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열이 내렸다, 내가 이겼다" 우한女 '코로나 항쟁 28일'

유상철 2020. 2. 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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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어지럽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사흘 뒤 으슬으슬 한기 느끼며 감기 증상
CT 찍은 뒤 발병 8일만에 확진 판정 받아
치료약 없다는 말 듣고 한때 절망감 빠져
공포와 우울, 걱정 이길 수 있었던 힘은
가족과 동료의 격려와 다른 환자 회복 소식

5일 자정 현재 사망자는 563명을 기록했지만, 병마를 이겨내고 퇴원한 사람은 그보다 배나 많은 1153명에 이르렀다. 최근 퇴원자 수는 매일 증가 추세다. 지난달 26일 두 명에 불과했던 신규 퇴원자 수가 5일엔 261명이나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의 싸움에 중국이 총력전을 펴고 있다. 헌혈에 나선 이의 표정이 밝다. [중국 인민망 캡처]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감독 연구위원인 궈옌훙(郭燕紅)은 퇴원하기 위해선 체온이 3일 연속 정상을 보이고 호흡기 증상에서 분명한 호전이 있으며 흉부 염증이 사라지고 이틀 연속 핵산 검사에서 음성 반응을 보이는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인민일보(人民日報)는 5일 28일간의 싸움 끝에 신종 코로나를 이기고 퇴원한 한 여성의 ‘나의 신종 코로나 항쟁 28일’이란 투쟁기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은 중국공상은행 우한(武漢)지점에 근무하는 양란(楊岚)이다. 그의 말을 따라가 본다.

중국 국무원 연합예방통제시스템은 5일 기자회견을 열고 무증상 감염자의 조기 발견과 격리,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1월 8일(수).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어지럽다. 몸에 힘이 없다. 잠이 부족했나 생각하며 출근했으나 이후 3일 내내 어지럼증세가 계속될지는 몰랐다. 훗날 신종 코로나로 판명돼 입원했을 때 출근한 걸 후회했다. 나와 접촉한 동료 모두가 관찰 대상이 됐다. 모두 무사하기를 기원했다.

1월 11일(토).
몸에 한기가 느껴지는 게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것도 같아 근처 중의(中醫)의원을 찾았다. 검사를 했는데 발열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의사가 약을 지어줘 복용했으나 여전히 으슬으슬 추운 게 계속 한기를 느꼈다.

중국 당국은 신종 코로나 환자를 기존의 경증, 중증, 위중의 세 단계에서 경미와 보통, 중증, 위중의 네 단계로 세분화하기로 했다. 무증상 감염자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 환구망 캡처]


1월 13일(월).
약을 먹은 뒤에도 증상은 이틀 내내 계속되며 가라앉지 않았다. 온종일 어지럽고 전신에 힘이 빠지며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저녁 7시에 우한제1의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가 체온을 측정했으나 역시 발열 증상은 없었다. 신경내과로 안내돼 진료를 받았는데 의사는 증상을 듣고는 입원을 권했다.

1월 14일(화).
아침 일찍 입원 수속을 밟고 CT 검사를 받았다. 한데 별문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돌아갔다.

28일간의 투쟁 끝에 병마를 이겨낸 양란은 가족과 동료의 응원 메시지가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중국 신화망 캡처]


1월 16일(목).
의사로부터 급히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도착하니 바로 마스크를 씌우고는 최근 어디를 갔었냐, 화난(華南)수산시장에 간 적이 있느냐, 누구와 접촉했느냐 등을 잇달아 물었다. 그리고 반드시 병원에 있어야 하며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병이냐고 물으니 의사는 CT 촬영 결과 가슴에 문제가 있다고 대답했다. 놀라서 현재 상황을 집에 연락했다. 무섭고 긴장됐다. 집에서는 별일 없을 테니 안심하라며 위로했다.

1월 17일(금).
의사가 말하길 내가 신형 폐렴에 걸렸다고 했다. 병실을 옮겨야 한다며 호흡 3과 격리 치료실로 데려갔다. 그날 밤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의사가 와 물을 많이 마시라고 권했다. 이제까지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중국 우한의 의료진과 시민이 서로 '힘내자'라며 격려하고 있다. [중국 인민망 캡처]


1월 17일(금)~22일(수).
계속 열이 났다. 높을 때는 40도까지 올랐다. 의사는 현재로썬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고 말했다. 대신 여러 치료를 병행하고 있으니 낙관적 태도로 병마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권했다. 이 며칠간 절망감을 톡톡히 느꼈다. 인간의 생사이별과 생명의 취약함을 절감하며 무척이나 우울했다. 그러나 가족과 동료, 의사, 간호사 등이 매일 보내주는 관심과 격려에 차츰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1월 23일(목).
갑자기 열이 내렸다. 바로 그 순간 내가 싸움에서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위생건강위원회에 통보해 병원을 옮겨 치료를 계속 받도록 했다.

중국 공상은행 우한 지점의 양란이 1월 8일 첫 증세를 보인 후 2월 4일 퇴원하기까지의 투병기를 간략한 일기 형식으로 소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1월 24일(금)
오전에 내 물건을 수습해 제5 의원으로 갈 준비를 했다. 오후에 위생건강위원회가 지정한 집중 치료의원인 제5 의원에 도착했다. 더는 열이 오르지 않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1월 27일(일).
기침이 조금씩 나왔다. 다시 한번 공황에 빠졌다. 의사는 진단 뒤 계속 약을 먹고 마음을 밝게 가지라고 권했다.

1월 31일(금).
정신이 맑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오래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었다. 하루빨리 퇴원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핵산 검사를 실시했다.

2월 2일(일).
다시 핵산 검사를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불안해 안절부절못했다.

2월 4일(화).
의사는 두 차례 핵산 검사가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며 퇴원 수속을 밟아 집에 가서 요양해도 된다고 말했다. 미친 듯이 기뻤다. 바로 집으로 돌아와 격리 요양에 들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중국 저장대 제1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사람들에게 의료진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신종 코로나 확진·사망자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후 내가 어떻게 병마를 이길 수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 가지 이유 때문으로 여겨진다. 첫 번째는 몸이 춥다고 느꼈을 때 비교적 일찍 병원을 찾아 신종 코로나의 조기 발견과 조기 격리에 들어갈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의 헌신적 진료와 치료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병마를 상대로 용감히 싸우고 있었다. 환자인 내가 그들의 수고에 보답하는 일은 조속히 회복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격려와 마음의 안정이다. 격리돼 치료를 받는 기간 매일 가족과 직장 동료가 보내주는 응원을 보는 게 가장 행복했다. 특히 병세가 호전되는 다른 환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큰 힘이 생겼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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