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숙명여대 입학 포기..성소수자 차별 논란 후폭풍

한승곤 2020. 2. 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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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디컬 페미니스트 모임,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 포기 환영
성소수자차별반대 단체 "혐오에 맞서 함께 살아가자"
정의당 "신상 유출 두려움 느껴 입학 포기할 수밖에 없어"
서울 지역 6개 여대 "혐오 아닌 여성들 안전한 공간 지키기를 원할 뿐"
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최근 숙명여대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 사실이 알려진 후 재학생들의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고 2020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A씨가 입학을 포기하겠다고 밝히면서,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성소수자 억압이 아닌 안전을 이유로 A 씨 입학을 반대한 것뿐이라는 반박도 있어,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 논란 갈등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8일 숙명여대 등에 따르면 숙명여대, 이화여대, 서울여대, 성신여대, 동덕여대 등 래디컬(radical) 페미니스트 모임으로 구성된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반대 TF팀'은 전날(7일) 밤 공동 성명을 내고 A 씨의 입학 철회조치를 환영했다.

이들은 "법원의 성별 변경 판결에 반대하며 지난 4일 시작한 연서명에 1만8000여명의 여성들이 참여해줬다. 많은 여자들의 적극적인 의사표시 덕분에 여자들의 공간과 권리를 지킬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법원의 자의적인 성별변경 반대를 위한 연서명에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 함께 해주시는 모든 여성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 "갖은 혐오와 모욕 앞에 노출…그녀 결정 지지한다"

반면 A 씨가 여대 입학을 스스로 포기한 배경에는 차별과 혐오가 자리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7일 성명을 통해 A 씨 결정을 응원하면서 숙명여대 학교 측 대응과 언론을 비판했다. 무지개행동은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낸 A씨의 용기와 그럼에도 갖은 혐오와 모욕 앞에 노출되면서 그녀가 겪었을 고민들을 알기에 그녀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숙명여대 학생으로서 생활할 A씨를 만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라면서 "그녀는 분명 어딘가에서 학생이자 시민으로서 우리 곁에 함께 할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이 사건들을 지켜본 우리들 역시 현실의 문제를 직면하되 각자의 자리에서 몸과 마음을 충분히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A 씨의 용기가 던진 울림에 공명하며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변화를 같이 만들어나갑시다. 존재를 부정하고 추방하려는 혐오에 맞서 함께 살아가며 또 모이고 이야기합시다"라고 강조했다.

무지개행동은 특히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데에 학교와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숙명여대 당국은 아직 등록 전이라는 이유로 A씨에 대해 무수한 혐오표현이 이루어지는 것에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은 채 방관했고, 많은 언론이 이를 단지 학생사회 내의 대립구도로 만들며 존재의 부정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련의 과정들은 향후 혐오에 맞서 교육, 언론, 나아가 전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짚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정의당 "학교는 성소수자 학생을 환대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머물러"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의당은 8일 A 씨가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한 것에 대해 "교육당국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했다.

강민진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오전 논평에서 "여전히 대한민국의 학교는 성소수자 학생을 환대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드러났다"며 이렇게 밝혔다.

강 대변인은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학생 A씨가 결국 입학을 포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얼마전 A씨의 입학 예정 소식이 알려진 후 트랜스젠더 여학생을 여학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비난과 혐오의 여론이 일었고, 이에 A씨는 신상 유출과 색출의 두려움을 느껴 입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알렸다"고 했다.

그는 "여자대학교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은 교육에서 소외되어온 여성들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라며 "A씨가 입학했다면 이는 숙명여대의 설립 목적에 하등의 어긋남 없는 일이었을 것이며 성소수자 차별이 심각한 우리나라에 사회적 울림을 주는 사건이 되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소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등에 반대 입장을 보인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내 자신이 너무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다"고 토로했다.

이어 "학교 본부에 의견을 몇 차례 전달했지만 체계적으로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에 미국, 일본의 대학 트랜스젠더 정책에 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화여대본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여성들 안전한 공간 지키기를 원할 뿐" vs "몇 안 되는 희망조차 허락하지 않아"

반면 숙명여대를 포함해 덕성여대·동덕여대·서울여대·성신여대·이화여대 등 서울 지역 6개 여대의 21개 단체는 5일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단체 측은 "성명서를 올린 지 12시간 만에 1만명을 돌파했다"면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정정한 트랜스젠더가 여대에 입학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혐오자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저 여성들의 안전한 공간을 지키기를 원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A 씨는 7일 오후 3시께 본인의 온라인 일기장에 '숙대 등록 포기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올해 수능 점수에 불만족해서도 아니고 법전원이 설치된 대학 학부로 진학이 유리하다는 말을 들어서도 아닌, 작금의 사태가 무서워서였다"며 "내 몇 안 되는 희망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언행을 보면서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성숙한 사람에게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더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이 되어야지, 무자비한 혐오여서는 안된다"며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이해하고,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지지해준 분들에게는 "모든 사람의 일상을 보호해 주기를,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제 바람에 공감해주시고 지지를 보내주신 여러 개인, 단체에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한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도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박 변호사는 A 씨가 성전환 수술 결정을 함에 있어 조력자 역할을 했다.

박 변호사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A씨는 등록들 안하기로 했습니다"라며 "A씨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들과 함께 어울리고 살아갈 거라는 점에서 당사자분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트랜스젠더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목소리에 정말 깊은 좌절과 괴로움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안전을 이유로 여대에 트랜스젠더가 입학을 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안전 문제는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분리하고 추방하며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하고 그러면서도 자신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우리의 지향점이 되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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