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기러기 아빠 고독까지 해결한다는 정부..1인가구 대책 필요하나

한재영 기자 입력 2020. 2. 15. 09:19 수정 2020. 2. 1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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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집 중 3집꼴 1인가구..19년새 비중 2배↑
정부, 범부처 1인가구 TF 구성..종합대책 추진
일각 "자발적 1인 가구도 정부 지원?" 의문
"1인 가구 지원은 저출산 대책에 역행" 지적도
'큰 정부' 지양..소외계층 중심 정책 세심해야
[서울경제]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조모(36) 씨는 두 달 전 회사 근처인 경기 분당 서현역 근처에 반전세 오피스텔을 얻어 독립 살림을 차렸습니다. 조 씨는 “나이도 들 만큼 들었는데 부모님과 한 집에 부대끼며 지내기가 언제부턴가 불편했다”고 했습니다.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는 그는 “나 혼자 월급 받아 여가 생활하고 먹고사는 데 전혀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다”며 만족해했습니다.

정부가 1인 가구 증가 트렌드에 대응한다며 지난달 범부처가 참여하는 ‘1인 가구 정책 태스크포스(TF)’를 꾸렸습니다. 국책 연구기관 3곳과 15개 정부부처가 달라붙어 5월까지 종합대책을 내놓겠다는 계획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인 가구 정책종합 패키지를 만들라”고 지시하자 부처가 허겁지겁 대책 마련에 뛰어든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내에서조차 ‘1인 가구 종합 대책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왜 그럴까요.

김용범(오른쪽) 기획재정부 1차관이 지난달 범정부 1인가구 정책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기재부
정부가 1인 가구 종합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급격한 가구 형태 변화 때문입니다. 지난 2000년 15%였던 1인 가구 비율은 지난해 29%로 껑충 뛰었습니다. 10집 중 3집꼴로 ‘나 혼자 산다’인 셈이죠. TF 팀장인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1인 가구에 정부 서비스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지 세심히 살피고, 필요하다면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TF 가동의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1인 가구를 청년·중장년·노인 등으로 대상을 세분화해 맞춤형 대책을 만들 계획입니다.

하지만 같은 연령대라 하더라도 1인 가구가 된 배경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1인 가구가 늘어난다’는 현상을 놓고 종합대책을 만들겠다고 나선 게 과연 옳으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소위 ‘자발적 1인 가구’에까지 정부가 개입해 ‘큰 정부’ 노릇을 하는 게 타당하냐는 문제 제기죠. 실제로 김 차관은 지난달 17일 1인 가구 TF 킥오프 회의에서 “이혼, 비혼, 기러기 아빠(가족을 해외 보내고 혼자 사는 남성) 등의 이유로 1인 가구가 된 중장년층에게 삶의 안정성을 높이고 고립감을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를 두고 “고소득 화이트칼라가 대부분인 기러기 아빠의 고립감까지 정부가 해결해 줘야 하냐”는 비아냥에 가까운 비판이 나오는 게 현실입니다.

강추위 속에서 폐지 줍는 노인/연합뉴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취업 때문이든, 이혼 때문이든 자발적으로 1인 가구가 된 것은 개인의 자유에 의한 선택이고 그 책임은 정부가 아닌 본인이 지는 것”이라면서 “1인 가구 증가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변화인데 정부가 이런 현상에까지 개입해 ‘다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고 꼬집었습니다. 더구나 청년층은 고령층과 달리 앞선 조 씨 사례처럼 자발적으로 1인 가구를 택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중해 대응하면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왜 1인 가구 증가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대책의 필요성은 차치하더라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과도 1인 가구 대책이 상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과거 한때 미혼 남·여에게 ‘싱글세(稅)’ 부과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진 정부이기에 심각한 정책 상충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겁니다. ‘싱글세’라는 세목은 우리나라 조세 체계 상 존재하지 않지만, 각종 인적공제와 자녀 공제를 통한 기혼 가정에 대한 세 감면이 사실상 미혼에 대한 싱글세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미혼인 30대 직장인 윤 모씨는 “정부가 1인 가구를 지원한다는 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는 의미냐”라고 되물었습니다.

실제로 정부 내에서도 청년 1인 가구 대책이 저출산 대책과 상충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 차관도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1인 가구를 지원해줄 경우 가족 해체가 심화되고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1인 가구를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며 외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독거 노인에 대한 정부의 세심한 정책 지원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역대 정부도 관심을 가지고 노인 복지 확대 차원으로 해왔던 정책이고요.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이들을 정책적 지원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특정 사회적 현상에 대해 ‘우리가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정부가 일일이 나서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현상의 원인을 파헤치고 그 원인에 대한 처방을 내리려 하기보다 현상 자체에 대한 처방만 내리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살이 곪으면 왜 곪는지를 진단하고 처방해야지, 그게 아니라 곪는 부위에 반창고만 덧대면 병이 낫지 않는 것처럼요.

정부가 1인 가구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섬세하게 원인을 분석해 맞춤형 대책을 내놓을지 눈여겨 지켜볼 일입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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