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 쓰레기통에서 피어난 '기생충' 열풍

김동호 2020. 2. 1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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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빈국 냉소 딛고 60년 만에 반전
산업화 이후 한국 갈 길 고민 촉구
답은 성장 만능·포퓰리즘 사이에
김동호 논설위원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은 기적에 가깝다. 1951년 영국의 더타임스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사실상 제3차 세계대전과 다름없었던 6·25전쟁의 폐허 속에 한국에선 민주주의가 싹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기술도 자본도 없고, 교육받은 인적 자원도 없는 세계 최빈국을 보는 선진국의 시선이었다.

기생충은 60여 년 만의 완벽한 반전이다. 냉소와 달리 한국에선 민주주의가 피어났다. 그 원천을 놓고 이런저런 평가들이 쏟아지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천재적인 감각은 감독상으로 인증을 받았다. 탄탄한 스토리텔링은 각본상을 거머쥐게 했다. 최우수 작품상은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덕분이라고 본다. 어처구니없는 설정의 블랙코미디였지만, 빈부 격차와 계급사회라는 인류 보편적 고민을 기생충만큼 신랄하게 풍자한 영화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화산업 진흥이 한몫했다는 평가도 있다. 여기에는 CJ그룹의 공로가 돋보인다. 한국 영화산업의 대모로 떠오른 이미경 부회장은 작품상 수상 소감에서 이재현 회장의 기여를 두 차례나 언급했다. CJ는 그동안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과감히 투자해 왔다. 관련 상장사도 두 개나 된다. 사실 엔터테인먼트는 한국에서 큰돈을 벌기 어려운 사업이다. 시장이 작고 언어도 한국어여서 확장성이 없다. 그럼에도 CJ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수많은 화제작을 배출했다. 이번에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의 주인공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생충의 쾌거는 그동안 세계를 휩쓴 한류 바람도 한몫했다. ‘겨울연가’와 소녀시대를 필두로 K드라마와 K팝이 2000년대 들어 세계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게 신호탄이었다.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어워드 등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에서 공연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열풍에 둔감한 편일지도 모른다. 나도 개인적으로 한류 열풍을 현장에서 보고 나서야 위력을 실감했다. 2009년 일본에서도 시골로 꼽히는 아오모리에 배우 이서진이 팬미팅을 왔을 때다. 일본 북단 홋카이도와 남단 오키나와에서도 4050 여성 팬들이 이서진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몰려들어 호텔에는 입추의 여지도 없었다. 2016년에는 마카오에서 우연히 K팝 공연을 관람했다. 거의 2만 명이 운집한 아레나에서 그들은 신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기생충은 영화상을 휩쓸었다. 이 바람은 미국에서 상영관이 1000개를 넘어서고 일본에서도 관심을 끄는 세계적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쓰레기통이라는 냉소를 받던 한국이 민주주의를 넘어 소프트 파워까지 꽃피우는 열풍의 본질은 무엇일까.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휩쓰는 것을 보면서 이런 물음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 저력은 경제 발전의 과실이다. 산업화가 있었기에 민주화가 가능했고, 그 위에 소프트 파워가 맺어졌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의 위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도 우리 국민의 노력과 기업의 활약 덕분 아닌가.

기생충은 여기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산업화의 그늘, 빈부 격차에 대해서다. 기생충은 답을 내놓지 않았지만 교훈은 남겼다.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자본주의로는 우리 사회가 공존하기 어렵다는 교훈이 첫 번째다. 둘째는 증오와 질시로는 빈부 격차 해소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다. 정치권은 기생충이 던진 화두에 답을 할 차례다.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성찰부터 해야 한다. 빈부 격차라는 그늘을 초래한 경쟁 만능의 성장론도, 빈부 격차를 오히려 심화시킨 소득주도 성장 같은 하향 평준화의 포퓰리즘도 해결책이 못된다.

봉 감독은 “톱으로 트로피를 썰어서 (수상하지 못한) 다른 감독들과 나눠 갖고 싶다”고 했다. 마치 영화의 에필로그를 보는 것 같았는데 여기에 답이 있다. ‘시장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되 승자는 경쟁에서 소외된 자들을 돌보라.’ 그게 기생충의 핵심 교훈 아닐까.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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