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바이러스가 사탄"이라고? 무능한 정부 가려내는 '심판자'

장세정 입력 2020. 2. 11. 00:32 수정 2020. 2. 1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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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의사들 경고 흘려듣다 재앙 키운 한·중 정부]
중국인교회 목사 "시진핑 반성해야"
한족 신도들 이구동성 "아멘" 외쳐
최초 발병 알린 의사 희생시킨 중국
의협 대안을 "정치"라 비판한 한국
타이밍 놓쳐 피해 키운 책임 물어야
질본 전문가 자리는 행정직들 차지
'감염병 전문병원' 공약도 지지부진
지역사회 최악 확산에도 대비해야
한국 체류 중국인(한족)들이 지난 9일 서울 대림동 '서울 중국인교회'에 모여 예배하고 있다. 중국 정부 책임론을 거론하면서도

지난 9일 주일 예배가 진행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서울 중국인교회'를 찾아갔다. 한국에 체류하는 중국인들이 평소 인산인해를 이루는 대림 중앙시장 인근이다. 2003년에 설립된 이 교회 신도는 대부분이 한족(漢族)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졸지에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경직된 정치체제 때문에 신종 코로나 사태가 전 지구적 재앙으로 번지면서 이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중국인교회를 찾은 이유는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날 교회에선 100여평 정도 되는 지하 공간에 20여명의 남녀노소 신도들이 중국어로 예배를 보고 중국어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교회 관계자는 "중국에 다녀온 신도들은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지난주부터 주일 예배 참석자가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중국 인민들이 전염병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게 치유해 주세요. 감염자를 치료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지켜주세요. 이번 사태가 중국인의 죄로 인해 일어났다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우리가 회개하고 인민이 변화해 중국 땅에 이런 불행과 재앙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세요." 한족 여성이 신도대표로 울먹이며 기도하자 남녀노소 신도들이 다 함께 흐느꼈다.

서울중국인교회 "전염병 고통 벗어나길" 기도

2003년부터 이 교회를 이끄는 최황규 담임목사가 설교했다. "모든 재앙은 인간과 관계가 있다. 이번 전염병은 세계 곳곳에 영향을 준 재난이다. 중국이 반성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명이 죽어 나가는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고 시 주석을 비롯해 국무위원들은 천안문 광장에서 인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참석한 중국인 신도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멘"이라고 화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처음 알린 의사 리원량(34)이 7일 폐렴으로 숨졌다. 당국은 그를 박해했다.
경찰이 리원량을 부당하게 체포해 쓰게 한 반성문(훈계서). [리원량 웨이보 캡처=연합뉴스]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두 달 만에 약 1000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 한국에서도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이 실종됐다. 그 자리를 불안과 공포가 채우고 있다. 지난 9일 둘러본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주변은 주말 내내 휴점하는 바람에 을씨년스러웠다. 확진자가 지나간 자리는 식당·호텔·영화관·면세점 구분 없이 추풍낙엽이다. 경제적 타격이 엄청나다.

한·중 두 정부는 초기 대응 타이밍을 놓쳤고 위기 경보를 울리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이러스 출현 초기에 현장 전문가의 말만 귀담아들었어도 사태가 이 지경으로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30일 후베이성 우한시 중심병원 의사 리원량(李文亮·34)은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 발병 소식을 SNS를 통해 최초로 외부에 공개했다. 하지만 현지 경찰은 유언비어로 사회질서를 해쳤다는 이유로 그를 체포했다. 상을 주기는커녕 훈계서(반성문)까지 쓰고 풀려났다니 개탄스럽다.
이후 몰려오는 환자 치료에 헌신하다 자신도 신종 코로나에 감염돼 지난 7일 안타깝게도 숨졌다.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건강한 사회는 하나의 목소리만 있어서는 안 된다"며 공권력의 개입을 비판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중국과 해외에서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인권운동가 쉬즈융(許志永)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시진핑 주석의 퇴진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웹사이트에 올렸다.

