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던 日언론도 "이미 바이러스 퍼졌을 가능성"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입력 2020. 2. 15.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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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폐렴 확산]
감염 경로 몰라 더 큰 불안·동요, '최고 보건위생국' 자부심에 구멍
NYT "日대응은 해선 안될 사례".. 잇단 의료진 감염, 韓메르스 닮아

'세계 최고 보건위생국'이라고 자부하는 일본에 구멍이 크게 뚫렸다. 중국 외에는 이례적으로 감염 경로가 확인되지 않는 환자가 속출하면서 일본 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14일 '감염 경로 불명' 80대 여성이 사망하고, 와카야마현에서 70대 남성이 중태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 사회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날 기준으로 일본의 우한 폐렴 확진자 수는 크루즈선 승객 218명을 포함하면 총 255명이다.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이 때문에 주요 병원은 몸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고 보건소에는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석간)이 보도했다. 오키나와현 나하시 보건상담센터는 "상담 전화가 어제보다 몇 배 더 온다"고 했다.

현재까지 감염 경로가 확인되지 않은 환자가 발생한 지역은 수도권인 도쿄(1명), 가나가와현(1명·사망), 지바현(1명)과 와카야마현(2명)이다. 일본 사회는 특히 와카야마현의 소도시 유아사초(湯淺町)의 사이세이카이아리타(濟生會有田) 병원 의사와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일을 주목하고 있다. 오사카 남쪽의 비교적 한적한 곳에 있는 이 병원까지 우한 폐렴이 번지면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은 병원에서 만난 적이 없어 다른 사람이나 공기를 통해 감염됐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오시타니 히토시 도호쿠(東北)대 교수는 와카야마현에서 감염이 확인된 것과 관련, 요미우리신문에 "(이들이) 중국인과 접촉이 없었다면 이미 시중에서 감염이 확산돼 사태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일본 신문들이 우한 폐렴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14일 1면 톱으로 보도했다. /마이니치·아사히

불안감이 커지면서 아베 내각에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베 내각은 이번 문제가 7월 열리는 도쿄올림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사태를 축소하는 데 급급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은 안전 사회이니 바깥에서 들어오는 병균만 잘 막으면 된다는 생각도 깔려 있었다. 지난달 29일 우한에서 전세기를 타고 귀국한 이들에 대해서도 강제 격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아사히·니혼게이자이신문은 우한 폐렴이 전국에 번졌을 가능성을 거론하며 정책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일본 정부의 현 대응은 공중 보건 위기에서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교과서적 사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은 14일 기자회견에서 "우한 폐렴이 국내에서 유행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라는 종래 견해를 바꿀 증거는 없다"고 했다.

지역사회 감염이 잇따르고 의료진 감염이 일어나는 현재 일본 상황은 2015년 우리나라서 벌어진 메르스 사태 초기와 비슷하다. 도쿄 택시 운전사는 우한 폐렴으로 진단받기 전 의료 기관을 두 곳 방문했다. 한 병원에서는 폐렴 증세로 입원했고, 7일 만에 확진받았다. 이는 국내 메르스 초창기 때 메르스인 줄 모르고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 돌다가 같은 병실 환자와 의료진에게 메르스를 옮긴 사례와 비슷하다. 폐렴이 진행된 것으로 볼 때 바이러스 증식이 상당히 이뤄졌고, 그 상태에서 병원 의료진과 주변 환자에게 바이러스를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일본 병원 대부분은 발열 환자를 따로 보는 선별 진료소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병원 방문객과 의료진 체온 측정도 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다 보니 의사가 발열 증상이 있는데도 환자를 진료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내 메르스 때도 처음에는 선별 진료와 체온 측정을 하지 않았다. 한국 메르스의 93%는 병원 감염으로 퍼졌다.

일본에선 확진자 동선과 행적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표하지 않으면서, 밀접 접촉자 파악이 늦어지고 감염자 조기 격리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엄중식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본의 지금 상황이 한국 메르스 초창기 복사판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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