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경제는 심리라고? 경제는 현실이다

김창규 2020. 2. 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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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인터뷰 세계 경제 석학들
한국의 정책 방향에 강한 우려
약한 경제 체질에 코로나 덮쳐
백신도 없는 폐렴에 걸릴 위기
김창규 경제 디렉터

중앙일보는 올해 초부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등 세계 경제 석학을 인터뷰했다. 그들의 통찰력을 통해 세계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한국 경제에 대해선 이들 대부분은 조언이나 쓴소리를 넘어 경고를 쏟아냈다. 이들의 지적은 한국 경제의 난맥상과 맞닿아 있다.

한국 경제 정책에 대해 가장 안타까워하고 많은 공격을 퍼부은 석학은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로 꼽히는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였다. 감세와 규제 완화로 경제성장과 고용을 촉진한다는 주장을 펴는 공급주의 경제학자인 그는 “중국도 시장친화적 정책과 전문가를 영입하는데 한국은 왜 거꾸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투자 위축은 앞으로 경기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다는 증거이자 경기침체의 강력한 징후”라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는 요즘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내내 수출과 내수 부진이라는 안팎의 어려움에 시달렸다. 경제성장률은 2%에 턱걸이했다. 세계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다. 당초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정부가 막판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은 덕에 ‘2’라는 숫자를 간신히 유지했다.

한 꺼풀 벗겨 보면 더욱 암담하다. 서민에게 크게 와닿는 경제지표는 집과 일자리다. 이제 서울 집값은 절반 이상이 9억원을 넘는다. 집값이 폭등했는데도 표정이 밝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주택자는 집을 마련할 기회가 완전히 사라졌다며 땅을 친다. 화들짝 놀란 정부가 보유세를 대폭 올리자 유주택자는 잘못된 정책 탓인데 보유세만 때린다며 원망 섞인 눈으로 정부를 흘긴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정부는 일자리가 회복세를 보였다고 자평한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수는 30만1000명 증가했는데 60대 이상만 무려 37만7000명이 늘었다. 한국 경제의 허리인 30~40대는 오히려 줄었다. 미래를 이끌 청년층(15~29세)의 ‘체감실업률’은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높다. 30~40대는 불안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20대는 침울하다. 60대 이상은 ‘용돈’ 벌어서 좋긴 하지만 아들·딸이 직장을 잃지 않을까, 손자가 일자리를 못 찾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 일자리 예산 23조원을 쓴 결과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서소문 포럼 2/5

이렇게 불안하다 보니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뜻하는 부동자금 1000조원은 유령처럼 시중을 떠돈다. 사상 최대다. 소비는 움츠러들고 투자는 마이너스 행진을 벌인 결과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크레이머 하버드대 교수는 “국가의 부(富)는 국민 개개인의 성향이 아닌 정책으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한국과 북한의 소득 차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국가의 정책이 구성원인 국민을 대박 나게 할 수도 있고 쪽박 차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성장이 아니라 빈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부정적인 지표는 점점 적어지고 긍정적인 지표는 점점 늘어난다”며 자찬한다. 혹시 길을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다른 길은 없는지 다시 생각해 보지 않는 듯하다. 주요 설문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부정평가한 첫 번째 이유가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이다.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성장기에는 큰 탈 없이 잘 나간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혼란기엔 주요 국가보다 훨씬 더 흔들린다. 세계화를 기반으로 고성장해서 수출 비중이 큰 경제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가 “세계 경제가 재채기할 때마다 (한국이) 가장 먼저 감기에 걸린다”고 진단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제 체력이 바닥난 한국 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초토화될 위기에 놓여있다. 감기가 아니라 백신도 없는 폐렴에 걸릴 처지다.

문 대통령은 “경제는 심리”라고 말한다. 한편으론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면은 애써 외면하고 긍정적인 면만 봐서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경제는 현실이다.

김창규 경제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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