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친문의 신상털기' 반찬가게, 물어물어 오는 손님들

김석모 사회부 기자 2020. 2. 1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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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모 사회부 기자

18일 오전 찾아간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전통시장의 한 반찬 가게는 주인 없이 직원 두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인 A씨는 출근하지 못했다.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의 시장 방문 때 "(경기가) 거지 같아요"라고 했다가 '문빠'로 불리는 친문 지지 세력들이 "불경하다"며 공격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생업이 어렵다'는 뜻을 진솔하게 표현했던 A씨는 인터넷에서 가게명과 집 주소, 휴대폰 번호가 노출되는 신상털이를 당했다. 그와 대통령의 대화가 링크된 소셜미디어에는 인신공격성 욕설이 댓글로 달렸다.

가게에 나오지 못한 A씨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악플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사람을 만나기가 무섭다"고 했다. 이날 아침 본지 기사가 나간 후 무차별적 인신공격성 댓글이 달리던 트위터의 한 계정은 비공개로 전환됐다. 이미 A씨에게 지우기 어려운 상처가 남겨진 후였다.

A씨에 대한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전 주인 없는 A씨의 반찬 가게에는 멀리서 찾아온 손님의 발길이 이어졌다. 아산과 인접한 천안에서 왔다는 60대 부부는 "이 가게가 그 가게냐"고 묻고는 잡채와 장아찌 등 반찬 4개를 샀다. 이모(61)씨는 "주인이 힘들다고 한마디 했는데 그걸로 불매운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왔다"면서 "사장님이 나오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하고는 떠났다. 장조림과 콩자반을 사가던 손님 이모(40)씨는 "사진 보고 똑같은 상점을 찾아다녔다"면서 "대통령한테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는 나라냐"고 했다.

전날 장사가 안돼 반찬이 100여개 남아 있던 것과 달리 이날은 오전에 만든 음식이 오후 2~3시쯤 동났다. 온양온천시장 상인회 사무실에도 오전부터 반찬 가게를 묻는 전화 수십 통이 왔다고 한다. 반찬 가게 직원들은 "대전·평택·서울에서 일부러 왔다는 분들이 10만원어치씩 반찬을 사갔다"고 말했다. 오은호 온양온천시장 상인회장은 "(A씨를) 응원한다면서 연락처나 상호를 알려달라는 분도 많았다"고 했다. A씨는 이날 오후 늦게 가게에 나왔다. "그래도 먹고살아야지요. 누가 뭐라고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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