 7명씩 포승줄에 묶여서 얼굴에 사람을 못 알아보게 페인트칠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괭이바다에서 밀어 넣고 총을 난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효영> 바다에 빠뜨려놓고 위에서 총을 난사했다?
◆노치수 회장> 네, 그 중에 한 두 분이 중간에 도망가서 살았던 분도 계셨고, 물에 빠져서 포승줄이 끊기는 바람에 수영을 해서 부산에서 가서 오랫동안 숨어 살았던 분의 증언에 의하면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효영> 참으로 참혹하게.
◆노치수 회장> 그렇습니다. 너무 참혹하게 그렇게 많이 죽였죠.
◇김효영> 선친 함자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리고 어쩌다 보도연맹에 가입을 하셨는지 알고 계십니까?
◆노치수 회장> 노상도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마산에 있는 성호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동래중학교. 일제시대 때는 중학교가 5년짜리였습니다. 그 때는 학생독립운동이, 학생들이 상당히 많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김효영> 맞습니다.
◆노치수 회장> 아버지는 주모자로 활동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당시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그러다보니까 일본인 교사들이 저 학생은 저렇게 두면 안 된다, 이렇게 해서 일본 풍전중학교로 전학을 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효영> 일본으로.
◆노치수 회장> 네. 완전히 떼어놨죠.
◇김효영> 독립운동을 주도하니까.
◆노치수 회장> 네, 그래서 풍전중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학생운동을 일본에서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들었습니다. 그때 일본 동경에서 상당히 학생운동이 일어나고 그런 걸로 알고 있거든요.
◇김효영> 그런데, 한국에 와서 어떤 일을 하다 보도연맹에 가입을 한 겁니까?
◆노치수 회장> 마산중학교, 지금은 마산고등학교. 거기서 선생을 하셨는데, 해방이 되고 미군정이 들어오고 또 이승만 단독정부가 서고 이럴 때 단독정부 반대를 외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이 되셨죠. 구속이 돼서 1년 조금 넘게 살고 나오셨는데 나오자마자 보도연맹 가입해라, 그렇게 됐죠.
◇김효영> 강제로 가입이 되신 거군요.
◆노치수 회장> 그렇죠. 그리고 전쟁이 나니까 부역하러 나오라 해서 쌀 소쿠리 들고, 삽 들고 부역하러 나갔는데 그 길로 행방불명이 돼 버린거죠.
◆노치수 회장> 당시 아버님은 우리나라 나이로는 39세 이고, 어머님은 34세였고.
◇김효영> 어머니께서 자제분들을 혼자서 키우셨겠군요.
◆노치수 회장> 그렇습니다.
◇김효영> 형제가 어떻게 되십니까?
◆노치수 회장> 3남 1녀죠. 제 위에 형님이 계시고 제 밑에 유복자인 동생이 있고 제 위에 또 누나가 있습니다.
◇김효영> 아버지 없이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노치수 회장> 제 형님 같은 경우는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서, 마산고등학교를 졸업 했는데 사관학교를 가려고 하니까 연좌제 때문에 못 갔죠. 저희들은 몰랐는데 파출소에 집안에 대한 내역에 다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나 봐요. 전국 유족회에 가보면 '나도 연좌제 걸려서 상당히 곤욕을 치렀다'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거든요.
◇김효영> 이승만 정권에 의해 아무런 잘못 없이 잡혀가 죽임을 당했는데, 자식들까지 빨갱이 낙인을 찍은 겁니다.
◆노치수 회장> 저희 유족 중에서 보면 유독 해병대 출신이 많습니다. 또 월남 갔다 온 분들이 꽤 많아요. 왜 그런가하면 부친이 보도연맹으로 당하시고 가족들이 빨갱이 낙인을 당하니까,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간 겁니다.
◇김효영>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힘든 월남전 참전도 하고 해병대 같은 곳에 갔다는 말씀.
◆노치수 회장>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김효영> 노치수 회장님도 많이 힘드셨겠죠. 당연히.
◆노치수 회장> 제가 3살 때 아버지가 그렇게 되셨고. 저는 아버지 얼굴을 전혀 모르니까 살다보니까, 저뿐 아니라 전부 다 아버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을 했죠.
◇김효영> 당연히.
◆노치수 회장>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다니고 그럴 때 보니까 문득 우리 아버지는 어디 가셨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머님한테 어느 날 물어봤죠.
◇김효영> 그랬더니?
