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윤석열 "수사·기소 분리될 수 없다" 추미애에 정면반박

박태인 입력 2020. 2. 16. 06:01 수정 2020. 2. 1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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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부산지검 강연서 "수사는 기소에 복무하는 개념"
윤석열 검찰총장이 13일 오후 부산고등·지방 검찰을 찾아 검사장급 간부들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윤 총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 [연합뉴스]

"법원은 심리한 판사가 판결을 선고한다. 검찰도 수사한 검사가 기소하는 것이 맞다"


추미애 반박한 윤석열
윤석열(60) 검찰총장이 13일 부산지검을 찾아 검사들에게 한 말이다. 윤 총장은 이날 1시간가량 이어진 비공개 직원간담회에서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추미애(62) 법무부 장관의 제안을 작심한듯 조목조목 반박했다. 윤 총장은 "수사는 소추(기소)에 복무하는 개념이고 소추와 재판을 준비하는게 검사의 일"이라며 "수사와 기소는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윤 총장의 강연 발언을 입수했다. 추 장관의 '수사·기소 분리' 제안에 대한 윤 총장의 실제 발언이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현직 검사는 "윤 총장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추 장관의 발상 자체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 장관은 21일 전국 검사장 회의를 개최하고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11일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청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현안 관련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수사는 소추에 복무한다"
윤 총장은 13일 간담회 대부분을 검사의 수사와 기소의 연속성을 강조하는데 집중했다. 직접심리주의, 공판중심주의, 구두변론주의와 같은 형사소송법 용어도 수차례 언급했다.

윤 총장은 검사와 수사관들에게 "컴퓨터 앞에서 조서를 치는게 수사가 아니다. 소추와 재판을 준비하는게 수사고 검사와 검찰수사관의 일"이라며 "수사는 소추에 복무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은 이어 "판사가 심리했으면 그 사람이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 검찰도 수사를 했으면 그 사람이 주문을 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재판을 행하는 법관이 직접 당사자의 주장을 듣고 증거를 조사해 형을 선고하는 것을 '직접심리주의'라 말한다. 이 직접심리주의가 검찰에게도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윤 총장의 주장이다. 직접 조사를 하고 두 눈으로 증거를 본 검사가 기소와 공판까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제21대 총선 대비 전국 18개청 지검장 및 59개청 공공수사 담당 부장검사 회의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검찰의 내부 견제시스템
윤 총장은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검찰의 오류에 대해선 "검찰은 법원처럼 심급에 따라 교정을 할 수 없어 결재와 지휘감독 시스템을 통해 과오를 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이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의 내부적 객관성을 담보할 통제장치가 필요하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주장한 것과 달리 검찰은 이미 그 통제장치를 갖고 있다는 반박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수사 검사→부장검사→차장검사→검사장→검찰총장’의 결재라인과 대검의 각 수사 분야별 부장(검사장급) 및 다수의 대검 연구관이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검찰 관계자는 "검찰 내부의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하는 인권수사자문관 제도도 2년 전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도입해 실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성윤의 '레드팀' 역할
지난해 환경부 블랙리스트와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 수사를 담당했던 복수의 수사팀 관계자도 "당시 대검 반부패부장이었던 이성윤 현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차례 법리검토를 지시하며 수사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 바로 그 사례"라고 말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왼쪽)이 10일 열린 전국 검사장 회의에 참석하려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오종택 기자

당시 대검에선 송 전 비서관의 정치자금법 위반 무죄 가능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송 전 비서관은 지난해 1·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억 6000여만원을 선고받았다. 한 현직 검사장은 "지금 추 장관의 말대로라면 심리만 담당하는 판사와, 판결만 선고하는 판사를 따로 두어야 객관적인 판결이 나온다는 뜻"이라 말했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때부터 조서를 줄이고, 주요 수사를 맡았던 검사들을 공판팀에 투입하는 공판 강화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 윤 총장이 관여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재판의 경우 모두 수사팀 검사들이 공판에 투입됐다.


"공판중심주의 따라가야"
윤 총장은 13일 간담회에서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없앤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언급하며 "검찰이 과거 조서재판을 벗어나지 못해 공판중심주의의 재판을 따라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 형사법 개정에 맞춰 수사 과정의 변화 방향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추 장관의 '수사·기소' 분리 발언 뒤 후폭풍이 거세자 "검찰 자체적인 통제와 견제를 강화하자는 차원에서 새로운 제도를 논의해가자는 것"이라며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하지만 수사와 기소 주체의 분리에 대한 추 장관의 입장은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의 권력기관 개혁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현 정부의 모순
'검사의 지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완규 변호사(59·법무법인 동인)는 "수사와 기소 검사의 완전 분리는 검사를 사법경찰관으로 만드는 위법 행위"라 말했다. 이 변호사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검찰이 경찰의 수사를 통제할 때 적용되는 개념"이라며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한 문재인 정부가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자는 주장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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