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공소장 비공개' 관련 가짜뉴스에 대한 종합 팩트체크

임찬종 기자 입력 2020. 2. 9. 17:18 수정 2020. 2. 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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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4일 청와대 관계자들이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한 공소장을 제출하라는 국회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2005년 이후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가 있을 때 개인정보를 가린 후(비실명화 조치) 제출해왔던 법무부 방침을 '하필이면 이번부터' 바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저는 미국에서는 공소장이 법원에 접수된 직후 법무부가 아예 공식 홈페이지에 공소장을 올리는 방식으로까지 공개하고 있는데도, 추 장관이 국회 제출마저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 등에 썼습니다.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실제로 첨부돼 있는 '공소장(indictment)' 사례를 보여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미국의 공소장 공개 방침에 대해서 여러 건의 '가짜뉴스'가 공론장에 제시됐습니다. 현직 법무부 장관과 법무부 법무실장의 허위발언도 있었습니다. 이 취재파일에서는 각각의 주장이 어떤 점에서 사실과 다른지 종합적으로 팩트체크한 뒤, 추미애 장관이 '하필이면 이번부터' 15년 동안 유지됐던 방침을 바꿔서 공소장의 국회 제출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서 어떤 분석이 나오고 있는지 검토해보려 합니다.

● 팩트체크 1: 추미애 "미국에서도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게시" - 거짓

법무부가 청와대 관계자들의 불법 선거개입 혐의에 대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추미애 장관과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은 2월 6일 법무부 대변인실 서초동 분실을 여는 자리에서 기자들을 만나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추미애 장관은 "미국도 제1회 공판기일이 열려서, 그때 (공소장이) 공개가 되는 것이죠. 그때 (미국) 법무부도 게시를 하는 것이죠."라며 우리도 1회 공판기일이 열린 이후에 사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식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용구 법무실장 역시 "미국도 배심재판에서 공소사실 요지가 진술된 후에야 법무부 홈페이지에 (공소장을) 첨부하는 걸로 알고 있다."라며 우리 법무부의 새로운 방침이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과 이용구 법무실장의 발언은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20년 2월 6일 SBS 8뉴스에서도 보도했지만,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 홈페이지에서 보도자료를 모아놓은 코너를 살펴보면, 비교적 최근인 2019년 12월 20일 폰지 사기에 가담한 혐의로 한 사업가를 기소했다는 보도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Former Chairman and Managing Partner Charged for Role In $15 Million Ponzi Scheme.")

☞ 해당 보도자료 보러가기
[ https://www.justice.gov/opa/pr/former-chairman-and-managing-partner-charged-role-15-million-ponzi-scheme?fbclid=IwAR38A9heTbYbjrjk2g3jKjWPeO3oD-Wl3Yd4GwceIk3gNMJj3FWaJE--Jn0 ]

그런데 보도자료 첫 문장에는 "오늘 공개된 공소장으로 기소된 (charged in an indictment unsealed today)"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보도자료 하단에는 누구나 직접 공소장을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링크도 첨부해놨습니다.

☞ 해당 공소장 PDF 다운로드
[ https://www.justice.gov/opa/press-release/file/1228631/download?fbclid=IwAR24uln66oHbfuDDqMjofInUEAEgHk6xIQsUeDy59Vd1oeZHjqm9z46x4b4 ]

공소장(indictment)을 다운로드해 마지막 장을 살표보면  2019년 12월 19일에 법원에 접수됐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2월 20일에 배포된 보도자료에 "오늘 공개된 공소장"이란 표현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공소장 원문에는 12월 19일에 법원에 제출된 것으로 적혀 있다는 점을 종합하면, 결국 공소장이 제출된 지 하루 만에 공개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2020년 2월 4일에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2월 4일에 기소된 피의자에 대한 공소장이 기소된 당일에 곧바로 공개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Generic Drug Executive Indicted on Antitrust and False Statement Charges")

☞ 해당 보도자료 보러가기
[ https://www.justice.gov/opa/pr/generic-drug-executive-indicted-antitrust-and-false-statement-charges ]

이와 같이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보도자료와 공소장만 살펴 봐도 "미국도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그때 가서 (미국 법무부가 공소장을) 게시"한다는 추미애 장관의 발언이나 "미국도 배심재판에서 공소사실 요지가 진술된 후에야 법무부 홈페이지에 (공소장을) 첨부하는 걸로 알고 있다."라는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의 발언은 허위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 팩트체크 2: 법무부 "(미국도) 공개 법정의 재판절차를 통해서만 공개" - 거짓

