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민주당, 그리고 휴브리스

박세열 기자 입력 2020. 2. 14. 01:47 수정 2020. 2. 14.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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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검찰이 임미리 교수 기소하면 환영할텐가?

[박세열 기자]

 
오이디푸스는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현대인들에게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다. 

옛날 테베의 왕 라이오스가 있었다. 그는 신탁을 통해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죽이고 부인과 결혼한다는 해괴한 예언을 듣게 된다. 결국 라이오스는 양치기에게 갓난아기인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양치기는 차마 그러지 못하고 라이오스의 아들을 다른 이에게 맡겨 키우도록 한다. 그가 바로 오이디푸스다. 

성인이 된 오이디푸스는 길에서 만난 노인을,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한다. 이후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명성을 얻어 행방불명된 테베의 폭군 대신 왕이 된다. 그리고 홀로 남은 왕비와 결혼한다. 그러나 자신이 죽였던 노인이 자신의 친부였고, 자신이 결혼한 왕비가 친모였다는 사실을 알게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른다. 

여기서 소포클레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아니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관통하는 키워드, 휴브리스(Hubris)다. '오만'으로 보통 번역되는데, 진실을 알지 못하는 미천한 인간이 '내가 진실의 수호자'라고 떠드는 것을 주로 빗대어 회자된다. 운명을 제멋대로 바꾸려는 인간들은 간혹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폄훼하는 '오만'을 드러내는데, 신은 그들에게 '너희들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일깨워준다. 

오이디푸스가 그렇다. 테베의 왕이 되어 '테베의 전 왕을 살해한 자를 처단하겠다'고 떠들고 다니던 그는 자신이 '패트리사이드'를 저질렀단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휴브리스는 '운명'과 같은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운명을 피해, 양부(양부인 줄도 몰랐던)를 떠나 이웃나라 테베로 온 오이디푸스는 '이미 예언된 것이라면 피할 수 있다'는 유한한 인간의 오만을 드러낸다. 그때문에 친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동침한 것이다. 신이 내린 결말은 비극이다.  

최근 민주당을 보면서 휴브리스를 떠올린다. 임미리 교수가 <경향신문>에 실은 '민주당만 빼고'라는 글을 고발했다. "칼럼의 제목과 결론에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내용이 당의 법률적 해석에 의하면 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론은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한다. 'OOO당은 정권을 잡을 자격이 없다'던가, 'OOO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 공직에 나서면 안된다'는 식의 기사와 논평은 죄다 '낙선을 목적으로 한' 선거법 위반이니까. 원종건 씨도 아마 자신을 고발한 전 여자친구를 선거법 위반으로 엮을 수 있지 않겠나. "내 신원이 노출될 우려가 컸으나, 원 씨가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으니 원종건 씨 데이트 폭력 피해자는 '선거법 위반'이 아닌가? 

민주당은 선거에 이기기를 원할 것이다. 다른 정당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주당을 찍지 말자'는 신문 칼럼을 문제삼는 것은 무리가 없다. 그런데 이걸 민주당은 검찰에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회가 정치 현안을 죄다 검찰로 가져가는 행태에 대한 자성도 모자랄 판에, 이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까지 검찰에 들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집권 여당을 보고 있자면, 검찰 개혁에 소신을 가졌다 한들, 어느 검사가 용감하게 나서서 검찰 개혁을 말하고 추진할지 궁금하다. 

더욱 고약한 것은 공직선거법 위반 고발 사건은 취하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이지만, 선거법은 더 엄격하게 다뤄진다.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을 했다면, 이미 그건 '공공의 안녕'과 '선거 질서'를 훼손했기 때문에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처벌받길 원하지 않는다'고 해봐야 아무 의미 없다. 혐의가 있건 없건, 사건을 종결 하더라도 검찰은 강제 수사를 해야 한다. '민주당 후보들을 낙선시킬 목적이 있었나요' 따위의 황당한 질문에 답하고 조서 꾸미고 지장 찍고 하는 필자는 무슨 죄인지. 

만약 검찰이 정치적 목적을 가진다면, 이 사건을 진지하게 수사할 것이다. 그것이 민주당 선거에 개입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니까. 임미리 교수를 소환하고, 호들갑 떨며 '네 죄를 네가 알겠다'고 호통치곤 '선거법 위반'으로 그를 기소하는 윤석열 검찰을 상상해보라. 민주당은 정의가 실현됐다며 두손 들고 환영할 텐가? 장담컨데, 그런 그림이 그러지는 순간, 이 정권은....뒷말은 생략한다. 

지금이라도 당장 민주당은 선거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그만두고 고소를 취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검찰은 이런 사건에 힘을 쏟지 말고 무혐의 처리하는 게 맞다. 민주당은 또 당사자와 국민에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오만한 언론'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이 사태를 키워나갈 경우 4.15총선에 민주당에 갈 표들, 그것도 '전통적 지지층'의 표들은 길을 잃게 될 것이다. 표 잃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정당에 있는가? 이 고발을 기획한 사람은 필경 민주당 내부의 X맨이 분명하다. 부디 찾아 책임을 묻는게 좋을 것이다. 선거를 망치려 했으니까.

피디수첩을 수사하고 미네르바를 감옥에 넣던 자유한국당은, 그 흔한 반성도 없었기에 선거에서 찍을 이유가 없다.(이 발언도 민주당은 고발해주면 좋겠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찍을 만한 당이 되어야 한다. (이 발언도 선거 개입인가?) '오만'은 반드시 심판받는다. 고대 그리스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렇다. 민주당이 오이디푸스가 되지 않길 바란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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