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정재의 시시각각] 대통령 방중, 절호의 기회다

이정재 입력 2020.02.06. 00:41 수정 2020.02.06.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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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한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한 찾아 완치 환자와 포옹하라
노무현의 사스 방중에서 배워야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난주 캘리포니아에 다녀왔다. ‘우한 폐렴’이 지구적 재앙으로 발화한 때였다. 인근 샌타클래라에 우한 폐렴 환자가 생겼다. 우한과 상하이를 다녀온 남자였다. 그는 단 두 차례 외출했다. 동네 병원을 찾을 때였다. 그러곤 스스로 격리했다. 혹여 자신이 감염됐다면, 이웃에 옮길까 염려해서다. 결국 그는 미국의 일곱 번째 확진자가 됐다. 샌타클래라 카운티의 보건소장 세라 코디 박사는 “그가 접촉한 사람이 극히 적어, 전염병이 퍼질 우려가 크지 않다”고 밝혔다. 그날 미국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중국을 다녀온 외국 국적자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주요 국가 중 처음이었다.

두 얼굴의 미국이 거기 있었다. 샌타클래라의 환자는 시민다움, 미국적 가치를 보여줬다. 반면 미국 정부의 조치는 ‘미국 우선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중국은 그런 미국을 “독감으로 수천 명이 죽는 나라가 우한 폐렴에 빗장을 걸었다”며 맹비난한다.

일상이 되고 있는 판데믹(지구적 전염병)의 진짜 무서움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공포다. 공포는 인간 군상의 밑바닥을 낱낱이 드러내 준다. 눈물겨운 영웅담이 잠시 곁들여지지만, 대개 비열한 이기주의와 각자도생이 주를 이룬다. 마스크 사재기는 그 민낯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공포는 이웃과 진영은 물론 나라 간 갈등을 키우고 부추기기 일쑤다. 중국을 이웃한 한국은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권마다 역병과 전쟁을 치렀고, 한·중 관계도 달라졌다.

2002년 11월 사스가 중국을 덮쳤고 이듬해 7월까지 대륙은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세계 각국이 주재관·기업은 물론 자국민을 일제히 철수시켰다. 한국은 달랐다. 김하중 당시 주중대사가 쓴 『하나님의 대사』에 따르면 우리 교민들은 철수하지 않았다. ‘사스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성금을 걷어 중국에 전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스 발생 후 국가원수로는 처음 중국을 찾았다. 참모들이 말렸고 중국 정부도 “안 와도 좋다. 이해한다”고 했지만 노 대통령은 방중을 밀어붙였다. 참여정부 시절 중국과의 밀월이 깊어진 데는 이런 ‘플루의 정치학’이 있었다.

플루의 정치학이 순항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역행도 했다. 2015년 6월 이번엔 한국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상륙했다. 홍콩·대만·중국 등 중화권 네티즌은 일제히 한국 때리기에 나섰다. 메르스 접촉자 한국인이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는 이유로 “이기적 한국인” “메르스 수출국”이라고 비난했다. 홍콩 방역 당국은 의료진 교류를 중단했다. 중국 국무원은 ‘한·중 언론인 교류’를 무기한 연기했다. 그것도 하루 전에 “오지 말라, 메르스 때문”이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당시 중국에서 성금을 모았다거나, 의료진을 파견했다거나, 한국을 돕자거나 하는 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았다.

5년 만에 처지가 다시 바뀌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되레 역풍을 맞고 있다. 중국 눈치 보기에 급급해 우왕좌왕, 지지율마저 급락 중이다. 이럴 때 역발상이 필요하다. 과거에서 배워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찾아 정상회담을 갖는 것이다. 시진핑의 4월 전 방한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여기 매달렸다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다. 반면 문 대통령의 방중은 여러 이득이 있다. 시진핑 방한=총선용이란 비난을 벗을 수 있고,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주며, 중국인에게 감동 두 배를 선사할 것이다.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란 말의 진정성도 증명할 수 있다. 300만 장의 마스크보다 백배, 천배 효과가 클 것이다. 우리 쓸 것도 없는데 중국만 챙긴다는 국민 불만도 잠재울 수 있다.

대신 시늉으로 그쳐선 안 된다. 진정성이 중요하다. 이왕이면 김 여사와 함께 우한 폐렴 완치 환자와 포옹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 좋을 것이다. 마스크 쓴 중국 서민들과 혼밥을 하는 것도 괜찮다. 손만 잘 씻으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한국 의료진들과 만날 때처럼 마스크를 쓴 채 악수도 하지 않는 것은 곤란할 수 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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