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취재파일] 추미애 장관님, 무엇을 위한 '기준 후퇴' 입니까?

임찬종 기자 입력 2020.02.12. 10:57 수정 2020.02.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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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서원 씨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습니다."

간단한 퀴즈로 시작하겠습니다. 위 문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인권'을 제한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제한하지 않은 것일까요?

● "이재용은 뇌물을 줬다."라는 문장이 허용되는 이유

정답은 '제한한다.'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서원 씨(최순실 씨)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인정됐지만, 그럼에도 이를 여러 사람에게 공표하는 것은 이재용 부회장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심지어 (악법으로 평가되긴 하지만) 형법에 규정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자가 이런 문장을 쓴다고 해서 처벌되지 않을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 비난받지도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런 보도로 인해 제한되는 이재용 부회장의 기본권보다 보도를 통해 실현되는 공익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국내 최대 기업의 지배주주가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실현되는 공익이 당사자의 인격권이 일부 제한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언론 보도뿐만이 아닙니다. 중요 범죄 피의자를 체포했다는 경찰의 발표, 공적 인물이 세금을 상습 체납했다는 국세청 보도자료, 피감기관 소속 공무원의 비위 의혹에 대한 국회의원의 기자회견, 아직 항소심과 대법원을 통해 확정되지 않은 1심 유죄 판결문의 공개까지 모두 당사자의 인권을 일정 부분 제약하는 행위입니다.

● '공인'에 대한 정보 공개: 기본권과 공익을 비교해 판단

이런 행위들이 정당화되는 것도 실현되는 공익이 제한되는 당사자의 기본권보다 더욱 중대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대법원도 정보공개와 관련해 제한되는 당사자의 기본권과 실현되는 공익을 비교해서 정당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밝히고 있습니다. ("비공개에 의하여 보호되는 이익과 국민의 알권리의 보장과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 및 국정운영의 투명성 확보 등의 이익을 비교·교량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3두12707 판결)

중요한 것은 '기준'입니다. 국민의 알권리와 당사자의 명예권이라는 두 가지 기본권이 충돌할 때, 공익과 당사자의 인권이 상충될 때, 어느 지점을 '기준'으로 설정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이미 관행과 제도로 자리 잡아서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기준'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공적 인물에 대한 1심 유죄 판결을 공개하는 경우를 봅시다. 유죄 선고를 받은 당사자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행위이고,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도 남아 있지만, 공적 인물의 1심 유죄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재판처럼 확실한 증거를 놓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언론사가 최선을 다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에 공인에 대해 합리적 의혹을 제기하는 것 역시 공익적 행위라는 사회적 '기준'도 확립돼 있습니다.

공적 인물의 범죄 혐의에 대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참여정부 이후 15년 가까이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는 행위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 씨,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으며, 이런 행위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 추미애 장관의 갑작스러운 '기준 변경'…이유는?

그런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4일 이 같은 '공소장 국회 제출'이 재판을 받는 당사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인정되어 왔던 사회적 기준과 달리, 공소장 국회 제출로 인해 제한되는 당사자의 기본권이 이로 인해 실현되는 공익보다 더욱 중대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필이면 청와대 관계자들이 선거 개입 혐의로 기소된 사건부터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추 장관은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공소장 국회 제출을 거부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 갑작스러운 기준 변경은 정말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전후 사정을 따져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일단 공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경우에 비해 정보공개와 언론의 자유를 강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원칙이라는 점을 지적해두겠습니다.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간에는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 당해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그 평가를 달리하여 야 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 (대법원 2002. 1. 22. 대법원 판결 2000다 37524)

공인(公人)의 범죄 혐의에 대한 공소장의 경우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공개'와 '비공개'라는 관점에서만 살펴보자면 논란의 소지 자체가 없습니다. 공소장은 법적으로 내용을 공개하는 것을 원익으로 하는 문서입니다. 우리나라 법률은 재판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공개재판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공개재판에서 검사가 공소장의 내용을 낭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조직법 제57조(재판의 공개) ①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다만, 심리는 국가의 안전보장, 안녕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결정으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85조(검사의 모두진술) 검사는 공소장에 의하여 공소사실ㆍ죄명 및 적용법조를 낭독하여야 한다. 다만, 재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검사에게 공소의 요지를 진술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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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news.sbs.co.kr/d/?id=N1005645105 ]

● 추미애 "1회 공판기일 이후 공개 검토"

추미애 장관 역시 공소장을 아예 비공개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추 장관은 2020년 2월 11일 법무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도 "공소장을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공개한 것이지 공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왜곡"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공소장 내용이 공개된 법정에서 낭독되는 제1회 공판기일 이후에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공소장을 공개하겠다는 것이지, 아예 비공개하겠다는 뜻은 아니란 것입니다.

논점은 이제 좀 더 좁혀집니다. 법원의 1회 공판기일 이후 공개될 공소장 내용을 정식 공판이 시작되기 전에 공개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실현되는 공익과 제한되는 당사자 기본권의 비교 원칙'을 적용해 추 장관의 논리를 풀어 본다면, '나중에 공개재판을 통해 공개되는 공소장 내용을 정식 공판 절차 이전에 공개하는 행위의 공익성은 이로 인해 제한되는 당사자의 기본권에 비해 크다고 볼 수 없다.'라는 주장이 되겠습니다.

