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야단법석] 사법농단 3연타석 '무죄'와 '제 식구 감싸기' 논란

윤경환 기자 입력 2020. 2. 15. 12:01 수정 2020. 2. 1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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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1심, '재판개입' 사실과 위헌성 인정하면서
"직권남용죄로 형사처벌할 수는 없어" 반전 판결
유해용·신광렬·조의연·성창호 잇딴 무죄 결정에
곳곳서 "셀프 면죄부 누가 신뢰하냐" 비판 제기
개인비리 아닌 조직문제에 '적폐·농단' 딱지 붙여
"대통령 한마디에 역대 최대급 하명수사" 반론도
이탄희 등 영입한 민주당, 수사협조한 김명수 타격
2018년 9월1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김명수 대법원장이 따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경고했고 김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화답했다. /사진제공=대법원
[서울경제] “임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재판관여 행위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없다. 오히려 임 부장판사의 재판관여 행위는 그의 지위나 개인적 친분 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위헌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1심 선고공판을 진행하면서 그의 혐의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임 부장판사가 양승태 사법부 시절 각종 재판에 개입한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나아가 그 행위가 헌법을 위반했다고도 판단했다.

하지만 반전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임 부장판사가 최종적으로 무죄를 받아낸 것이다. 재판장인 송인권 부장판사는 “다만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직권남용죄의 형사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임 부장판사에게 불리하게 범죄구성 요건을 확장 해석하는 것”이라며 “재판관여 행위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에 해당해 징계사유 등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증거도 없다”고 판시했다. 임 부장판사가 재판에 개입하려 한 것도 맞고 이것이 위헌·불법적인 것도 맞지만 징계사유는 될지언정 형사처벌 감은 아니라는 판결이었다. 직권의 범위를 검찰보다 훨씬 좁게 해석한 결과였다.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 /연합뉴스
◇3연속 무죄에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임 부장판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논리는 또 있었다. 일선 판사들은 독립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아무리 법원행정처나 서울중앙지법 윗선의 요청과 지시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것이 재판 결과로 이어지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또 직권을 남용했다고 하기엔 재판개입의 결과라는 것이 전혀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송 부장판사는 “합의부 재판은 재판장도 혼자서 결정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 부장판사의 요청을 받은 재판부들은 이를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법적 판단 등을 거쳐 독립적으로 결정했다”며 “약식사건 후속 절차를 보류하고 공판 절차 회부 통지서를 삭제한 행위도 담당 판사의 약식명령 발령에 따라 실무관이 후속 절차를 진행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선 곧바로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일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연루자들에 대한 법원의 완전 무죄 판단이 이미 잇따른 와중에 “재판개입은 있었지만 죄는 아니다”라는, 보통 사람들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논리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형사수석부장이 소속 법관의 재판에 개입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재판부가 직권남용죄의 법리를 근본적으로 오해했다”며 즉각 불복의 뜻을 밝혔다. 검찰은 “이번 판결의 논리에 따를 경우 법원행정처, 법원장, 형사수석부장이 정치적 고려나 청탁에 따라 법관에게 재판 결론, 판결 이유 등을 변경하도록 하더라도 전혀 처벌할 수 없는 기이하고 위험한 결론에 이른다”며 “헌법상 재판 독립 원칙을 지켜가면서 묵묵히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대부분의 법관들도 이와 같은 결론을 전혀 수긍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연합뉴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역시 지난달 13일과 이달 13일 각각 다른 재판부에서 완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유 전 수석 재판부는 “유 전 수석이 검토보고서를 유출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유 변호사가 일부 파일을 변호사 사무실에 보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혐의가 성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재판부는 “법원행정처 내부에서 수사 확대를 저지할 목적으로 검찰 압박 방안을 마련해 실행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신광렬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서 사법행정 차원에서 법관 비위 관련 내용을 행정처에 보고했을 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고 부당한 조직 보호에 나선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도 신 부장판사의 보고 요청에 응한 것이지 영장재판을 통해 취득한 정보를 누설하기로 공모한 정황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에 더해 지난 14일 임 부장판사까지 형사 처벌을 피하면서 양승태 사법부 사건을 대하는 법원의 태도를 의심하는 눈초리는 급격히 늘었다. 더욱이 이들의 혐의는 상당수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직들의 혐의와도 직결된 것이었다.

판사들이 같은 판사들의 비위에 면죄부를 줄 것이라는 우려는 사실 지난 2018년 검찰 수사 진행 단계 때부터 나왔었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특별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으나 해당 논의는 위헌 소지의 문제 등 때문에 곧 흐지부지됐다.

