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에 숨겨진 '자본'의 힘

김수정 전남대 지리교육과 연구원 2020. 2. 1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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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국경산업복합체와 이동성의 통제

[김수정 전남대 지리교육과 연구원]

 

교통수단과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편리하게 전 세계의 다양한 국가들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사람과 자본, 서비스의 이동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에 대해 혹자는 지금 이 시대는 바야흐로 '이동성의 시대'라고 일컫기도 한다.

여행이 우리의 일상생활로 스며들고, 우리나라 여권만 가지고 있으면 전 세계 189여 국가들을 특별한 절차 없이도 여행할 수 있는 것만 봐도 국경이란 것이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 "지구촌(global village)"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정말 국경이란 의미는 희미해지고, 전 세계는 누구나 쉽게 다른 나라로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일까?

국경의 의미 변화

국경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와 나라의 영역을 가르는 경계'다. 그러나 국경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다. 17세기 후반 국가(state)와 국민(nation)의 영토가 중첩되는 국민국가 설립 이후 국경은 국가 영토의 내부와 외부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국경'선'의 형태로 이해됐다.

그러나 21세기의 국경은 대단히 역설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모든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반면에, 다양한 형태를 지닌 새로운 국경을 세워야 한다는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자유로운 횡단을 선별적으로 통제하려는 권력의 힘은 안면인식, 지문인식, 홍채인식 등 각종 생체계측기술과 결합하여 훨씬 더 강력해진 모습을 보인다.

경계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국경을 마음껏 넘나들 수 있는 선진국 중상류층의 사람들은 손쉽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지만, 개발도상국의 이주 노동자들이나 선진국의 저소득층은 경계를 넘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국경은 이해 관계자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행위자들에게는 손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지만,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행위자들에게는 통과할 틈조차 보이지 않는 단단한 벽이 되어버린다.

장벽 비즈니스와 국경산업복합체(border-industrial complex)의 등장

9·11 테러 이후 '악한 의도를 가진' 행위자들의 이동성을 통제하고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 국경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면서, 국경은 위험 관리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정보기술 그리고 안보 담론과 결합한 국경 통제 시스템은 자본과 재화는 자유롭게 이동시키면서, 조건에 맞지 않은 사람들은 걸러내는 일종의 방화벽이자 거름망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화벽이 작동하는 공간은 단순히 검문소나 공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체 계측 기술을 통해 우리의 신체까지도 국경이 작동하게 된다.

국경은 국가의 영토 주권을 지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경계 관리와 통제를 수행하는 핵심 주체는 국가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선별적으로 이주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경계를 관리해 나가면서 중앙정부는 국경을 관리하는 데 있어 '불법 이민과 테러리스트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경비 강화, 신기술 도입, 기술 도입에 필요한 민간 행위자의 개입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 결과 국경은 아주 현실적인 차원에서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전 세계 안보 관련 기업들은 활발한 로비 활동을 통해 각 기관들이 최첨단 감시 기술을 도입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 국경-안보 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2019년 네덜란드 TNI(Transnational Institute)에서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장벽의 비즈니스가 2022년까지 약 529억 5000만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국경산업복합체(border-industrial complex)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국경산업복합체란 군부와 방위산업체 사이의 상호의존체제를 의미하는 군산복합체와 유사한 개념이다. 이는 방위산업체와 IT 기업, 컨설팅회사 및 대학·연구소 등이 이민국 또는 출입국관리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특정한 범주의 사람들이 국경을 통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이동성의 정화(purifying) 과정에 필요한 각종 군수품부터 국경감시와 불법체류자 단속에 필요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이민자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일컫는다.(1)

미국의 국경산업복합체

미국은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국경과 이민자들의 유입을 통제해왔으며, 국경을 통제하는 데 투입되는 예산과 인력은 매년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건설되고 있는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은 거대한 물리적인 장벽만을 설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리적 장벽은 미국 내륙, 멕시코의 국경지대까지 깊숙이 침투하는 광범위한 기술 기반의 국경 통제 시스템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1997년부터 미국 정부는 미국-멕시코 국경을 중심으로 카메라, 항공기, 동작감지센서, 드론, 비디오 감시 및 생체계측 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정찰 및 감시기술을 도입했으며, 그 사용 범위를 꾸준히 확대해왔다.

