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조선일보

승차 거부·욕설·폭행.. 유럽의 日常이 된 동양인 차별

파리/손진석 특파원 입력 2020.02.10. 03:06 수정 2020.02.10.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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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폐렴이 낳은 인종차별]
지하철·버스서 옆자리 피하고 마스크 쓰면 벌레보듯 쳐다봐.. 동양계 상점들 매출 뚝 떨어져

프랑스 파리 근교에 살면서 업무차 벨기에 브뤼셀을 자주 오가는 교민 김모(33)씨는 최근 두 도시에서 모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으로 인한 불쾌한 일을 겪었다. 브뤼셀 지하철에 탔을 때 한 남성 승객이 그에게 "시누아(Chinois·중국인), 시누아"라고 하더니 그가 내리려 하자 "얼른 내려버려라"라고 했다. 김씨가 파리 시내에서 집으로 가는 RER(교외급행열차)을 타 가볍게 재채기를 하자 한 중년 남성은 "이봐, 이봐 아저씨"라고 소리 지르며 노려보기도 했다. 김씨는 "인종차별이라고 느꼈지만 참고 넘겼다"고 했다.

우한 폐렴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행위가 확산되고 있다. 중국인은 물론 한국인, 일본인까지 애꿎은 피해자가 되고 있다.

가장 흔한 차별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승차 거부나 옆자리 앉기 피하기 등이다. 한국 기업의 프랑스 지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 A씨는 "샤를드골공항에서 승차를 거부하려는 택시 기사에게 '중국인도 아니고 관광객도 아니다'라고 읍소해 겨우 탈 수 있었다"고 했다. 하루 13만명이 이용하는 유럽 최대 카풀 서비스 블라블라카에서는 합승을 요청하는 사람의 얼굴 사진을 보고 동양인이면 차주(車主)가 태워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지하철·버스에서 현지인들이 옆에 앉아 있다가 다른 칸으로 피했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중국계 이탈리아인의 프리 허그 - 중국계 이탈리아인 마시밀리아노 마르틸리 장이 2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마스크를 쓰고 눈을 가린 채 사람들과 ‘프리 허그’를 하고 있다. 그의 옆에는 이탈리아어·중국어·영어로 쓴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란 팻말이 놓여 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으로 중국인 등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정서가 늘자 이 같은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고 한다. /UGIC(중국계이탈리아인청년단체) 페이스북

면전에서 불쾌한 행위를 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파리 남서쪽 외곽 도시 불로뉴-비앙쿠르에 사는 60대 한국 교민 B씨는 등기 우편물을 수령하러 갔다가 불쾌한 일을 겪었다. 그는 "우체국 여직원이 우편물을 던지듯 건네준 뒤 재빨리 세정제로 손을 닦았다"고 했다. 모스크바에 사는 한 50대 교민은 "가게에서 계산대의 점장이 내 얼굴을 보더니 얼른 마스크를 썼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jenesuispasunvirus)'라는 해시태그로 1000개가 넘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외모만 보고 인종차별적 행위를 하는 데 항의하는 내용이 많다. 파리 중심가 라파예트백화점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 박모(31)씨는 "한국에서처럼 마스크를 썼더니 길거리에서 현지인들이 벌레 보듯 쳐다봐 마스크를 벗고 다닌다"고 했다. 일본 방송사 여성 특파원은 파리 시내를 걷다가 한 행인으로부터 "바이러스는 꺼져라, 시누아즈(Chinoise·중국 여성)"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서양인들이 동양계 식당·상점을 기피하는 현상도 뚜렷하다. 파리 15구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교민은 "프랑스인 손님들이 평소보다 20~30% 줄었다"고 했다. 8일 낮 아시아 식당들이 몰려 있는 파리 13구 이브리가(街)의 한 베트남 식당에 갔더니 손님이 한 테이블만 있었다. 이 식당 주인은 "하루 평균 매출이 2600유로(약 340만원) 정도인데 최근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파리 20구의 벨르빌 지구에 몰려 있는 중국 식당 일부는 당분간 휴업에 들어갔다.

독일 베를린 시내에서는 20대 중국인 여성이 길거리에서 독일인 여성 2명으로부터 욕설과 함께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런던의 한국 대기업에 근무하는 30대 주재원은 "우한 폐렴이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현지인들이 평소 잠재된 동양인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도 승차 공유 서비스 리프트(Lyft)의 한 운전자가 중국계 미국인에 대해 승차 거부를 했다가 해고됐다. 캘리포니아대에서는 버클리캠퍼스가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일상적 현상을 열거하며 '외국인 혐오(xenophobia)'를 넣었다가 비판을 받았고, 학교 근처에서 확진자가 나온 어바인캠퍼스에 대해서는 학교 폐쇄를 주장하는 온라인 청원이 등장했다.

그래도 유럽에 비해 미국은 인종차별이 대체로 덜한 편이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지난 8일 중국인 중심으로 수천 명이 모이는 '춘제(春節) 퍼레이드'를 예정대로 치렀다. 샌프란시스코 시내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차(茶) 가게를 운영하는 메리 양(69)씨는 "미국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이 퍼지지 않아 아직 장사에는 별 영향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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