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병역거부' 여호와의증인 111명 무죄 첫 확정.."대체복무 최선 다할 것"
[경향신문] ㆍ여전한 ‘병역기피’ 눈총
13세 때 신도 된 김주영씨
“병역 면제 오해 풀고 싶어”
‘진정한 양심’ 판결의 근거
대체복무 심사 활용 전망
“20대의 중요한 시간들을 재판을 받으면서 살았어요. 선고를 보는데 기쁘고,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제 결정을 존중받을 수 있는 판결이 나와 감사합니다.” 1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만난 김주영씨(28)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김씨는 여호와의증인 신도이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대법원은 이날 김씨를 포함해 총 111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이 새 법리와 판단 기준에 따라 상고심 무죄를 처음으로 확정한 날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8년 11월1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내린 지 1년3개월 만에 확정 판결이 나왔다.
13살 때 침례를 받아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된 김씨는 2017년 9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2년6개월간 재판을 받았다.
재판은 견디기 힘들었다. 난생처음 법정에 서서 신념을 증명해야 했다. 어떻게 양심을 형성해왔는지 각종 자료를 제출했다. 피고인 신분으로 검사 신문을 받았다. 김씨는 “재판에 나가는 날은 잠도 오지 않았다”며 “원래 직장에서 사장님께 재판이 잡혀서 근무를 못하겠다고 말하는 날이 잦아져 그만두게 됐다. 요즘은 일용직 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쩌면 유죄 판결을 받아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신념은 (지키기) 쉬울 때만 유지되는 게 아니라 어려울 때도 유지되는 것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2018년 3월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1년6월의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김씨가 항소한 뒤 대법원이 입장을 바꿨다.
대법원은 헌법 19조가 보호하는 양심이란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며, 이 같은 ‘진정한 양심’에서 나온 병역거부는 무죄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병역거부는 신앙 또는 내심의 가치관·윤리적 판단에 근거해 형성된 진지한 양심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검사는 상고했다. 대법원이 이날 무죄로 결론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아직 차갑다. 김씨는 병역기피가 아니라며 오해를 풀고 싶다고 했다.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 병역이 면제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저는 대체복무를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양심에 반하지 않고 군 관련 기관의 관리를 받지 않는 대체복무제가 마련된다면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복무를 수행하고 싶습니다.”
이날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한 사례들은 공통점이 있다. 어렸을 때 침례를 받아 지속적으로 종교활동에 참여했고, 일관되게 형사처벌 위험을 감수하면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거부 의사를 지녀온 경우다. 순수한 민간 대체복무제가 시행되면 이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생활기록부에 폭력적인 성향도 기재되지 않았다.
대법원엔 아직 다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사건이 남아 있다. 여호와의증인 신도만 해도 400여건이 계류 중인 상태다. 침례 이후 입영 거부까지 기간이 짧거나, 입영 거부 이후 종교활동을 중단한 사례다. 군복무 이후 예비군훈련을 거부하거나 입대 후 양심의 발생을 주장하며 전역을 요청하는 사건도 계류 중이다. 비폭력·평화주의 등 이른바 비종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서 대법원은 아직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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