강민진 정의당 대변인은 14일 브리핑을 통해 “사법 농단 범죄자들에게 무죄가 선고된 이상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서도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주장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원의 문제에 대해 법원이 스스로 면죄부를 주면 도대체 누가 사법부를 신뢰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신광렬(왼쪽부터)·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연합뉴스
◇“신기루를 좇듯 무리한 하명수사” 반론도=물론 법원 판단에 비판의 목소리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재판부 판단을 그래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법조계 곳곳에서 만만찮게 제기됐다. 특히 법원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법관이나 법관 출신 변호사들일수록 “애초부터 형사처벌할 수 있는 혐의들이 아니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개인의 권력형 비리가 없는 전형적인 조직적 범죄 혐의로 구성됐다. 애초부터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등 다른 적폐 사건과는 그 형태와 출발이 전혀 달랐다. 특정 회사의 돈을 횡령했거나 뇌물을 받아 사익을 챙긴 혐의가 아니라 ‘상고법원 도입’이라는 사법부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행정처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엘리트 판사들을 청와대·국회 로비 작업에 동원하고 일선 재판부와도 교감을 나눴다는 게 사건의 핵심이다. 실제로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 47개 혐의 중 직권남용 혐의만 무려 41개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법원 안팎에서는 “이 사건을 국정농단에 빗대 ‘농단’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의혹 제기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있었다. 사법부 우두머리들이 사익을 추구하려다 벌어진 일이 전혀 아니란 점에서다.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연합뉴스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마치 릴레이 경주에서 바통을 이어받듯 국정농단 사건과 이 전 대통령 사건 수사 마무리와 함께 개시됐다. 초기에는 법원의 비협조와 검찰의 사법부 눈치보기로 수사가 지지부진했으나 지난 2018년 9월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을 기점으로 수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며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법농단’ ‘재판거래’라는 용어를 드러내놓고 사용하며 박근혜 정부 시절 사법부를 ‘적폐’로 기정사실화하고 법원에 수사 협조를 촉구한 내용이었다. 이에 김 대법원장은 같은 자리에서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화답했다.

이후 검찰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과 이성윤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의 지휘 아래 주요 민생 수사까지 모두 제쳐 둔 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보다 더 많은 ‘사상 최대’ 인력을 이 사건에만 7개월 이상 투입했다. 뇌물·횡령 등 금품 혐의가 없는 사건으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법원에서는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재직 1년도 안돼 돌연 사임한 것을 비롯해 엘리트 판사들이 잇따라 법복을 벗는 등 내홍이 극심해졌다.

관련 재판들과 무관한 업무를 맡은 재경지법의 한 고위 판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실체가 있기는 했던 의혹이었는지 의문이 든다”며 “당시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무리수를 뒀다 해도 그 행위들이 형사처벌 대상인지는 또 별개”라고 설명했다.

이탄희 전 판사. /연합뉴스
◇민주당·김명수·검찰 모두 비상=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해 1심에서 무더기 무죄가 쏟아지면서 수사를 이끈 정치권과 검찰, 김 대법원장 모두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전면에 나서 검찰 수사 협조를 촉구한 문 대통령은 물론 이탄희·이수진·최기상 전 판사들을 ‘사법농단 의인’으로 포장해 당장 총선에 내보내야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스텝도 꼬이게 됐다. 검찰은 2심부터 법원 판단을 뒤집을 증거와 논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사법행정 경험이 풍부한 서울고등법원 판사들의 문턱을 넘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2018년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피의자·참고인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권력형 비리 사건을 다루는 검찰의 표적·기획수사 수법이 법원에 널리 소문났다”며 “정치 성향을 떠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등 모든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 검찰이 받은 진술조서나 다른 증거들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는 판사들이 급증했고 그 여파가 최근 재판 결과로도 드러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1월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자 그가 재판에 넘겨지기 전인데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국민들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대법원장은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을 위기에 빠진 것으로 진단됐다. 그는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던 지난해 1월24일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전에 취재진들 앞에서 허리를 숙여 사과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당시 법관 상당수는 “재판을 하는 판사가 기소도 전에 검찰 수사 단계에서 어떻게 대국민 사과를 할 수가 있느냐”며 김 대법원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구속 상태인 임 전 차장의 재판부 기피 신청을 7개월 넘게 무시하다가 법원 인사 직전 갑자기 기각하기도 했다. 이후 이달 6일엔 재판장인 윤종섭 부장판사를 전례 없이 서울중앙지법에 5년째 잔류시켜 “대법원이 하급심에 유죄 심증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그의 자체 사법개혁안은 지금도 국회의 외면을 받고 있지만 무죄 판결이 더 이어질 경우 개혁 동력 자체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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