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고향 대구 남구, 생가 활용한 '봉준호 사업' 뛰어들어

김일우 2020. 2. 12. 14:5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이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하자 대구 남구가 '봉준호 기념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대구 남구(구청장 자유한국당 조재구)는 12일 "봉준호 감독이 나고 자란 봉덕동·대명동 일대 주민들의 성원과 요청에 따라 이와 관련된 영상문화사업 육성 및 관광콘텐츠 개발을 위한 구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구 남구 대명9동 봉 감독 살던 집 그대로
남구 "봉 감독 주택 주변 스토리텔링 고민"
12일 대구 남구 대명9동에 봉준호 감독이 어릴 때 살았던 주택이 남아있다. 대구 남구 제공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하자 대구 남구가 ‘봉준호 기념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봉 감독은 대구 남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구 남구(구청장 자유한국당 조재구)는 12일 “봉준호 감독이 나고 자란 봉덕동·대명동 일대 주민들의 성원과 요청에 따라 이와 관련된 영상문화사업 육성 및 관광콘텐츠 개발을 위한 구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남구는 먼저 지난해 예산확보에 실패했던 ‘대덕시장 재생 영상콘텐츠산업 인프라(지식산업센터) 건립’을 다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대명9동에 봉 감독이 살던 주택이 아직 남아있는 것을 이용해 그 일대를 꾸미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봉 감독은 1969년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고 봉상균씨는 대구가톨릭대 응용미술학과 교수였다. 봉 감독은 이후 대구 남구 대명9동에 있는 주택에 살며 남도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78년 서울로 이사했다. 봉 감독은 어린 시절 대구 중구에 있던 만경관과 아카데미극장에 영화를 보러 다녔다.

조재구 청장은 “남구와 대구의 자랑, 나아가 대한민국의 자랑인 봉준호 감독이 우리 동네 출신이라 너무 기쁘다. 봉준호 감독이 허락한다면 감독과 관련된 영상문화산업과 관광콘텐츠 개발에 공을 들여 남구를 봉준호 감독과 함께하는 영상문화의 성지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네이버에서 한겨레 구독하기
▶신문 보는 당신은 핵인싸!▶조금 삐딱한 뉴스 B딱!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