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웃음 나는 정치권의 '기생충 찬사' [기자 메모]
[경향신문]
“이 영화는 소득불평등 문제를 다루지만 범죄스릴러,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한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영화 <기생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 사회 빈부격차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 <기생충>은 아카데미상을 휩쓸며 한국 영화사에 획을 그었다.
수상 다음날인 11일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환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전 세계의 공감을 이끌어내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느끼게 했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한국적인 주제로, 한국어로 만든 영화가 세계인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했다.
기생충은 빈부격차라는 시대의 가장 큰 화두를 건드리며 세계적인 열풍을 이끌었다. 영화에서 물에 잠긴 반지하 대 젖지 않는 인디언텐트, 250만원짜리 쓰레기통 대 1만원에 12캔짜리 맥주, 한우 짜파구리 대 곰팡이 식빵이 이루는 대조는 한국 사회 소득불평등의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치권의 찬사에서 <기생충>이 제기한 어두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았다. 정치권의 논평들을 두고 ‘책임이 실종된 찬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당의 ‘견지망월’(손가락을 보느라 달을 잊는다)은 더 씁쓸하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문화·예술부문 정책적 지원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문화·예술 부문의 융성도 중요한 문제다. 다만 여당의 인식치곤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야권 일각의 “봉 감독 이웃동네에서 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자찬 앞에선 <기생충>을 보긴 했나라는 의문이 남는다.
봉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 (영화 속) 박 사장 저택 같은 집을 사려면 547년이 걸린다”고 했다. 오스카 4관왕 석권에 빛나는 <기생충>의 교훈이 겨우 ‘무료 와이파이 확대’라면 봉 감독의 말을 이렇게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치는 소득불평등 문제를 다루지는 않지만 블랙코미디이긴 하다.”
조형국 | 정치부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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