2020년 2월 6일 SBS 8뉴스를 통해 추미애 장관의 명백한 허위 주장에 대해 팩트체크한 뒤에는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다음 날인 2020년 2월 7일 "공소장 자료 제출에 관한 법무부 입장 추가 설명자료"라는 문건을 기자들에게 배포해 추 장관의 발언이 허위는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법무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SBS가 2020. 2. 6. 또는 2.7. 자 기사에서 언급한 미국 연방법무부의 2020. 12. 20. 발표 사기사건은 2019. 12. 19. 대배심재판에 의해 기소되었으나, 법원의 봉인 명령에 따라 공소장이 비공개 상태에 있다가 피고인이 2019. 12. 20. 오전 체포된 후 법원의 최초기일에 출석하여 봉인이 해제된 경우에 해당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공개된 법정의 재판절차를 통해서만 형사사건의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오염된 정보로 인한 배심원의 예단을 방지하여야 하는 영미법계 국가의 배심재판이나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더욱 큰 중요성을 가진다는 측면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종합하면, SBS가 2020년 2월 6일 자 8뉴스 기사에서 언급한 미국 연방법무부의 2020년 12월 20일 발표 사기사건의 경우는 "대배심재판에 의해 기소되었"고, 피고인이 "법원의 최초기일에 출석하여 봉인이 해제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개된 법정의 재판절차를 통해서만 형사사건의 정보가 공개"된 경우에 해당한다는 주장으로 해석됩니다. 즉,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소장을) 게시"한다는 추미애 장관의 발언이 허위주장이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공소장 자료 제출에 관한 법무부 입장 추가 설명자료 4쪽 / 2020. 02. 07. 배포'

그러나, 법무부 설명자료에 담긴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개된다는 추 장관의 발언이 거짓이 아니라는 법무부의 주장이 옳다면, 법무부가 설명자료에서 언급한 2019년 12월 20일 사기사건의 경우만 놓고 봐도 1. 기소 전에 이뤄진 대배심(grand jury) 절차를 "제1회 공판기일"(추미애 장관) 또는 "배심재판"(이용구 법무실장)으로 보거나, 2. 피고인이 체포된 후 치안판사(magistrate judge) 앞에 출석하는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을 "제1회 공판기일"(추미애 장관)이나 "배심재판"(이용구 법무실장)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 연방 형사사법절차 상의 '대배심(grand jury)'이든,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이든 "제1회 공판기일"이나 "배심재판"으로 볼 수 없습니다.

첫째, '대배심(grand jury)'을 "제1회 공판기일"로 볼 수 있는지부터 검토해보겠습니다. 추미애 장관이 말한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의 "제1회 공판기일"은 검사가 기소하면서 법원에 공소장을 제출한 이후, 재판과 관련된 쟁점과 절차를 정리하는 공판준비기일을 거친 뒤에 비로소 열리는 첫 번째 정식 공판을 말합니다. 그런데, 미국 연방법의 '대배심(grand jury)'은 1년 이상의 징역형이 규정돼 있는 중범죄(felony) 혐의로 기소할 때 (피의자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반드시 거쳐야 하는 형사법적 절차로서, 그 정의 상 당연히 기소 이전에 진행되는 절차입니다.

형사소송법학회장인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자신의 논문을 직접 요약한 2020년 2월 8일 자 페이스북 글에서 "대배심기소(grand jury indictment)란 검사가 피의자를 기소하는 기소장(bill of indictment)을 대배심에 제출하여 기소여부에 대한 승인을 받는 절차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대배심(grand jury)'을 한국의 "제1회 공판기일"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미국에서도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소장을) 게시한다."라는 주장이 허위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라면 기초적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한 것입니다.

