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계 '전가의 보도'로 등극한 라면

김태훈 기자 2020. 2. 1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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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라면이 순식간에 한류 선봉장의 자리에 올랐다. 여기엔 퓨전 음식인 짜파구리를 필두로 인터넷에서 다양한 퓨전 라면 조리법이 난무할 정도로 라면에 개성을 가미한 문화가 유행하는 흐름이 바탕이 됐다.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라면을 끓이고 있다. / MBC

영화 <기생충>이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하면서 영화에 나온 ‘짜파구리’ 역시 또 한 번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거 국책사업에 가깝게 ‘음식 한류’를 추진했으나 고전을 면치 못하던 흐름을 뒤엎고, 라면이 순식간에 한류 선봉장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여기엔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만든 퓨전 음식인 짜파구리를 필두로 인터넷에서 다양한 퓨전 라면 조리법이 난무할 정도로 라면에 개성을 가미한 문화가 유행하는 흐름이 바탕이 됐다. ‘한국인의 소울푸드’라 불리는 라면이 지상파 방송과 동영상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먹방’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한 모습도 이를 반영한다.

‘유산슬 라면’과 강호동의 ‘라끼남’ 인기

돼지고기를 채 썰고 해삼·죽순·표고버섯·알새우 등 중국요리에서 많이 쓰이는 재료를 끓는 물에 데친다. 간장과 요리술뿐 아니라 굴소스와 곰탕 수프처럼 맛을 더한 양념도 여럿 넣고 한데 볶는다. 전분까지 넣어 국물은 걸쭉해진다. 들어가는 면만 라면일 뿐 영락없는 중국요리 유산슬이다. ‘유산슬’을 자신의 트로트 가수 활동명으로 정해 활동했던 방송인 유재석이 트로트에 이어 라면 요리에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을 담은 MBC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이다. 전문 요리사의 지도를 받아 만든 유산슬 라면은 유재석 본인을 포함해 함께 나온 출연자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덩달아 시청자들의 입에선 군침이,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가 나온다.

거창해 보이는 라면 요리도 등장하지만 요리사로 변신해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유재석이 보여주는 조리 장면은 대부분 특별하지는 않다. 개성이 있는 라면을 추구하면서도 누구나 집에서 라면을 끓일 때 한두 가지 추가 재료를 넣어 먹어보는 것처럼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최근 라면을 전면에 내세운 ‘먹방’ 형식의 방송·영상에서 보이는 흐름도 비슷하다. 셰프라 불리는 전문 요리사가 보통 가정의 냉장고에선 찾기 힘든 귀한 재료를 아낌없이 쏟아넣은 고급스러운 요리를 선보이던 흐름은 지나가고 일상 속 흔한 음식에 더욱 초점을 맞춰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의 먹방 형식을 방송으로 끌어들인 tvN·Olive의 <라끼남- 라면 끼리는 남자>도 라면을 내세운 프로그램이다. 방송인 강호동이 라면 요리와 먹방, 관련 대화를 이끌어가고 내용은 6분 정도로 압축해 방송에 나간다. 유튜브에서는 보다 분량이 늘어난다. 15분 안팎의 영상에서 방송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유튜브 영상의 일반적인 경향처럼 모바일 환경에 맞춰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들을 집중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게다가 실제 라면을 요리하고 먹는 데 드는 시간과도 비슷하다. 지리산 대피소에서는 파와 삼겹살을, 동해안에서는 대게를 넣는 등 강호동의 말대로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재료와 장소를 동원한 덕에 유튜브 조회수는 100만 회를 기본으로 찍는다.

tvN·Olive의 <라끼남- 라면 끼리는 남자>의 한 장면/영상캡쳐

방송가에서는 이들 프로그램의 인기 요인으로 대중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라면이라는 소재를 지목한다. 또 하나, 형식과 소재의 변용이 쉬운 1인 중심의 형식도 시청자들의 반응을 재빠르게 반영하기 쉬운 요인이다. 한 지상파 방송의 예능PD는 “진행자 1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방송이면 촬영도 편집도 손이 적게 들고 그 대신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아서 여러 편을 찍을 수 있다. 유튜브나 OTT(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추가로 활용하기도 편하다”며 제작 과정에서도 선호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라면 특유의 ‘후루룩’ 소리도 매력

먹방으로 인기를 끄는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라면을 중심으로 한 영상은 언제든 환영받는 콘텐츠다. 그동안의 먹방의 ‘대세’가 보통사람들이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음식을 맛깔나게 계속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최근 들어 먹방 콘텐츠의 지향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듣기 편안한 소리에 집중하는 ASMR 영상을 찍을 때도 라면 특유의 ‘후루룩’ 소리는 인기가 높다. 무작정 많은 음식이나 비싼 음식을 먹는 대신 유튜버의 일상을 보여주는 ‘브이로그’ 영상이 더 유행하는 현상에도 라면은 쉽게 접목시킬 수 있는 소재다.

라면이 방송을 통해 식품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례인 KBS의 과거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도 라면 요리의 파급력은 입증된 바 있다. 당시 방송인 이경규가 라면 요리 경연에 나서 선보인 닭육수맛 기반의 ‘꼬꼬면’은 한동안 라면 업계에 하얀 국물 라면이 대세로 자리 잡게 할 정도였다. 그때 비하면 ‘짜파구리’는 고전 중의 고전일 정도로 일반인이 자기만의 퓨전·변형 라면 요리 조리법을 개발해 공개하는 지금은 라면 요리가 그 자체로 하나의 영역을 구축한 상황이다.

라면으로 대표되는 대중적인 음식 콘텐츠가 방송과 결합될 때 적어도 ‘평균은 하는’ 성공 공식은 전문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로도 어느 정도 뒷받침된다. 특히 간편한 식사로도 손꼽히는 라면을 먹는 장면이 특정 시간대에 맞춰 시청자들을 공략하는 데 성공하는 배경에 여러 사회적 요인까지 결합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영준 청주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시청자는 왜 TV 먹방 프로그램에 열광하는가’라는 논문에서 “연구결과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시청 동기가 모두 만족감과 지속적인 시청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시청행복감 측면에서 음식 프로그램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먹방을 보는 이유가 ‘실제로는 못 먹지만 내가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는 대리만족 경험은 직업상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중이 가장 컸으며 거주유형 중 원룸에 사는 사람의 시청 동기에서 비중이 컸다”고 분석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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