이런 주장 자체가 타당한지 검토하기에 앞서, 추미애 장관의 주장은 불과 얼마 전까지 추 장관 본인이 견지하던 입장과 달라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추미애 장관은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6년 11월 29일 페이스북에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검찰은 빼곡한 글씨로 30장의 공소장에 대통령을 공동정범, 때로는 주도적으로 지시한 피의자라고 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당시에는 국회에 제출된 공소장을 근거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했으면서, 지금은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 2016년 11월 29일


● 추미애 장관과 민주당 의원들의 '내로남불'

이에 대해 추 장관은 지난 6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 사건은) 헌법재판의 영역이며, 이번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형사재판이라 무관하다."라며 자신의 과거 입장과 지금의 입장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추미애 장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추미애 장관은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아직 기소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피의사실이 이미 기소된 사람의 공소장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기소되지 않은 사람들의 피의사실이 기소된 사람의 공소장을 통해 공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추미애 장관이 2016년 11월에 페이스북에 인용했던 내용이 정확히 여기에 해당합니다. 추 장관은 당시 피의자로 입건돼 있었지만 기소되지는 않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피의사실을 국회에 제출된 이미 기소된 다른 사람의 공소장을 보고 파악해 글을 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자신이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 행위, 즉, 이미 기소된 사람의 공소장에 적시된 '아직 기소되지 않은 피의자의 피의사실'을 인용해 당사자를 비판하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아무리 법무부 장관이라고 해도 뻔히 보이는 모순을 모순이 아니라고 우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추미애 장관만 입장이 바뀐 건 아닙니다. 민주당의 여러 정치인들도 입장을 뒤집거나, 자신들의 과거 발언과 배치되는 민주당의 주장을 방관하고 있습니다. 추미애 장관이 공소장의 국회 제출을 거부한 지 이틀만인 2020년 2월 6일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서라도 법무부의 조치는 만시지탄일지언정 부당하게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라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넉달 전인 2019년 10월 7일 민주당 소속 법제사법위원인 김종민 의원은 "(조국 전 장관의 5촌 조카인) 조범동 씨에 대한 공소장을 반드시 제게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공소장 국회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역시 민주당 소속 법제사법위원인 박주민 의원은 김경수 경남 도지사에게 1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재판장이었던 성창호 부장판사의 사법농단 연루 의혹에 대해 2019년 1월 30일에 비판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도 (성 부장판사가) 관여된 부분이 적시돼 있습니다."라고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을 근거로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년 사이 공소장 국회 제출로 인해 제한되는 당사자의 기본권과 관련해 엄청난 상황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민주당은 유리할 때는 공소장 제출을 요구하거나 제출된 공소장을 적극 활용하다가, 불리한 상황이 되자 추미애 장관의 공소장 국회 제출 거부 조치를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 '靑 선거개입 의혹' 공소장이 공판 전에 공개되어야 할 이유

추미애 장관과 민주당 측의 '내로남불'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했으니, 이제부터는 이와 별도로 '공소장 국회 제출 거부'에 대한 법무부의 논리 자체는 정당한지 따져 보겠습니다.

추미애 장관이 국회 제출을 거부한 사건의 공소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울산시장 선거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공소장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공소장의 내용은 법정에서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개됩니다. 문제는 정식 공판이 열리기 전에 이 사건 공소장 내용이 공개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상적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논란이 되는 공적인 사안에 대한 정보가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다는 일반론은 차치하더라도, 청와대 관계자들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경우 제1회 공판기일에 이전에 공소장 내용이 공개되어야 할 분명하고도 특별한 이유가 존재합니다. 정식 공판이 시작되기 전에 국회의원 총선거(총선)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한창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정경심 교수 사건과 비교해보겠습니다. 정경심 교수는 사문서위조 혐의 등으로 2019년 11월 11일 기소됐습니다. 1회 공판기일은 2020년 1월 22일이었습니다. 쟁점이 복잡하고 사회적 논란이 큰 사건인 만큼 기소 시점부터 1회 공판기일까지 2개월이 넘게 걸린 겁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는 2020년 1월 29일에 13명이 기소됐습니다. 정경심 교수 사건과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고 가정해도 4월 15일 총선 즈음에나 1회 공판기일이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법관 인사와 업무 재배치가 있는 만큼, 이 사건은 중간에 인사이동이 없었던 정경심 교수 사건보다 진행이 느릴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추미애 장관 뜻대로 1회 공판기일 이후에나 공소장이 공개됐다면 국민들은 4월 15일 총선 이전에는 상세한 공소장 내용을 알 수 없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공소장을 입수해 전문을 보도하면서 추 장관의 의도와 달리 공소장 내용이 알려졌습니다.)

● 총선 전 공개 막아야 할 이유 있었나?

