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영준 논설위원이 간다] 신종 코로나가 헝클어뜨린 시진핑 조기 방한 구상

예영준 2020. 2. 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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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뒷북 대책과 소극적 자세로
또 불거진 '대중 저자세' 논란
방역과 정치는 철저히 분리해야


한·중 관계로 불똥 튄 코로나 사태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1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 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뒤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우한(武漢)은 중국 대륙의 배꼽이라 불린다. “자고로 형주를 차지하는 자가 중원을 차지한다”던 그 형주가 바로 지금의 우한 일원이다. 우한 외곽에 형주 성터가 있고 지금도 징저우(荊州)란 지명을 쓴다. 삼국지의 백미라 불리는 적벽대전이 우한 지척에서 펼쳐진 건 지리적 조건으로 볼 때 필연이었다.

봉건 중국과 현대 중국을 가르는 신해혁명도 1911년 우창기의(武昌起義), 즉 지금의 우한시 우창구에서 일어난 혁명군의 봉기가 중국 전역으로 퍼진 결과다. 창장(長江) 물줄기가 우한을 통과한 뒤 크게 방향을 휘는 것처럼 중국 역사의 중요 변곡점마다 우한이 등장한다. 역대 지도자들이 우한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마오쩌둥은 창장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다리를 우한에 놓고 그 아래에서 수영을 즐겼다.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나선 덩샤오핑의 첫 행선지도 우한이었다. 이 모두가 우한이 중국 대륙의 배꼽이란 사실과 무관치 않다.

안타깝게도 우한에서 발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확산한 것 역시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우한의 사통팔달 교통 인프라는 창장 수운으로부터 발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항공과 고속철로 중국 대륙을 얽어 놓은 거미줄의 한복판에 있다. 그 거미줄을 타고 바이러스가 중국 전역으로 퍼진 것이다.

3월 전인대 연기론까지 등장

우한의 위기는 시진핑(習近平) 체제에도 최대의 시련이자 도전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힘들게 쌓아 올린 시진핑 국가주석의 리더십과 권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당면한 큰 고비는 3월 초부터 보름가량 열리는 양회(兩會) 즉,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정치협상회의(정협)다.

중국의 2월은 양회 준비에 전념하는 시기다. 춘절 연휴 직후부터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각급 단위별로 인민대표대회를 열어 지난 1년간의 업무실적을 정리하고 통계를 최종 집계하는 한편, 올해 예산 집행 내역을 짜고 3월 전인대에 파견할 대표자를 선발한다. 그런 촘촘한 과정을 거쳐 양회가 개최되는데 2월 내내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이 계속된다면 양회 준비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대표자와 수행원 등 5000명 이상이 베이징 한복판 인민대회당에 집결해야 하는 것도 방역에 큰 부담이다.

중국 외교부는 매일 오후에 시행하던 내외신 브리핑을 춘절 연휴 직후인 3일부터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이 역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사람이 모이는 활동을 최대한 회피하기 위한 조치다. 4일 온라인 회견에서도 연기 내지 취소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화춘잉 대변인은 즉답을 피한 채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것이란 믿음과 능력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중국 외교부는 브리핑 문답 내용을 사후에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이 질문·대답은 삭제했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문혁 기간 등을 제외하고 개혁개방 이후로는 한 번도 양회가 제때 열리지 않은 적이 없다”면서도 “2월 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잡지 못하면 양회 일정에도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쓰촨, 윈난 등 몇몇 지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성(省)급 인민대표대회를 열지 못하고 연기 중에 있다.

