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훈련기는 왜 바다를 건너지 못할까 [박수찬의 軍]

박수찬 입력 2020. 2. 15. 12:03 수정 2020. 2. 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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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KT-1 기본훈련기 편대가 활주로에서 이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산 군용기 수출에 ‘빨간불’이 켜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8년 9월 미 공군 고등훈련기(APT) 사업에서 보잉에 패한 이후 T-50 고등훈련기와 KT-1 기본훈련기를 비롯한 군용기 해외수출이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방위산업계의 우려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스페인 공군 A400M 수송기와 국산 훈련기 스왑딜(맞교환 거래)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말레이시아 경전투기 사업과 인도네시아 T-50 추가 수출 등도 정체 기미다. 방산수출은 성사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라는 점을 감안해도, K-9 자주포 등 지상장비 분야에 비해 항공장비 수출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일각에서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수출 촉진을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1조원 스왑딜’ 무산 우려 커져

현재 추진되고 있는 항공분야 방산수출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스페인과의 스왑딜이다. 

2018년 7월 스페인 정부는 자국 공군이 도입하기로 한 A400M 수송기 27대 중 일부 물량과 국산 훈련기를 맞교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초기에는 A400M 3대와 T-50 19대+a를 교환하는 방식이 추진됐다. KT-1을 포함해 거래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됐으나 스페인측이 “요구성능(ROC)에 미달한다”는 입장을 밝혀 제외했다. 이후 양국 정부 공식 채널을 통해 관련 협상이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올해 안에 계약을 확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많다.

유럽 에어버스가 제작한 A400M 수송기가 시범비행을 하고 있다. 에어버스 제공
현재 A400M 4대와 T-50 20~30대를 맞교환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송기 전력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서는 4대 도입이 적절하다는 의견과 T-50 수출 물량을 최대한 늘리려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실현되면 거래 규모는 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은 A400M 4대를 우선 도입한 뒤 2대를 추가 구매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스페인측이 인수할 수 있는 T-50 수량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약 2만명 규모인 스페인 공군은 전투기 150대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 공군보다 규모가 작고 비행시간도 적어 조종사 소요가 크지 않다. 훈련기 수요도 적다. 20∼30대의 T-50을 도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다.

방산업계 소식통은 “스페인측이 소화할 수 있는 T-50 물량은 최대 16대 안팎으로 안다”며 “T-50 외에 A400M 4대에 상응하는 수준의 국산 장비를 스왑딜에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스페인측이 한국에서 구매할 무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스페인측은 최근 스위스 필라투스 PC-21 기본훈련기 24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필라투스는 ‘최고의 가성비’를 앞세워 미국 T-6A, 브라질 슈퍼 투카노를 제치고 계약을 수주했다. 

다른 분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스페인은 독자적으로 군함과 방공시스템 등을 생산하지만 무기 수요 감소로 방위산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프랑스가 추진중인 미래 전투 항공시스템(FCAS) 개발에 참여하고 있지만, 하청업체간 경쟁으로 업무 분담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 스페인측이 PC-21 도입을 결정한 것도 자국 방산업체가 생산과정에서 일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산 무기 도입 규모를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내에서는 정책 컨트롤타워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항공기만 맞교환하는 방식 대신 다른 장비를 거래에 추가하거나, 기존 방식을 유지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려면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책 컨트롤타워가 뚜렷하지 않아 사업추진이 쉽지 않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FA-50이 조립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동남아마저 ‘삐걱’…경쟁자 출현

국산 군용기의 텃밭인 동남아시아 지역도 ‘수성’이 쉽지 않다. 동남아는 T-50/FA-50과 KT-1을 가장 많이 도입한 지역이지만 최근 각국 내부사정에 복잡해지고 있고, 경쟁업체들의 공세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말레이시아는 고등훈련기 및 경전투기(LCA) 사업을 추진중이다. KAI은 지난해 초 FA-50 제안서를 제출, 파키스탄과 중국 합작 JF-17, 인도 테자스, 러시아 Yak-130 등과 경쟁 중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10여년 전부터 추진했던 다목적 전투기(MRCA) 사업이 예산문제로 계속 지연되면서 LCA 사업이 부상했으나, 이마저도 진척이 더디다는 평가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든 수리온 헬기 수출형 시제기가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KAI 제공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 분담금을 미납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KAI는 인도네시아에 FA-50 추가 판매를 희망하고 있으나 인도네시아는 프랑스 라팔, 러시아 Su-35, 미국 F-16 등 다목적 전투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KA는 수리온 헬기를 앞세워 3000억원 규모의 귀빈 수송용 헬기 10여대 도입 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서방 헬기업체와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FA-50 12대를 운용중인 필리핀 공군은 장기적으로 12대 추가 소요를 확정했으나 다목적 전투기 도입에 밀리는 모양새다. 2005년 10월 F-5A 전투기 퇴역 이후 대체 전력을 확보하지 못한 필리핀은 스웨덴 그리펜 또는 미국 F-16 중고 전투기 구매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보잉과 스웨덴 사브가 공동개발한 T-7A 훈련기가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보잉 제공
경쟁업체들의 공세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미국 보잉은 지난 12일 싱가포르 에어쇼에서 미 공군용 T-7A 고등훈련기에 경공격 기능을 추가한 기종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미 공군이 351대를 도입할 T-7A는 최신 기술을 적용, F-35를 비롯한 첨단 기종을 다룰 조종사 양성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생산물량을 충분히 확보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 상태에서 공격 능력까지 검증되면 FA-50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기술적, 정무적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훈련기 시장에서는 KT-1처럼 1000마력급 훈련기 대신 PC-21처럼 출력이 향상된 1500마력급 훈련기가 주목받고 있다. KT-1은 1991년 초도비행 당시에는 우수한 기종이었으나 현재는 경쟁 기종에 밀리는 상황이다. 엔진 출력 확대 등을 포함한 신(新)기종 개발에 가까운 성능개량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한국 공군 FA-50 편대가 한반도 남부 상공을 초계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FA-50도 무장 추가 장착을 통한 타격력 강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수직꼬리날개가 두 개인 T-7A는 F-35 조종사 양성에는 적합하지만 수직꼬리날개가 하나뿐인 F-16 조종사 양성에는 T-50 계열이 더 적절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공격능력이 강화되면 세계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무적 차원에서는 지난달 신설된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 산하 방위산업담당관의 역할이 주목된다. 방위산업담당관 신설 당시 청와대는 “방위산업을 수출형 산업으로 도약시키고 경제 산업적 측면에서 범국가적인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등훈련기 한 대를 수출하면 중형자동차 1150대 수출과 비슷한 효과를 거둘 정도로 항공분야 방산수출은 파급력이 크다. 하지만 정부가 명확한 전략을 갖춰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효과는 반감된다. 방위산업담당관 신설을 계기로 스페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대한 정부의 수출 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정부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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