검찰의 공소장이 확정된 사실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이 있는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두고 있는 국민 입장에서는 검사가 청와대 관계자들의 선거 개입 혐의에 대해 어떤 이유로 공소를 제기했는지 구체적 정보를 알아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국정농단 당시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국민이 알 권리가 있었듯이, 사법농단에 대해 국민이 알권리가 있었듯이, 선거를 앞둔 국민들에겐 현 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의 선거개입 혐의에 대한 공소사실을 알권리가 있는 것 아닐까요?

구체적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은 2019년 11월 2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서 지방선거 이전에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수사 관련 "중간보고를 받은 건 9번"인데 "대부분 지방선거 이후에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공소장 내용에 따르면 검찰은 경찰의 청와대 보고가 모두 21번이었으며, 이 중 선거 이전에 이뤄진 것이 18번으로 오히려 대다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주장과 검찰 주장 중 어느 쪽이 옳은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인 국민들이 선거개입 의혹이라는 중대한 공적 사안과 관련해 청와대와 검찰이 정반대 주장을 하고 있으며, 적어도 둘 중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만약 공소장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국민 대다수는 이런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알권리는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정책 결정에 정상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보장됩니다. 특히 선거에서 국민의 뜻이 올바르게 표출되기 위해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공적 사안에 대한 알권리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중대 사안에 대한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총선 이후 어차피 공개될 공소장 내용을 미리 공개함으로써 빚어지는 당사자의 피해를 비교해 보면, 이 사건의 공소장이 공판 이전에 공개되어야 할 '공익적 이유'는 매우 명백해 보입니다. 중대한 공적 사안에 대해서도 기소 이전에는 알권리를 극단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시행 중이라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추미애 장관은 '하필이면 이번 사건부터' 참여정부 이후 15년 동안 이어져왔던 공소장 국회 제출을 가로막았지만, 지금까지 확인한 것처럼 오히려 이번 사건이야 말로 법원의 공판기일이 열리기 전에 국회에 공소장이 제출됐어야 할 분명하고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추미애 장관이 하필이면 이번 사건 공소장부터 제출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에는 선거를 앞두고 정부에 불리한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봉쇄하려는 분명하고도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정보 공개의 범위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는 공판기일이 시작되기 전에 공소장을 공개하는 것에 좀 더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반면, 공소제기가 되자마자 공소장 전문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미국 같은 나라도 있습니다. 알권리와 당사자의 기본권 사이의 적절한 균형에 대한 '기준'은 각 사회의 역사적 경험, 국회 자료 제출과 관련된 법률의 내용, 정보 공개 수단의 다양성, 각 사회가 더욱 중시하는 헌법적 가치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다르게 설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추미애 장관이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외국 사례도 헌법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지 참고하는 것이지 거기에 대해 진실 공방을 끌고 가는 것은 보탬이 되지 않는다."라고 밝힌 것은 후안무치한 일입니다. 지난 6일에는 "미국에서도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공소장을 게시"라며 미국 사례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으려고 했으면서 SBS의 팩트체크 등으로 허위 주장이라는 점이 명확해지자 이제 와서는 진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위공직자가 중요한 정책 결정과 관련해 허위 발언을 했으면 최소한 사과를 한 뒤 다시 주장을 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에서 향후 공판에서 공개될 공소장은 제출 거부가 가능한 대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는 점, 현 정부에 불리한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시민단체든 공소장 제출 거부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던 점, 오히려 얼마 전까지는 추미애 장관 본인과 민주당의 여러 정치인들이 국회에 제출된 공소장을 적극 활용했거나 공소장 국회 제출을 요청했다는 점, '공적 인물에 대한 공소장은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기준이 우리 사회에서 15년 가까이 유지되어왔던 점, 공소장 제출 거부 방침을 결단한 계기가 된 '청와대 관계자들의 선거 개입 혐의에 대한 공소장'이야말로 오히려 공판기일 이전에 공개되어야 할 분명하도고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점 등을 종합할 때 갑작스러운 '기준 후퇴'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상식적 진실

특히 법무부가 이번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권을 내세우는 것은 인권이란 개념을 희화화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박근혜, 최서원(최순실), 우병우, 양승태에 대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할 때는 거의 언급된 적이 없던 '형사사건 피고인의 권리'가 '우리 편'이 기소되고 나서야 알권리와 공익을 희생하면서라도 달성해야 할 숭고한 가치가 된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최서원, 우병우, 양승태의 인권과 '우리 편'의 인권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오히려 알권리의 중요성을 축소하려고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추 장관은 자가당착에 빠진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조남관 법무부 검찰국장은 11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추미애) 장관님은 '우리도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 때는 알권리가 중요한 시기였지만 이제는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필요가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라고 밝혔습니다. 공소장 국회 제출은 참여정부 때인 2005년부터 시작됐습니다. 공소장 국회 제출과 관련해 "권위주의 정권 때는 알권리가 중요한 시기"였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추 장관은 알권리를 중시해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기 시작한 참여정부가 "권위주의 정권"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이미 많은 사람이 묻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묻게 될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준을 후퇴시킨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간이 흐르면 상식에 부합하는 진실을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임찬종 기자cjy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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