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2020. 2. 1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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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트럼프 탄핵 무산 이후, 안갯속 미 대선 구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11일(현지시각) 백악관 행사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역사상 네번째로 시도된 대통령 탄핵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바꾸지도 못했다. 탄핵은 가결되지 않았고, 탄핵을 촉발한 워싱턴의 당파적 정치는 그대로 작동됐다. 하지만 탄핵이 아무런 영향을 못 미친 것은 아니다. 그 낙진은 미국의 당파적 분열을 더욱 심화하며, 2020년 대통령 선거 가도를 집중적으로 덮고 있다.

지난해 8월28일 <폴리티코>가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연기했다고 보도하면서 트럼프 탄핵의 문은 열리기 시작했다. 연이어 마이클 앳킨슨 미 정보 당국 감사관이 하원에서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원조 연기에 관한 내부고발자가 있다는 증언을 하면서 트럼프가 외교안보 사안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사용했다는 의심이 커졌다.

<워싱턴포스트>가 그해 9월19일 트럼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며 군사원조를 연계했다는 것이 내부고발자의 고발 내용이라고 보도해, 탄핵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9월24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가 젤렌스키와 한 통화는 “헌법적 책무에 대한 침해”라며 트럼프에 대한 공식적인 탄핵 조사를 발표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사태가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급속하게 진행됐다. 이는 탄핵으로 가는 에너지와 정치적 구도가 워싱턴에 이미 차곡차곡 쌓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트럼프 취임 이후부터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 스캔들 등으로 민주당 등 반트럼프 진영에서는 탄핵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잦았다.

기승전 ‘지지층 결집’

트럼프 탄핵을 막아온 쪽은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였다. 탄핵이 가결되려면 상·하원 모두에서 찬성해야 하는데,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인 상황에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능하지 않은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트럼프 지지층을 더 결집하는 등 정치적 역효과만 부를 것으로 봤다.

탄핵을 막아온 펠로시가 180도 입장을 바꾸어 선제적으로 탄핵의 문을 연 것은 탄핵으로 외화되는 반트럼프 민주당 지지층의 에너지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가결될 가능성이 없는 탄핵 시도이지만, 그 과정에서 반트럼프 민주당 지지층을 결속시켜야 한다는 정치적 계산을 한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탄핵은 그 성사 여부보다는 친트럼프 공화당 지지층과 반트럼프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과 확대를 다투는 싸움이었다.

탄핵 과정은 예상 그대로였다. 의회의 탄핵 조사 과정에서 어떤 증인을 소환할 것인지, 그리고 소환된 증인들의 증언 내용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격렬한 다툼이 벌어졌다. 그 파장은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하지만 그 싸움들은 상·하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석대로 결정됐을 뿐이다.

증인 소환 문제도 그랬고, 탄핵 투표 결과도 그랬다.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에서는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증인을 소환해 탄핵을 찬성하는 결과를 내놓았고,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는 사실상 증인을 소환하지도 않은 채 일사천리로 탄핵을 반대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민주당으로 튄 불똥

1월15일 하원에서는 트럼프의 권력남용과 의회방해 혐의로 228 대 193으로 탄핵소추를 가결해, 상원으로 넘겼다. 민주당에서는 콜린 피터슨 의원만 반대하고 전원이 찬성하고, 공화당은 의원 전원이 반대했다. 상원에서는 2월6일 트럼프의 권력 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52 대 48, 의회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53 대 47로 부결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전원이 찬성했고, 공화당에서는 밋 롬니 의원만 의회방해 혐의에 찬성했다.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하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펠로시가 탄핵 절차를 선포한 다음날인 9월25일 트럼프 지지율은 45.3%, 반대는 52.0%였다. 이 지지율은 9월 초보다 4%포인트가량 높아진 것이다. 탄핵이 종료된 2월12일 현재 트럼프 지지율은 45.3%, 반대는 52.0%다. 탄핵 시작과 종료 뒤 트럼프의 지지와 반대는 변함없다. 지지율로만 보면, 반트럼프 민주당 지지층이나 친트럼프 공화당 지지층이나 결집과 확대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트럼프 진영은 아연 활기를 보인다. 트럼프 지지는 탄핵 공방이 절정에 이르던 10월25일 41.8%로 최저를 기록한 뒤 반등해, 현재 45%를 넘었다. 탄핵 종결과 함께 시작된 양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는 독주하고 있다. 형식적인 경쟁 후보조차 없는 상태에서 혼자 레이스를 펼치는 형국이다. 트럼프의 독주는 민주당이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에서 개표 혼란으로 타격을 입은 것과 대비된다.

탄핵은 민주당 경선 구도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탄핵을 거치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선두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가장 큰 내상을 입은 것으로 드러난다. 트럼프가 바이든을 겨냥한 수사를 우크라이나에 촉구한 데서 탄핵이 시작되면서, 트럼프가 주장하는 바이든 부자의 혐의 사실 여부를 떠나 바이든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여론조사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층 40%는 바이든의 아들 헌터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유효한 선거 이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트럼프↑바이든↓샌더스↑

바이든은 이 스캔들로 워싱턴 기득권층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고, 그 결과는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4~5위에 머무는 충격으로 나타났다. 전국 지지율에서도 버니 샌더스에게 밀리는 첫 여론조사도 나왔다. 탄핵은 트럼프를 대상으로 시작됐으나, 그 유탄을 바이든이 맞은 꼴이다.

트럼프의 독주와 바이든의 위기는 탄핵이 가져다준 결과라 할 수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층에서 트럼프를 두고 강경한 찬반 세력이 더 결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 진보층은 진보 진영의 선두 주자인 샌더스로 결집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탄핵 과정의 최대 수혜자는 샌더스라 할 수 있다.

트럼프와 가장 선명하게 각을 세우는 샌더스는 진보층뿐만 아니라 워싱턴 기득권층에 실망한 중하류층을 결집시킬 잠재력을 더 극대화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적지 않은 유권자가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됐으면 지지했을 것이라는 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탄핵은 공식 종결됐으나, 내용적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민주당 쪽은 탄핵 성사를 바란 것이 아니라 그 파장을 정치적으로 최대한 이용하려 했다. 이 때문에 탄핵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뇌관을 다시 만지작거리며, 언제라도 대선 과정에서 터뜨리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뇌관이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탄핵 과정에서 그의 증언은 논란이었다. 볼턴은 탄핵 과정에서 펴낸 자서전에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원조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했다고 시사했다. 그리고 그는 의회가 부르면 증언에 나서겠다고도 밝혔다. 그의 증언은 상원에서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에서 볼턴을 청문회에 불러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도 또 다른 뇌관이다. 켈리는 최근 볼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발언을 했다.

두 사람의 증언은 탄핵이 끝났기 때문에 오히려 트럼프에게 정치적 상처를 더 줄 수 있다. 또 이들의 증언은 가능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최대로 밀어붙이는 현안으로 실현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의 스캔들이 지속되면, 지지층은 결속하겠으나 외연 확장은 안 된다.

대선을 흔드는 탄핵 낙진

그럴 경우, 탄핵이 남기는 낙진은 대선 가도를 더욱 복잡하게 할 것이다. 민주당 외연이 확장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진단이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진보층 결속이 계속되겠지만, 중도층은 더욱 두터워져서 민주당 경선을 복잡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트럼프와 공화당에는 탄핵 과정보다도 더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결과가 반드시 민주당에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볼 수만도 없다. 어쩌면 트럼프 탄핵은 올해 11월 대선이 끝나야만 그 실질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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