'대배심(grand jury)'을 이용구 법무실장이 말한 "배심재판"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미국 연방법에 규정된 '대배심'은 재판이 아닙니다. 대배심에는 판사가 참석하지도 않고, 오로지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할 대배심원단(일반 시민으로 구성)에게 혐의와 증거에 대해 설명할 뿐이며 경우에 따라 사건과 관련된 증인들이 참석할 뿐입니다. 피고인이나 피고인의 변호인도 대배심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판사가 주관하거나 참석하지도 않고, 피고인 또는 피고인의 변호인도 참석할 수 없으며, 오로지 검사와 증인들만 배심원 앞에 나오는 절차를 "재판"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웅석 교수 역시 1992년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배심절차는 법원과 분리된 것이므로 그 절차에 관하여 법원은 관여할 권한이 없다."리고 밝힌 판례를 인용하며 "미국의 판례 및 문언 등을 고려해 볼 때, 대배심절차는 수사절차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재판절차의 일종으로 보는 것은 극소수설에 불과하다."라고 자신의 논문을 직접 요약한 페이스북 글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대배심(grand jury)을 거쳐서 기소됐다는 점은 "미국도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소장을 홈페이지에 게시한다는 추미애 장관의 발언이나 "배심재판" 이후 게시한다는 이용구 법무실장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대배심 과정은 매우 엄격하게 비공개하기 때문에 법무부가 2월 7일 설명자료에서 언급한 "공개된 법정의 재판절차"도 당연히 아닙니다.

두 번째로, 법무부가 2월 7일에 배포한 설명자료에 등장하는 "법원의 최초기일에 출석"이란 행위가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린 것(추미애 장관)이나 "배심재판"(이용구 법무실장)이 열린 것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법무부가 설명자료에서 밝힌 "법원의 최초기일에 출석"했다는 것은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이라는 절차를 말합니다. (initial appearance는 법무부가 설명자료에서 언급한 '사기사건'에 대한 미국 연방법무부 보도자료에 명시된 표현입니다.) 이는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체포된 후 치안판사(magistrate judge) 앞에 나가서 정식 공판이 열리기 전까지 석방된 상태로 지낼지(보석 허가), 아니면 구금된 상태로 공판을 기다릴지(보석 불허) 치안판사가 결정하는 절차를 뜻합니다.

그런데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은 대부분의 경우에 공소장(indictment) 공개 여부의 기준점이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추미애 장관이 말한 "제1회 공판기일"이나 이용구 법무실장이 말한 "배심재판"에 해당되지도 않습니다.

우선 제가 직접 인터뷰한 미국 검사 출신 법조인의 말을 소개하겠습니다.

"공소장(indictment)은 봉인(seal)해야지 비공개되는 것인데, 봉인하지 않고 곧바로 공개하는 경우가 오히려 대부분이다. 기소 이후에 피고인을 체포해야 하는 경우나, 국가안보 등 이유로 봉인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배심(grand jury)에서 공소장이 발행되면 거의 곧바로 공개된다. 봉인되는 경우에도 피고인이 체포된 직후 검사가 법원에 공개(unseal)를 신청하면 대부분 공개된다. 체포 직후에는 치안판사 앞에서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 절차를 밟는데, 봉인된(sealed) 공소장의 경우에는 실무적으로 최초출석 직전에 검사가 공개를 신청해 공개되는 것이다."

즉,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은 체포된 피고인이 밟게 되는 절차인데, 대부분의 공소장은 최초출석 절차와 관계없이 공소장이 법원에 접수된 직후에 곧바로 공개되고, 피고인 체포를 위해 수사보안이 필요하다는 이유 등으로 봉인된 공소장의 경우에만 봉인되었다가 체포 직후 봉인이 해제돼 공개된다는 것입니다. '최초출석'은 대부분의 경우 공소장 공개 여부와 관련한 기준점이 전혀 아닌 것입니다.

저와 인터뷰한 미국 검사 출신 법조인은 그러면서 "핵심은 미국에서는 공소장이 '공적인 서류(public document)'로 규정되며, '공적인 서류'는 공개가 원칙이라는 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대부분의 공소장(indictment)은 곧바로 공개된다."라고 못 박아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으로도 법무부가 자료에서 언급한 '최초출석 (initial appearance)'이 대부분의 경우에 공소장(indictment)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점이 아니라는 점이 충분히 확인됐지만, 말이 나온 김에 과연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이 "제1회 공판기일"(추미애 장관)이 열린 것이나 "배심재판"이 열린 것에 해당하는지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간단한 것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최초출석은 너무나 명백하게도 "배심재판"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이 최초출석은 체포된 사람이 치안판사(magistrate judge) 앞에 나가는 절차이고, 정식 공판(trial)이 열리기 전까지 석방된 상태로 재판을 준비하게 할 것인지(보석 허가), 구금된 상태로 재판을 준비하게 할 것인지(보석 불허) 등을 치안판사가 결정하는 절차입니다. 당연히 배심원은 참여하지 않으며, 통상 치안판사 1명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배심원이 한 명도 참여하지 않는 이 절차를 "배심재판"이라고 볼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이 추미애 장관이 말한 "제1회 공판기일"에 해당할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는 미국의 형사사법 절차를 진행 순서에 따라 설명해놓은 페이지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미국의 형사사법 절차를 공식적으로 크게 11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최초출석'이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 연방 형사절차에 대한 미국 법무부의 설명
[ https://www.justice.gov/usao/justice-101/steps-federal-criminal-process?fbclid=IwAR3po_sOa71mH2qxzQyjIdVkzMDvmSVTFC_VDD6f3wyMmyrnP0eDlhtryww ]