무신론자 시진핑, 마귀에 이상한 전쟁 선포
중국에서 괴상한 전염병이 시작된 사례는 많지만, 중국 정부의 이번 대응은 고개를 더 갸우뚱하게 한다. 시 주석은 지난달 28일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전염병은 마귀(악마·사탄)다. 우리는 마귀가 활개 치고 다니게 놔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무신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자 입에서 21세기에 무슨 '사탄 타령'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은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가 1월 27일 우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 현장을 지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망]

한 중국 외교관에게 마귀 발언의 의미를 물어봤다. 그는 "이번 전염병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지도자의 강한 의지 표현 아니겠냐"며 외교적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한국의 전직 고위 외교관은 "무신론자인 중국 지도자의 입에서 마귀(사탄)라는 단어가 나와서 매우 이상하게 보였다. 시진핑 체제에 도전하거나 비협조적인 세력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책임을 떠넘길 제3자를 찾아내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심은 들끓고 있다. 오죽했으면 시 주석의 모교(칭화대 화공과)에서까지 비판론이 제기됐겠나. 청화대 법대 쉬장룬(許章潤) 교수는 "사회의 경보 시스템이 무력화됐고 관료 통치 체제도 난맥상에 빠졌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실 신종 코로나 사태 와중에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의료 전문가는 뒷전으로 밀렸다. 국립보건원장을 역임한 박도준 서울의대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질본)에 국장급 보직이 5개 있는데 긴급상황센터·감염병관리센터 등 3개를 행정고시 출신 행정직 공무원이 차지하고 있고 질본 전체 26개 과의 절반 이상을 보건복지부에서 내려온 행정직 공무원이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메르스(MERS) 때 뼈아픈 교훈을 얻고도 이번 사태 초기에 우왕좌왕했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것이다.

박도준 서울의대 교수는

한심한 사례는 더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3만명의 의사가 가입한 의료계 최대 단체다. 의협이 신종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수시로 신속하게 경보를 발신했지만, 정부는 흘려 들었다. 조승국 의협 공보이사는 "정부는 묵살하거나 몇 박자 늦게 일부만 받아들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도하게 불안해하지 말라'고 첫 대국민 메시지를 냈던 지난 1월 26일 의협은 "중국으로부터 전면적인 입국 금지 조치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위한 행정적 준비를 당부한다"고 주문했다. 2월 1일에는 감염 위험이 높은 국가나 지역(중국 5대 도시)으로부터 입국 제한 또는 중단과 검역 강화를 권고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의협 지도부의 정치적 판단"이라고 깎아내렸다. 과학을 다루는 의사들의 합리적 문제 제기를 정치적 잣대로 일축해버린 것이다. 결국 정부는 2월 2일에서야 후베이성 방문 외국인의 입국을 4일 0시부터 제한한다고 뒷북 조치를 발표했다. 의협은 3일 "입국 제한 대상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으나 지난 9일 정부는 확대 조치를 하지 않고 계속 미루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보건소를 방문해 메르스(MERS) 사태보다 대응과 협업이 잘 되는지 세 번이나 물었다. 옆에 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무래도 경험과 학습 효과가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잘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의료계 전문가는 "1월 말까지도 서울시 고위 간부들은 상황 판단이 안 돼 있었고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메르스 대응 때와 비교하는 질문을 하자

공교롭게 시진핑 주석도 지난 6일 "중국 정부의 강력한 (전염병 대응) 조치는 인민의 건강에 대한 책무일 뿐 아니라 세계 공공 안전에도 거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 자화자찬으로 화답했다. 공동운명체 주장처럼 자화자찬까지 닮았다.

이 판국에 한·중 정부 모두 자화자찬 닮은꼴

전염병이 한창인 지금은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내건 공약부터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예컨대 2017년 8월 문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 과제'에는『메르스 백서』에서도 제기된 감염병 전문병원을 2022년까지 신설하는 공약이 들어있지만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총리실은 100대 과제 평가에서 "후속 절차 지연 등으로 인해 2022년 개소 일정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오명돈 서울의대 교수는 사스(SARS)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 처음 국가 감염병 격리 병동 모델을 도입한 주역이다. 오 교수는 "중국이 1월 1일 문제가 된 우한 수산시장을 폐쇄하자 홍콩 당국은 바로 다음 날 범부처 회의를 소집하고 4일에는 긴급 대응 계획을 발표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상황 판단이 늦다 보니 대응을 늦게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신종 코로나는 신속한 발견과 격리가 어려운 독특한 경향을 보여 매우 어려운 싸움이다. '센 놈'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공중보건 위기 대응의 기본이다. 중국 여행자 입국을 전면 금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대응이 옳을 수도 있다. 희망은 대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명돈 서울의대 교수는

바이러스는 악마도 사탄도 아니다. 진보·보수와 좌파·우파를 가리지 않는다. 그저 빈틈 많은 숙주를 찾아내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추구할 뿐이다. 정치가 뭔지도 모르는 바이러스는 결과적으로 누가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내 준다. 중국공산당이 '마귀'를 제대로 때려잡을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 정부의 대응이 어떠했는지는 유권자가 판단해 선거로 심판할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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