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알권리와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 / 정한중

2020. 2. 1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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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중 ㅣ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모든 국민은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본다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국민의 알권리 내지 언론보도의 자유는 서로 충돌하지만, 모두 우리 헌법에서 규정하는 중요한 기본권이다.

미국에서도 이미 1950년대부터 범죄보도가 사실인정권자, 특히 배심원에게 공판 전 유죄의 예단을 줄 위험을 인식하여, 이를 공정한 재판의 보장에 관한 중대한 문제로 다루면서 문제점 파악과 해결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해 왔다.

미국에선 주 법원의 언론사에 대한 보도금지 명령을 다룬 네브래스카기자협회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이 위헌이라고 선고하여 언론의 범죄보도를 금지할 수 없었다. 언론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보장되는 배경이다. 그러나 미국법률가협회(ABA)는 경찰과 검사의 언론에 대한 범죄정보 제공이 사회에 피의자나 피고인을 유죄로 바라보는 분위기를 발생시킬 위험을 강하게 인식하고, 수사기관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서 ‘표준행동준칙 3.8’(검사의 특별책임 부분)을 규정했다. 법규의 효력을 가지는 이 준칙은 검사 자신이 유죄의 예단을 유발하는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하며, 위반한 검사는 징계 대상이 된다. 또한 예단 배제를 위해 관할 변경신청 등 여러 수단과 함께 검찰, 법원, 언론기관이 협약을 체결하여 범죄보도의 가이드라인을 정할 정도로 공정한 형사절차를 중요시하고 있다.

최근 검찰이 청와대 하명수사와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된 13명을 기소하였는데 법무부가 공소장 제출을 요구하는 국회의원의 요청에 대하여 공소장 대신 그 요약본을 제출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국회의 요청이 있으면 중요 사건의 ‘서류 등’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을 법무부 장관이 무시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원래 공소장 등과 같은 소송서류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형사소송법 제47조는 “소송에 관한 서류는 공판의 개정 전에는 공익상 필요 기타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공개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의 취지는 피고인 또는 이해관계인의 명예를 보호하고 법관이나 배심원의 판단에 대한 외부의 영향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공소장은 공개되는 첫 재판에서 검사에 의하여 낭독되기 때문에 그 이후 보도될 수밖에 없다. 그 이후는 배심재판의 경우, 매일 재판을 하기 때문에 배심원은 증거조사를 통하여 유무죄의 심증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 전에 공소장 전문이 공개되고 유죄로 간주되는 보도가 이어지면 배심원은 물론 법관도 그에 오염될 수밖에 없다. 배심재판이 아닌 사건이 많다고 해도, 그런 이유만으로 재판 전 공개의 위험성을 무시하는 것은 자칫 피고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회법 제128조 제1항에 따라 “본회의, 위원회 또는 소위원회는 그 의결로 안건의 심의 또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와 직접 관련된 보고 ‘서류 등’의 제출을 행정기관 등에 요구할 수 있다”. 제6항은 제1항의 보고 또는 서류 등의 제출 요구 등에 관하여 그 밖에 필요한 절차는 다른 법률, 즉 ‘국회증언감정법’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증언감정법 제4조 제1항은 “국회로부터 국가기관이 서류 등의 제출을 요구받은 경우에 제출할 서류 등의 내용이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 등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법률 제2조나 제4조의 국회의 요구는 본회의나 위원회, 소위원회가 의결 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과 같이 ‘개별’ 의원은 서류 제출 요구를 할 수 없고 국가기관 등은 이를 따를 의무도 없기 때문에 법무부장관이 법률을 위반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국민의 알권리 및 언론보도의 자유를 조화해 기존 관행을 존중하되 공소장이 아닌 요약한 내용을 의원에게 제출한 법무부의 결정은 타당하다.

진술거부권의 보장, 수사절차에서 변호인 참여권 등 우리나라 형사절차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 확신범이나 정치적인 사건에 대한 재판을 통해 발전했다. 원칙에 충실하다면 정파적이라는 비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첫 재판 전 공소장 공개가 원칙이 아니라 비공개가 원칙이며, 이후 공개 범위도 국민의 알권리 내지 언론의 자유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되새겼으면 한다. 공소장을 조금 늦게 공개해서 침해되는 알권리에 비하면, 일찍 공개해서 피고인이 잃게 될 인권이나 재판상 피해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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