1. Investigation (수사)
2. Charging (기소)
3. Initial Hearing/Arraignment (최초심리/기소사실인부절차)
4. Discovery (디스커버리)
5. Plea Bargaining (조건부 형량 협상)
6. Preliminary Hearing (예비심리)
7. Pre-Trial Motions (공판 전 신청)
8. Trial (공판)
9. Post-Trial Motions (공판 후 신청)
10. Sentencing (선고)
11. Appeal (항소)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은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제시된 용어에 따르면 3단계인 'Intial Hearing/Arraignment (최초심리 / 기소사실인부절차)'입니다. 반면 Trial(공판)이라는 절차는 한참 떨어져서 8단계에 별도로 규정돼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볼까요? '최초심리(Initial Hearing)'에 나오는 '심리(Hearing)'는 두산백과사전에는 아래와 같이 규정돼 있습니다.

[두산백과]

심리 hearing , 審理

법률상 재판 이전에 법원이 민사·형사상의 청구 원인에 따른 증거나 방법 등에 대해 행하는 공식적 심사 행위.

즉, '최초심리(initial hearing)' 또는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은 "법률상 재판 이전에" 벌어지는 행위로 규정돼 있는 것입니다. '최초심리'는 사전적 의미로만 봐도 정식 공판 이전의 절차인 것입니다.

반면 미국 연방법무부가 8번째 단계로 설명한 "Trial"은 보통 '소송', '재판' 또는 '공판'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실제로 옥스퍼드, 동아출판, YBM, 교학사, 슈프림 등 5개 영한사전에서 "공판"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법무부가 2월 7일에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언급한 "최초기일 출석"은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 또는 "최초심리(intial hearing)"를 뜻하는데, 이는 그 자체의 사전적 의미만으로 살펴봐도 미국 연방 형사절차에 규정된 "공판(trial)"이나 우리나라의 "제1회 공판기일"(추미애 장관)과는 분명히 다른 절차인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 분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실 분들이 있을 수 있으니,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최초심리(intial hearing)'와 '공판(trial)' 절차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돼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최초심리(initial hearing)'에 대한 미국 연방법무부 설명입니다.

☞ '최초심리'에 대한 미국 연방법무부의 설명
[ https://www.justice.gov/usao/justice-101/initial-hearing?fbclid=IwAR34vVrDYREAcZSVGV0WFH4-3SwRccFcpo-CfX2QpbmBmUBIrFWo1ZTDO1g ]

"피고인이 체포되고 기소된 같은 날 또는 다음날, 피고인은 해당 사건에 대한 최초심리(initial hearing)를 위해 치안판사(magistrate judge) 앞에 나오게 된다. 이때, 피고인은 피고인으로서의 권리와 자신의 혐의와 변호사 선임을 위한 절차에 대해 더 알게 되고, 판사는 피고인을 계속 구치소에 구금할지, 공판(trial) 때까지 석방할지 결정한다."

"Either the same day or the day after a defendant is arrested and charged, he is brought before a magistrate judge for an initial hearing on the case. At that time, the defendant learns more about his rights and the charges against him, arrangements are made for him to have an attorney, and the judge decides if the defendant will be held in prison or released until the trial."

다음은 '공판(trial)'에 대한 미국 연방법무부의 설명입니다.

☞ '공판'에 대한 미국 연방법무부의 설명
[ https://www.justice.gov/usao/justice-101/trial?fbclid=IwAR1bdbyd-8QpVuH8Ns4i4AMB7le2TzGXH-LlMcgMq7FUSTir-juKjpIMOPw ]

"여러 주 또는 여러 달의 준비 후에, 검사는 자신의 직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준비를 마치게 된다. : 바로 공판(trial)이다. 공판(trial)은 사건과 관련된 사실들이 배심원들에게 제시되고, 배심원들이 기소된 혐의에 대해 피고인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결정하는 구조화된 절차이다."

