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권경애 변호사 "사건은 사실의 영역, 믿음으로 무장 땐 국민주권 실현 못해"

유희곤 기자 입력 2020.02.13. 06:01 수정 2020.02.13.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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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진보 성향으로 ‘정권 비판’ 권경애 변호사가 말하는 검찰개혁

권경애 변호사가 12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권이) 잘못했으면 사과를 해야 한다. 변명이라도 듣고 싶다”고 적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 ‘듣보잡’ 변호사였는데 하루아침에 엄청 유명해졌더라고요. 인터뷰까지 하면 더 불편해지고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저쪽(보수)을 도와줄 마음도 없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권경애 법무법인 해미르 변호사(55·사법연수원 33기·사진)는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지난 9일 청와대의 2018년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을 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1992년 초원복집 회동은 발톱의 때도 못 된다” “(경찰) 수사의 조작적 작태는 이승만시대 정치경찰의 활약에 맞먹는다” 같은 표현을 썼다. 여러 언론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진보 성향 변호사’의 정권 비판에 초점을 맞춰 이 글을 보도했다. 그는 온·오프라인에서 “당황할 정도로 격하고 낯선 (지지 또는 비난) 반응”을 겪었다고 한다.

권 변호사는 “운동권 학생”이었다. 서울 가리봉동, 경기 안양 등지에서 위장취업 등 노동운동을 했다. 대학 입학 12년 만인 1995년 졸업했다. 200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 여러 활동을 했다. 2005년 참여연대, 2006년 민변에 가입했다.

지난해 7~11월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및 검경 수사권 조정 태스크포스(TF)에서 일했다. 권 변호사는 예나 지금이나 검찰개혁 지지자다.

지난해 8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의혹이 처음 제기될 때에도 ‘옹호’했다. “조 전 장관이 집안일은 잘 모를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지난해 9월6일 조 전 장관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후 조금씩 바뀌었다. 조 전 장관이 취임한 지난해 9월9일 법무부 김오수 차관과 이성윤 당시 검찰국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한 수사팀’을 제안한 게 결정적이었다. 그는 “‘현 정권이 검찰 수사를 방해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고 한다.

권 변호사는 지난달 취임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 직제 개편, 인사 조치, 수사·기소 분리 등 잇따른 조치를 두고도 “검찰을 악으로 규정하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환호하겠지만 많은 이들은 검찰개혁의 의도를 의심하고 정치경찰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법률이 시행되고 공수처가 설치되기 전에 관련법의 독소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경향신문은 1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권 변호사를 인터뷰했다. 그는 “올해는 ‘입 닫고’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잘 안된다. 전날 받은 사전 질문지 답변 작성에 밤을 꼬박 새웠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건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과 법리의 영역입니다. 사실에 대한 합리적 논증이 필요한 영역에서 믿음과 열망의 프레임으로 무장하면 정치는 종교가 되고 국민주권의 헌법 이념은 실현될 수 없습니다.”

■“좌천성 인사 뒤 내놓은 검찰개혁 방안,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1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사무실에서 권경애 변호사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검찰 권력 분산에 동의하지만 경찰개혁 없인 수사공백 우려

무엇보다 알권리 필요한 사건추 법무 방침 이해하기 힘들어

청 선거개입 사건 공소사실하나만 인정돼도 중대 범죄

권 변호사는 조 전 장관, 추 장관 등이 앞장선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권력을 축소·분산·제어해야 한다는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조 전 장관이나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추 전 장관 취임 후 진행된 검찰 인사와 직제개편을 보면서 신뢰를 접었다고 했다. 그는 “참여연대와 민변 탈퇴를 고민하고 있다. 내 ‘사견’이 일부 보수 정치권과 언론에 ‘악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왜 믿지 못하게 됐나.

“법무부가 지난달 13일과 지난 3일 정권 비리를 수사하던 검사들을 핀셋으로 뽑아내듯 좌천성 인사를 했다. 신라젠, 라임자산운용 사건을 담당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아예 없어졌다. (검찰을 대신해야 할) 경찰의 특수·인지 수사 역량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특수통 검사들을 한직에 발령내고 검찰 직제개편안을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방향이 옳지 않다고 봤다.”

- 검찰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은.

“검찰 권한을 분산시키더라도 그 과정에서 수사공백은 없어야 한다. 경찰개혁 없이 검찰개혁은 완성될 수 없다. 경찰은 수사하고, 검찰은 수사지휘권과 영장청구권을 통해 경찰을 견제하면서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간명한 구조로 가야 한다. 이는 10년 이상 필요한 장기적 과제다.”

