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씨돌·용현 아저씨의 선행..미처 못 한 얘기 더 알리고 싶어"

남지은 2020. 2. 1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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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씨돌 용현' 책 낸 SBS 이큰별 피디]
지금도 계속 제보가 와요
저 사람이 나도 도와줬다고
방송 이후 후원금 모였지만
2년 후엔 치료비 감당 안돼

남 돕는데 삶을 던진 아저씨
요즘 저한테 '꽃별'이라 불러
제가 평생 돌봐드려야죠
이큰별 피디와 용현 선생은 남다른 인연처럼 느껴진다. 이 피디는 아저씨를 만난 뒤 피디로서 자세도 바뀌었다고 했다. 이큰별 피디 제공

“요즘 저한테 그래요. 꽃별이라고. 내가 아저씨한테는 꽃 같은 사람이라고.”

최근 서울 목동 <에스비에스>(SBS) 사옥에서 만난 그가 빙긋이 웃었다. 꽃별이라니, 누군가에게 꽃 같은 사람이라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산속에 사실 때) 내가 가면 도시 냄새 난다고 워워~ 하며 장난을 치셨는데, 그래도 은근히 제가 많이 고마우셨나 봐요.(웃음)”

꽃별과 아저씨. 꽃별은 지난해 6월 방영돼 화제를 모았던 <에스비에스 스페셜―요한, 씨돌, 용현>을 만든 이큰별 에스비에스 피디이고, 아저씨는 요한이자 씨돌이자 김용현을 말한다.

<요한, 씨돌, 용현>은 깊은 산골 봉화치 마을에서 살던 ‘자연인’이 알고 보니 숨은 의인이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울렸다. 그는 민주화운동 땐 목 놓아 독재 타도를 외쳤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됐을 땐 누구보다 먼저 가서 돕고, 군 의문사 앞에선 진실을 파헤치는 데 앞장섰다. 좋은 일을 하고도 사건이 해결되면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6월 방송이 나간 뒤 “저 사람이 나도 도와줬다”며 국내외에서 30건 넘는 제보가 쏟아졌는데, 12월 2회를 만들어 내보내고도 다 담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도 계속 제보가 와요.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자신의 이익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남을 돕는 데 내 삶을 다 던질 수 있을까요.” 이큰별 피디는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인 그에 대해 방송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담은 <요한, 씨돌, 용현>이란 제목의 책을 최근 냈다. 방송에 나간 내용에 못다룬 이야기를 더했다. “아저씨한테 감사하는 많은 이들의 전하지 못한 마음과 아저씨가 했던 더 많은 일을 알리고 싶었어요.”

이큰별 피디. 에스비에스 제공

그도 처음에는 ‘용현’의 사연을 몰랐다. 2012년 <세상에 이런 일이>(에스비에스)를 연출할 당시 ‘자연인’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 산에 괴짜가 산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간 게 첫 만남이었다. 더벅머리에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은 남자는 배 위에 모이를 올려놓고 새들의 땅이 되어 주었고, 흙에 감사의 절을 했다. “촬영하면서 너무 순수한 모습에 저도 힐링이 됐어요. 촬영이 끝난 뒤 눈 때문에 길이 막혀 열흘간 함께 지냈는데, 눈썰매를 타고 고구마를 삶아 먹으며 아저씨와 정말 아이처럼 놀았어요. 이상하게 아저씨와 지내다 보니 영혼의 굳은살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죠.” 이후에도 휴가 때마다 봉화치를 찾아 1~2주 쉬다 오곤 했단다. 친분이 쌓이면서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실 정도만 알게 됐고, 아저씨의 삶에 궁금증이 일었다. “내가 힘이 될 수 있다면 안아드리고 싶다. 저 사람 좀 지켜주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었죠. 아저씨는.”

이큰별 피디는 침을 닦아주는 등 ‘남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진심으로 ‘용현’을 돌본다. 보호자나 다름없다. 그가 프로그램과 관련한 책을 낸 것도 “아저씨의 병원비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방송이 나간 뒤 후원금이 모여 ‘용현’은 처음으로 한방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간병비에 치료비까지 한 달에 600만원이 나간다. 남은 후원금으로는 2년 정도 더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 이후가 고민이죠. 아저씨를 평생 돌봐드려야 하는데, 아저씨에게 뭐가 가장 좋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용현’과의 인연은 피디로서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던 이큰별 피디는 <피디수첩>(문화방송) 한학수 피디가 황우석 사건을 파헤치는 걸 보며 시사교양 피디를 꿈꿨다. “세상에 나쁜 사람을 모조리 찾아내 응징하고 싶었어요.” 2010년 <에스비에스>에 입사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성남 조폭의 정치권 연루를 다루는가 하면, 파타야 살인사건의 범인 김형진을 체포하는 데 일조했다. 이상한 사람들이 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경험도 했다. “무섭긴 했죠. 하하. 그래서 보안이 잘되는 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피디도 사람인데 안 무섭다면 거짓말이죠. 어떤 선배는 자신이 보도해 잡혀간 살인범의 출소 날짜를 계산하고 있어요.” 하지만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던 방향이 용현을 만나며 달라졌다. “아저씨의 선한 행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하잖아요. 아저씨는 다행히 제가 세상에 알렸지만, 또 다른 용현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우리는 나쁜 사람은 잘 찾아내지만 좋은 사람을 알리는 일은 잘 안 하잖아요. 그런 분을 발굴해 세상이 아직은 살 만하다는 걸, 따뜻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최근 프로그램 기획팀으로 옮긴 그는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많다”며 웃었다. “시청률이 잘 나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그는 ‘용현’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아저씨가 그러더라고요. ‘큰별이여. 커다란 눈망울만큼이나 따뜻한 봄날 같은 초록빛 저널리즘을 꿈꾸시길.’ 그게 무슨 말인지 어릴 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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