"After many weeks or months of preparation, the prosecutor is ready for the most important part of his job: the trial. The trial is a structured process where the facts of a case are presented to a jury, and they decide if the defendant is guilty or not guilty of the charge offered."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과 '공판(trial)'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묘사한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의 설명만 놓고 봐도, 최초출석을 우리 형사사법체계에서 말하는 "1회 공판기일"(추미애 장관)로 볼 수 없으며, '공판(trial)' 단계가 시작되어야 비로소 "1회 공판기일"이라고 부를 수 있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보입니다.

두 번째 팩트체크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법무부가 2월 7일 배포한 설명자료에 나오는 '대배심'이나 '최초기일 출석'(최초출석)은 모두 추미애 장관이 말한 "제1회 공판기일"이나 이용구 법무실장이 말한 "배심재판"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2월 7일 법무부 설명자료의 취지와 달리 "미국에서도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소장을) 게시"한다는 추미애 장관의 발언이나 "배심재판" 후 게시한다는 이용구 법무실장의 발언은 허위주장에 해당합니다.

● 팩트체크 3. 'Indictment는 한국의 공소장으로 볼 수 없다' – 거짓

그런데, 전직 법조 기자라고 알려진 분이 미국에서 형사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의 말을 옮긴다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여러 곳에 공유되며 다른 방식으로 사실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이 글 내용을 조금만 살펴봐도 기본적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의도적으로 사실을 오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지만, 이 글의 화자가 SBS의 팩트체크 보도를 오보라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간단히만 팩트체크해보겠습니다.

문제의 글에 나오는 화자는 "미국에서도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소장을 공개"한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말이 사실과 다르다는 SBS 기사에 대해 "SBS의 보도는 "기소"와 "공소장"이란 개념을 잘못 이해해서 벌어진 오보입니다. 한국 형사소송법에서 "기소"와 "공소장"이란 개념이 미국 형사절차에서 어떤 절차에 대입되는지를 알지 못해 발생한 것입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미국 연방 형사사법체계에서는 경범죄(misdemeanor, 보통 법정형이 징역 1년 이하인 경범죄)의 경우 기소할 때 complaint를 법원에 접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중범죄(felony)의 경우에는 피의자가 대배심을 포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대배심(grand jury)을 열어야 하며, 대배심 심사 결과 기소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대배심이 발행한 indictment를 법원에 제출해 기소합니다. complaint는 엄밀히 말해 '공소장'이라기보다는 체포영장 등을 발부하기 위해 혐의 사실의 핵심을 적어서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인데, 법정형 1년 이하의 경범죄(misdemeanor)의 경우에는 complaint로 공소장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글의 화자는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complaint도 공소장, indictment도 공소장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 형사소송법에서 공소장이란 수사가 종결된 후 검사가 법원에 제출하는 가장 첫 문서로(신동운, "형사소송법" 제4판 350쪽)로 이는 미국의 Complaint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라며 complaint가 한국 형사사법 체계에서 공소장이고 indictment는 한국의 공소장에 해당하지 않는 것처럼 사실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위에 제가 설명한 내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complaint는 미국 연방법에서 경범죄의 경우에 공소장의 기능을 대신하는 문서, 넓게 봐서 공소장으로 번역될 수 있는 문서이고, indictment는 중범죄의 공소장입니다. 쉽게 말해 미국 연방법에서 경범죄는 complaint가 공소장(공소장의 기능을 대신하는 문서), 중범죄는 indictment가 공소장인 것입니다.

문제의 글의 화자는 "만약 SBS의 해석대로 indictment(직역하면 기소입니다만)를 '공소장'으로 해석한다면, 축하드립니다. 이제 무소불위의 대한민국 검찰청의 기소권을 제한하는 검찰 개혁이 아름답게 완성됩니다."라며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마치 비꼬는 듯한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이 말이 왜 비꼬는 말이 될 수 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분의 의도를 최선을 다해 추정해 설명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한국과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검사가 기소 기능을 담당한 국가기관(소추기관)입니다. 미국 연방법에서는 중범죄(felony)의 경우 검사의 설명을 들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grand jury)이 소추기관입니다. 소추기관이 법원에 기소하겠다며 보내는 서류가 '공소장'입니다. 말 그대로 공적인 기소 public prosecution 를 위한 서류가 '공소장'입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소추기관인 검사가 기소하면서 법원에 접수한 서류가 '공소장'이고, 미국 연방 형사사법체계에서는 대배심(grand jury)이 검사의 설명 등을 듣고 기소를 결정해 법원에 접수하는 서류인 indictment가 (중범죄의 경우) '공소장'인 것입니다.