- 법무부의 공소장 국회 제출 거부, 검찰 내 수사·기소 인력 분리 문제가 불거졌다.

“청와대의 선거개입,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은 회복할 수 없는 인권보호의 긴박성이 인정되는 사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국민 알권리를 어떤 사건보다도 폭넓게 보장해야 할 사건이다. (추 장관의 방침은) 이해하기 힘들다. 검찰이 인지수사 주체라는 점에서 수사 부서와 기소 부서를 분리하는 방안은 논의할 수 있지만 사회적 합의와 국회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에 대한 불기소 처분을 시도하고 추 장관의 인사권 전횡과 수사개입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내놓은 방안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 청와대와 일부 법조인들은 공소장은 검찰의 ‘의견’일 뿐이라고 한다.

“재판에서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에 적힌 범죄사실의 진위가 최종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단, 공소장에는 e메일 등 청와대가 범죄첩보를 가공해 경찰에 내린 물적증거, 울산지방경찰청이 거짓 진술조서를 꾸몄다는 증거와 진술이 나온다.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울산지검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라고 압박했다는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의 자백도 있는데 이를 보강하는 증거가 있어서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검찰도 자백이 유일한 증거면 기소하지 못한다. 법조인이라면 공소장의 범죄사실이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 따져봐야 한다. 무조건 ‘검찰의 의견일 뿐’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다. 법원에서 3가지 범죄 혐의 중 하나만 인정돼도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인 선거를 왜곡한 중대 범죄다.”

- 법조계와 금융계에서는 올해 사모펀드가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데.

“사안이 복잡해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간단히 지적하자면 (2009년 제정된) 자본시장법은 사모펀드 육성법이다. 사모펀드 중에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는 온갖 편법과 불법을 감추는 좋은 가림막이 될 수 있는 반면 규제는 거의 없다. 공직자윤리법에서도 자본시장과 연관해 개정했어야 할 조항들이 많다. (조 전 장관 일가가 투자한) 블루코어 펀드는 그 허점을 이용한 공직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서 검찰이 기소한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사모펀드를 알아야 신자유주의 폐해의 실물 메커니즘을 알 수 있는데 국내 개혁진보 진영은 이에 대해 거의 백지 상태로 보인다.

- 참여연대와 민변 탈퇴 가능성을 언급했다. 주변 반응은.

“제 입장에 공감한다는 분들의 연락이 많았다. 20년 만에 연락해 ‘밥 사주고 싶다’고 말한 분도 있다. 저와 생각이 비슷한데도 드러내지 못하는 진보 쪽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의견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보수 진영에서 자기 생각과 글을 어떻게 소비할지 걱정한다. 보수 진영을 도와주고 싶지 않으니까. 다른 하나는 최근 저에 대한 공격에서 보듯 적극적 지지층의 등쌀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피곤하고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 참여연대와 민변 탈퇴를 고민한 시점은 언제인가.

“참여연대는 가입 초기 외에는 회비만 내는 후원회원 수준이었고 특별한 관련성이나 소속감은 사실 크지 않다. 다만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의 조 전 장관 옹호를 보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됐다. 민변은 여전히 애정도 있고 기대도 크다. 민변의 정권 감시와 인권 신장,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온 노력과 역사도 함부로 훼손돼서는 안된다. (소신 발언 후) 민변 ‘타이틀’이 소비되는 방식을 보고 탈퇴를 고민했으나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민변에 누가 된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참지는 않겠지만 제 글과 말이 민변과 엮여서 정치적 목적에 악용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 일부 극성 지지자들의 태도가 달라질까.

“민주당 내부에서도 위기의식을 느끼는 분들이 있겠지만 공천을 앞둔 상황에서 적극적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장은 개선될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본다. 대안도 없어 답답하다. 그래도 (적극적 지지층의) 선한 열망을 기득권 강화에 이용하는 자들과의 싸움이 필요하다. 우리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지만….”

- 2017년 민주당 인재영입위 1차 영입인사 60명에 포함됐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민변 출신 정치인이 민주당에 한·미 FTA 등 통상 관련 자문을 해줄 전문가가 없다며 활동해달라고 요청을 해와서 이름을 올렸을 뿐 실제 활동은 없었다. 민주당을 포함해 당적을 갖거나 당 활동을 한 적이 없다.”

- 향후 정치 활동 계획이나 꿈이 있는지.

“더 후일이라면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여의도에 발길도 내밀지 말아야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하고, 오해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내 양심과 소신을 침묵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제안에 응한 적도 없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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