◆노치수 회장> 어머니한테 아버지는 어디 가셨냐니까 그냥 눈물을 글썽글썽 하면서 아버지 돈 벌러 갔다고만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 저도 곰곰이 생각을 하니까 어떤 문제가 있었구나라고만 막연하게 생각을 했죠.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제가 성장을 하고 나니까 주위에서 제가 잠시 집에 고향에 있을 때 '당신 집안은 절대 공무원하면 안 된다. 하지마라'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아버님이 그렇게 됐다는 걸 2005년도에 노무현 정부 시절에 진실화해위원회가 생기고 진실규명 신청을 했죠. 하고 나서 아버지가 그렇게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당시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렸죠.
◇김효영> 그래서 공직은 생각도 안 하셨겠네요?
◆노치수 회장> 그렇죠.
◇김효영> 실제로.
◆노치수 회장> 실제로 전혀 공직을 생각하지 않고 대기업에 들어가게 됐고. 제가 아버님이 그렇게 됐던 걸 진실규명 하고 저희 어머님도 남편이 어디 가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애타게 아들을 기다리고 빌고 그랬는데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다 돌아가시게 됐죠.
◇김효영> 기일은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노치수 회장> 9월 9일에 지냅니다.
◇김효영> 왜 9월 9일입니까?
◆노치수 회장> 옛날에 마산 진동, 진전, 진북에 보면 죽은 날짜를 모르는 이런 분들은 다 9월 9일로 지내는 것으로 풍습이 그렇게 돼 있는 걸로 알고 저희들도 그렇게 지내고 있죠.
◇김효영> 그래서 그 분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를 진상을 좀 규명을 해보자고 해서 만들려고 했던 것이 '민간인 학살 특별법' 아니겠습니까?
◆노치수 회장> 맞습니다.
◇김효영> 그런데 자유한국당에서 반대해서 제정이 안됐다고.
◆노치수 회장> 그렇습니다. 제가 볼 때는 옛날 친일세력들, 또 일부 독재세력들 이분들이 집요하게 반대를 하는 그런 것 아니겠느냐.
◇김효영> 이승만을 국부로 생각하고 거기로부터 자신들의 정치적인 정통성을 확보하고자하는 세력들?
◆노치수 회장> 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 나이가 대부분 지금 70대, 80대입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알아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들이 외치는데 그 특별법이 법사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김효영> 알겠습니다. 친일 그리고 독재의 후예들이 이승만의 민간인 학살의 진상이 규명되는 것을 막고 있다는 말씀.
◆노치수 회장>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김효영> 알겠습니다. 시간이 벌써 다 됐습니다. 선친의 얼굴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죠?
◆노치수 회장> 네,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김효영> 꼭 해 드리고 싶은 일이나 말씀 있으실 것 같아요.
◆노치수 회장> 조그만 비석이라고 세우는 게 자식 된 도리 아니겠느냐, 라고 생각을 합니다.
◇김효영> 아버님의 묘소를 만들어서 조그만 비석이라도 세워드리고 싶다.
◆노치수 회장> 네, 그렇습니다.
◇김효영> 모친께서도 억울한 마음을 안고 가셨겠군요.
◆노치수 회장> 전혀 남편이 어떻게 되고 어떤 사연인지도 모르고 돌아가셨죠.
◇김효영> 그러니까 자식 된 도리로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고 싶고 그래서 작은 묘비라도 세워드리고 싶다는.
◆노치수 회장> 네, 그렇습니다.
◇김효영> 그 바람은 꼭 이뤄지길 바라고요.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로 생각을 합니다.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하니까요.
◆노치수 회장> 네, 감사합니다.
◇김효영> 좋은 결과가 있기를 저희도 함께 기원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노치수 회장> 네, 감사합니다.
◇김효영> 지금까지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 노치수 회장과 함께 했습니다.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BS 시사포커스경남] obsh@cbs.co.kr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검사책무는 수사"라는 尹.."수사 아닌 법률전문가"라는 秋
- '무사증 중단' 중국서 항공기 5대 제주왔지만 탑승객은 55명뿐
- 태국서 온 16번 환자 역학 조사..감염경로 아직 불확실
- 정부 "중국外 국가 입국제한 아직 검토 안 해"
- 신종코로나 16번째 확진자 남편 '광양' 근무
- '신종 코로나' 의심증세 129명 검사 중..접촉자 1318명 모니터링
- [아이오와 코커스] 트럼프는 샌더스를 좋아한다?
- 손학규 최측근 이찬열 탈당..교섭단체 무너진 바른미래
- 16번째 확진자 광주서 발생..최대 16일 동선 파악 주력
- 7일부터 '민간의료기관'도 신종코로나 6시간내 진단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