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김종덕의 북극비사]"일주일에 한명 이상 극단선택"..'북극 후예' 이누이트의 눈물

최준호 입력 2020.02.15. 12:00 수정 2020.02.1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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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섬 코르노크의 정상에는 이 땅에서 태어나 살다간 사람들의 무덤들이 있었다. 최준호 기자



⑫이누이트의 눈물

'쿵 쿵 쿵' 바다 위에 떠 있는 얼음들이 조그만 배의 선체와 무심히 부딪힌다. 커다란 얼음은 피하면서 구불구불 이어진 검푸른 피요르드를 따라 한 시간여 물살을 갈랐다. 갑자기 큰 호수로 들어선 듯 협만이 넓어졌다. 만년설을 덮어쓴 뾰족산과 그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지나니 한폭 그림같은 섬마을이 나타났다. 조그만 십자가를 올린 교회, 학교, 그린란드 특유의 빨강ㆍ노랑ㆍ파랑 색색깔을 한 주택들…. 일행을 데리고 온 배의 엔진이 꺼지고 나니 섬마을에 완벽한 정적이 흘렀다. 마을 회관에 걸려있는 깃발만이 미풍에 조금 흔들릴 뿐, 새조차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적막한 방음부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극지방이라 나무가 없는 때문일까. 공기는 청정 그 자체이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색무취. 해발 20m 남짓한 마을 정상에 올라서니 흰색 십자가 5개가 삐뚤빼뚤 외롭게 꽂혀있다. 이곳에 태어나 살다 간 이들의 마지막 흔적이다.

창문 너머로 이런 풍경이 펼쳐진 곳이 또 있을까. 창문 한가운데 붙은 파리 끈끈이가 상상속 그림이 아니라 현실의 공간임을 증명해준다. 그린란드의 버려진 원주민 섬마을 코르노크. 최준호 기자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며

그린란드 수도 누크 인근의 외딴 섬마을 코르노크 모습이다. 수년전 5월, 필자 일행이 코르노크를 찾았을 때 그 마을에서 단 한 사람의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순 남짓 돼보이는 그녀는 이곳이 태어난 고향이지만, 사는 곳은 아니라고 했다. 얼음이 녹아 배를 탈 수 있는 여름이 오면 휴양차 한두달 코르노크에 돌아와 머무르다 돌아간다고 했다. 그녀의 오두막엔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어, 전기가 들어오고 온기가 돌았다. 주방 창 너머로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눈덮힌 봉우리 셋, 계곡과 폭포ㆍ전나무숲으로 꾸며진 전형적인 ‘이발소 그림’이 이런 지구촌 숨은 절경을 모델로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처럼 마을사람들은 섬을 뒤로 한채 모두 도시로 떠났다. 그린란드 기록에 따르면, 코르노크에 사람이 산 것은 무려 기원전 22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 원주민 이누이트들이 사용했던 도구와 주거지 등 고고학적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들은 개썰매를 타고 북극곰을 사냥하고, 해빙(海氷)이 녹는 여름철엔 카약을 타고 물고기와 물개ㆍ바다표범ㆍ일각고래를 사냥해 살았다. 코르노크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마을을 떠난 건 1972년. 이제는 그 시절 마을 소년ㆍ소녀들이 반백의 머리를 하고 여름철 휴양지 삼아 이곳을 찾을 뿐이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의 도심 한가운데 주거용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외벽에는 그린란드 원주민 이누이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최정동 기자



원주민의 이촌향도, 변화하는 삶과 강요되는 적응

이누이트들은 왜 이런 그림같은 마을과 삶을 버리고 도시로 갔을까. 그들은 가족 단위로 수렵생활을 하면서 수천년을 살아왔다. 때문에 그들을 통치할 국가나 기구가 존재할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중심 도시 같은 집단 거주지도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서구문명의 본격적인 침범과 함께 전통적 삶을 포기하는 이누이트가 생겼다. 시장경제와 임금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가 생겼고, 현대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었다. 국가와 정부라는 지배체제가 생기고, 이런 국가조직이 국민을 대상으로 세금을 걷고, 미성년을 교육하고, 지원했다.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가족이나 부족 단위의 거주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 형태의 삶이 유리했던 측면도 있다. 그린란드를 관할하는 덴마크 정부가 외딴 곳에 점점이 흩어져 살아오던 원주민들을 도시로 불러모았다는 말도 들었다. 실제로 누크 다운타운 한가운데엔 1950~60년대 건설된 복도식 아파트가 길게 늘어서 있다. 당시 덴마크 정부가 펼쳤던 도시화ㆍ현대화 정책의 산물이다. 지금은 사라져 공터로 변했지만, ‘블록 P’라는 이름의 가로 길이가 200m에 이르는 거대한 아파트도 있었다고 한다. 그 아파트엔 그린란드 인구의 1%가 살았단다. 그렇게 한반도의 10배가 넘는 광활한 땅에 살아오던 5만~6만명의 이누이트들은 누크와 일루리삿ㆍ까코톡 등 몇몇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코르노크와 같이 소멸된 마을들이 생겨났다. 그린란드판 이촌향도(離村向都)가 일어난 것이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의 전통박물관. 이땅에 5000여년 살아온 원주민 이누이트의 삶이 묘사돼 있다. 최정동 기자

하지만 전통적 삶을 누리던 고향 마을을 떠난 이누이트들이 도시에 모여살 때는 부작용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수렵을 생계 삼던 이누이트들이 갑자기 도시로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결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그린란드는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이 82.8명으로 세계 첫번째 위에 있다. 취재 중 만난 누크 시장 아시나루프는 “그린란드 전체 인구 5만6000명 중 일주일에 한 명이상 자살자가 나온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개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우리나라(2018년 기준 26.6명)가 비교가 안될 정도다. 주 원인은 바로 갑작스런 삶의 변화일 것이다. 전통사회 붕괴에 따른 두려움과 우울증, 상태적 박탈감, 알코올 의존증, 백야로 인한 불면증 등이 자살 원인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린란드 정부는 주민들의 과도한 주류구입을 막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술을 살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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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그리움과 눈물

2010년 개봉한 ‘북극의 후예 이누크’는 이런 그린란드 원주민들의 고뇌를 담은 영화다. 정통 이누이트의 후예인 16살 이누크는 어린 시절 사고로 북극곰 사냥꾼인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함께 도시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엄마는 알코올 중독자. 늘 술에 취해있는 엄마의 모습을 견딜 수 없었던 사춘기 소년 이누크는 결국 집을 나온다. 사회복지시설에 정착한 소년은 그곳 또래 아이들과 전통 이누이트 사냥꾼의 원정에 참여하게 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이누크는 이 사냥여행을 통해 자신의 몸 속에 사냥꾼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린란드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자연유산 ‘일루리삿 빙하’와 그림보다 더 그림같은 옛 원주민의 마을 코르노크는 누구든 인생 ‘버킷 리스트’에 올려놓고 싶을 정도로 뛰어나다. 또 비록 얼음에 묻혀있지만 어마어마한 자원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움과 잠재력의 뒷면에는 수천년 이어온 전통의 삶을 갑자기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누이트의 눈물’도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이해해야만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될 터이다. 그린란드를 떠나던 날, 활기찬 누크와 아름다운 일루리삿, 그리고 사라진 옛마을 코로노크에서 그들의 험란했던 현대사의 기억을 엿본다.

⑬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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