이들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이주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첨단 기술은 이제 국경지대뿐만 아니라 미국 내부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2019년 미국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 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는 차량번호판 스캔 기술, 전자기기(휴대전화, 노트북) 위치추적기술, 안면인식 기술, SNS 추적 기술 등 첨단 테크놀로지를 장착한 감시 추적망을 구축해 이주자들의 행적과 위치를 추적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ICE는 2017년 민간기업 비질런트 솔류션과 61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해 이민자들의 차량위치를 파악해왔다. 이 DB는 미국 전역의 프리웨이와 도로, 교량, 트럭 등에 설치된 번호판 스캔 판독기를 통해 차량정보를 수집하여 차량 소유주의 위치를 파악하는 기술로, 매월 약 1억 5000만 개의 차량 스캔 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된다.

이와 같은 다양한 첨단 기술 도입에는 보잉(Boeing), 엘빗(Elbit), FLIR Systems, IBM,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아마존(Amazon) 등 방위산업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업, 컨설팅 회사들이 개입해왔으며, 민간 행위자들은 효과적인 국경 관리와 국가안보 수호라는 명목 하에 신기술 도입에 대한 활발한 로비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미국의 국경산업복합체는 그 규모를 계속해서 키워나가고 있다.

유럽의 Frontex

미국과 더불어 유럽연합은 유럽으로 유입되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들은 EU 비회원국 입국자 모두를 대상으로 생체인식 정보를 수집하고 4년간 보관·이용하는 EES(Entry/Exit Scheme) 시스템을 도입해 국경에서의 입국 절차를 더욱 까다롭게 하는 것과 함께, 불법이주자가 선진국 영토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는 다양한 공간적 전략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 전략의 일환으로 2004년 유럽 연합 외부 경계를 통합적으로 책임질 기관인 Frontex를 설치했으며, 이후 유럽연합은 국경-안보 기술과 관련한 공공 지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2015년 난민 위기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데, 2019년 11월 유럽연합 이사회와 의회는 효과적인 국경 통제를 위해 2027년까지 Frontex에 1만 명 규모의 상설 경비대 설치를 골자로 한 이민, 국경 관리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이들은 Airbus, Thales, Leonardo와 같은 군수업체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항공우주 산업, Elbit Systems 등과 연계해 레이더 시스템, 비행기, 헬리콥터, 드론, 경비정, 무인항공시스템 등의 기술을 도입해 역외 국경 지역을 정찰하고 이주자들을 추적하고 있다.

장벽 비즈니스, 그리고 숨겨진 비용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보면 이제 오늘날 국경의 선별적 투과성을 담보하여 경계를 유지하고 통제하는 것은 수십억에서 수백억 달러가 투입되는 장벽의 비즈니스가 되었다. 여기에 첨단 감시·추적 기술을 보유한 다양한 민간 행위자(건설회사, 항공사, IT기업, 보안 기업, 컨설팅 기업 등)들이 개입하면서 국경을 관리하는 이해관계자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을 효과적으로 걸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론 거대한 장벽 비즈니스와 국경 통제 담론 이면에 숨겨진 비용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며칠 전인 2월 10일 미국 행정부에서 2021년 회계연도(2020년 10월~2021년 9월) 예산안을 발표했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부 지역의 장벽 건설에 20억 달러를 새로 편성하고 국방예산은 증액하였으며, 이를 위해 저소득층 의료보험(메디케어), 푸드스탬프 프로그램과 같은 사회안전망 프로그램 예산 중 2920억 달러를 삭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국경, 그리고 이주자의 이동성을 통제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하지만, 이렇게 투입되는 공적 자금의 대부분은 사회 구성원을 위한 사회복지비용을 삭감해 조달되는 것이라는 점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지리학자 가브리엘 포페스쿠(Gabriel Popescu)는 "안보 그리고 안보의 민영화에 쏟아붓는 막대한 투자가 사회복지 향상에 도움이 되는 공적 투자를 늘리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더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처럼 국경을 관리하는 과정 속에서 지나치게 장벽의 비즈니스와 다국적 기업의 로비 활동을 통해 도입되는 최첨단 생체계측기술과 감시 시스템에 매몰되어 그 뒤에 숨겨진 비용들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때다.

□ 필자 주석

(1) Miller, Todd. (2019). "More than a Wall: Corporate Profiteering and the Militarization of US Borders". Amsterdam: Transnational Institute.

□ 필자 소개


김수정 박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교육과 인문지리학 전공으로 '로스앤젤레스 의류 산업의 글로벌 사회-경제 네트워크와 민족관계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지리교육과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있다. 김수정 박사는 글로벌 이주와 한인 디아스포라, 산업의 글로벌화와 관련된 경제지리학과 문화지리학 분야를 아우르는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김수정 전남대 지리교육과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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