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오사카 폐렴'이었다면
6년 전인 2014년 모로코에서 낙타 고기로 만든 버거를 처음으로 먹어봤다. 그전에 이집트에서 맛본 비둘기구이, 소 뇌(腦) 튀김도 기억에 남는다. 해외 문화를 좀 더 알고 싶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도했던 낯선 음식들이다. 하지만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터져 한동안 중동 음식을 자제했다. 특히 낙타가 바이러스의 주요 매개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각별히 조심했다. 중동 현지인 등 접촉을 주의하라는 지침을 준수했다. 이 문화들을 혐오하거나 중동인에게 반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반감이 있다면 이 지역 바이러스가 그 대상이었을 뿐이다.
최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입국 금지 대상 확대 등 철저한 방역 조치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 의견은 중국인을 차별하거나 반중·혐중 정서를 퍼트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폐렴이 이미 중국 전역으로 퍼졌기 때문에 후베이성뿐 아니라 다른 지역 체류자에 대해서도 입국 금지를 할 필요가 있다는 합리적 제안이다. 확진자 이동경로 등 관련 속보를 전하는 언론 보도는 국민이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데 참고할 정보를 최대한 제공하려는 것이지 불안감 조성 의도가 아니다.
하지만 정부와 여권은 방역 관련 각종 제안을 '중국 혐오적 발상' '인종차별적 대책' '공포 조성 의도'라고 싸잡아 비난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한·중 양국 국민의 혐오를 부추기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변인도 "중국인 입국 금지 주장은 재난을 정치 쟁점화하려는 시도이자 '외국인 혐오'"라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부·지자체가 잘 대응하고 있다"며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당시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무능했었는지 누구보다도 낱낱이 증언할 수 있다"고 했다. 재난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요란하게 자화자찬하는 것도 모자라 정치적 비방 발언까지 한 것이다.
이번 감염병이 우한이 아니라 일본 오사카나 나고야에서 발병했다면 어땠을까? 지난해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나서 '죽창가' 운운하며 반일 선동을 했던 점에 비춰보면 현 정부는 너도나도 앞다퉈 이번 병명을 '오사카 폐렴'이라 못 박고 일본 헐뜯기에 나서지 않았을까. '중국 눈치' 보느라 매번 뒷북 대응하는 지금과 달리 세계보건기구(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전에 '일본인 입국 금지 조치'를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혐오적 발언을 삼가라"는 정부 말에 좀처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일본을 모질게 대하는 것의 반만큼 중국을 대하고 중국을 극진히 배려하는 것의 반만큼 일본을 대할 수는 없을까? 정부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방역 문제에서 대중 관계를 지나치게 고려하다 놓친 것은 없는지 재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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