지나친 집착으로 일관한 정부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중국 내부 위기로만 그치지 않고 한·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시진핑 주석의 3월 방한을 추진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을 헝클어 놓았다. 당초 코로나 사태가 확산되기 전에는 시진핑 주석의 3월 방한설이 정부 관계자의 전언 등으로 꽤 그럴듯하게 퍼져있었다. 하지만 ‘전인대 연기론’까지 나올 정도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중국 내부 사정을 뒤로하고 시진핑 주석이 조기 방한하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간 일이 되어버렸다. 한·중 양국의 소식통이 전해준 내막은 이러하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해 12월초 서울에 다녀갔다. 12월 하순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사전 조율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고, 이참에 한국 정부는 시 주석의 조기 방한을 요청했다. 이 때 왕부장이 답한 것은 ‘내년 상반기 중 방한을 적극 검토하겠다’는게 전부였다. 12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빠른 시일 내에 시 주석을 한국에서 뵙고 싶다’고 초청했고 시 주석은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시기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한국 정부의 복안은 3월 중 시진핑 주석의 ‘단독’ 방한을 성사시킨다는 쪽이었다. 단독 방한은 시 주석이 4월 초로 예정된 일본 국빈방문 길에 패키지로 들르는 형식이 아니라, 한국만 따로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4월 총선에 시 주석 방한이 호재가 될 것이란 계산이 작용했다. 시 주석이 방한하면 사드 배치에 따른 한한령의 완전 해제 등 선물 보따리를 갖고 올 것이란 기대에서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3월 방한은 처음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로나 사태가 없어도 통상 3월 20일 무렵에 끝나는 양회 일정 때문에 시간상으로 빠듯하기 때문이다. 결국 3월 조기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중국 측의 특별한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춘절 연휴가 끝나는 대로 고위층 인사를 중국에 보내 조기 방한을 설득하고, 중국 측이 ‘적절한 처리’를 요구해 온 사드 문제 논의를 위해 국방 당국 간 협의를 재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던 중이었다. 이런 계획들은 설 연휴를 거치며 코로나바이러스가 급격히 퍼짐에 따라 진행이 어렵게 됐다. 지금 상황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1∼2개월 이내에 진정된다는 전제하에 5월 말∼6월 초 방한을 추진하는 게 성사 가능성이 높은 방안이다.”

“시진핑 방한 자체가 시혜인가”

이런 내막을 감안하면 정부가 방역 대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보여준 소극적 태도나 혼선, 뒷북 논란의 배경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 3일 정세균 총리 주재의 대책 회의 직후 발표한 긴급 대책에 ▶중국인 대상의 관광 비자 중단 ▶우리 국민 대상의 관광 목적 중국 방문 금지 방안을 포함시켰다가 두어 시간 만에 ‘검토 사항’에 불과하다고 정정한 사실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에 꼬리표처럼 붙는 ‘대중 저자세’논란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가 오래전부터 시진핑 주석 조기 방한에 너무 많이 매달리는 모습을 보인 게 문제”라며 “언젠가는 시 주석이 한국에 오겠지만, 그 자체가 큰 시혜를 베푸는 것이란 인식을 심어주게 돼 정상회담을 계기로 줄 것 주고 받을 것을 받는 과정에서 우리의 입지는 크게 약화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의 아픔은 한국의 아픔”이라고 말했다. 국경의 존재를 알 리 없는 바이러스가 한국까지 밀려들고,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어 한국 경제까지 타격을 주고 있는 사정을 표현한 발언일 것이다. 우한에서 발원된 신종 바이러스 사태가 강 건너 불이 아닌 것은 틀림이 없다. 이 사태를 헤쳐 나가기 위해 한국과 중국이 협력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한가지 원칙은 방역이 최우선이란 점이다. 방역에 정치가 개입하면 안된다. 입국 금지 대상 지역을 우한 이외의 지역으로 확대할지 말지를 검토하는 문제 역시 철저하게 방역의 관점에서만 봐야 한다.

■ 과거 전례도 검토 안했나, 성급히 발표했다 무색해진 북한 개별관광

북한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보도.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은 사안이 또 하나 있다. 개별관광 성사를 통해 꽉 막힌 남북 관계에 활로를 뚫겠다는 구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금강산 개별관광 같은 것은 국제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통일부는 설 직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중국을 통한 개별관광을 추진하겠다고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한·미 워킹그룹을 통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의 발언 등 미국과의 불협화음을 불사하고 강한 의지를 보인 구상이다.

하지만 북한이 지금까지 이뤄지고 있던 중국인 관광조차 중단하고 외국인 전면 입국금지 조치를 발표하면서 이 구상은 언제 실현될지 기약할 수 없는 공약(空約)이 되어버렸다. 의료·방역 인프라가 열악해 한번 뚫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이 높은 북한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방역 대책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처음이 아니란 점이다.

북한은 2014년 10월께부터 이듬해 3월까지 6개월 이상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고, 자국 인력의 출입국도 최소화했다. 당시 북한과 국경을 접한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크게 걱정이 없던 아프리카발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북한에 부임하는 외교관조차 2주간 격리한 뒤 증상이 없으면 정상 업무를 하게 했다.

이런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북한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국의 개별관광 제안을 받아들일 북한의 의향이나 준비 태세, 과거 사례에 대한 충분한 검토 과정 없이 정부가 서둘러 발표했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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