문제의 글 화자는 "축하드립니다. 무소불위의 대한민국 검찰청의 기소권을 제한하는 검찰개혁이 아름답게 완성됩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앞서 말했지만 누가 어떤 이유로 이런 축하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륙법계와 미국법의 차이가 있지만, '대배심(grand jury)'은 검찰 기소권 통제를 위해 도입을 고민해볼 만한 방안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최근 검찰개혁 법안 논의 과정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낸 분들이 있었지만 오히려 '근본적 개혁'을 막기 위한 친검찰 학자들의 꼼수 정도로 폄하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문제의 글 화자는 저를 포함한 일부 법조기자들은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너의 논리대로라면 검찰의 기소권을 제한하는 검찰개혁이 이뤄져야 하는 셈이다. 축하한다.'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은데, 저뿐만 아니라 많은 기자들은 검찰개혁에 반대하지도 않고 검찰의 기소권에 대한 통제 역시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쓴 분이 진영논리에 지나치게 빠진 나머지 '상상 속의 적'과 싸우고 계신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Indictment를 한국의 공소장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complaint가 한국의 공소장에 해당하기 때문에, Indictment를 공소장이라고 해석한 SBS 보도는 오보'라고 주장한 글은 사실과 다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 '공판 시작 후 제출 검토'하겠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이용구 법무실장의 발언이 명백한 허위주장에 해당하며, 이를 옹호하기 위해 SBS 보도를 오보라고 규정한 어떤 분의 글 역시 잘못됐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추미애 장관과 법무부의 이야기 중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다시 말해 청와대 관계자들이 선거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한 정식 공판 절차가 시작되면 공소장 국회 제출(공개)을 검토해보겠다는 발언입니다.


물론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법무부가 아무리 공개하지 않으려고 해도 공소장 내용은 공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은 재판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공개재판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검사가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낭독해야 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개재판에 들어가서 검사의 낭독을 들은 뒤 '받아쓰기'할 능력이 있는 기자가 1명이라도 있다면 공소장 내용은 어차피 1회 공판기일 이후에는 공개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법원조직법 제57조(재판의 공개) ①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다만, 심리는 국가의 안전보장, 안녕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결정으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85조(검사의 모두진술) 검사는 공소장에 의하여 공소사실ㆍ죄명 및 적용법조를 낭독하여야 한다. 다만, 재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검사에게 공소의 요지를 진술하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차피 얼마 뒤인 1회 공판기일에서 공개될 공소장에 대해 법무부가 15년 동안 유지됐던 방침까지 바꿔가며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차피 공개될 문서의 제출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국가안보 등의 이유로만 국회 제출을 거부할 수 있게 규정한 '국회에서의 증언과 감정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만...)

추미애 장관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는 없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건을 주목하고 있는 대부분의 법률 전문가들은 오는 4월에 총선이 열린다는 사실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공소사실이 복잡하고 증거가 방대한 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공판 이전에 여러 차례 공판준비기일(판사-검사-변호인이 공판 관련 절차와 쟁점을 정리하는 절차)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고, 이럴 경우 공소사실이 낭독되는 정식 1회 공판이 4월 총선 이전에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다음 주에 판사 인사 발령이 예정돼 있고, 판사들을 재판부에 새롭게 재배치하는 사무분담 절차도 예정돼 있어서, 새로운 판사가 이 사건을 맡게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식 공판이 열리는 시기는 더 미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이 사건에 주목하는 법률 전문가들은 법무부가 '하필이면' 청와대 관계자들이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이번 사건부터' 15년 동안의 방침을 바꿔 공소장 국회 제출을 거부하고 1회 공판기일이 열린 뒤 공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4월 총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소장 내용이 총선 이전에 정식으로 공개되지 않도록 막으려는 것일 수 있다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측은 "그런 고려는 전혀 없었다. 인권 보호를 위해 그동안의 방침을 바꾼 것."이라는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 한 마디의 거짓과 백 마디의 진실

물론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의도에 대해선 '합리적 의심'만 가능할 뿐 명백한 방식으로 진실과 거짓을 밝혀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공소장 비공개 방침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의 현실에 대해 추미애 장관과 이용구 법무실장이 발언한 것은 명백한 허위입니다. 명백한 허위 주장에 근거를 보태기 위해 배포된 것으로 보이는 법무부 설명자료의 내용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한 마디 거짓말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백 마디의 진실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마디 거짓말은 쉽게 퍼져나가는 반면, 백 마디로 구성된 진실을 전달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진실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썼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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