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그 많은 여성 유권자 표, 찍을 당 만들어야죠"

김미향 2020. 2. 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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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여성의당' 만드는 사람들
남성보다 높은 투표율에도
자신을 대변할 국회의원 미미
여성 의제 내세운 첫 정당
총선 70만표, 국회 4석 목표
"여성 목소리, 현실 정치와 만나야"
"30년 느낀 벽..새 제도에 희망"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정치 참여를 목표로 창당을 준비하는 ‘여성의당’ 발기인 세명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정자 여성정치포럼 대표,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대학원생 이지원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17%. 현재 국회 여성 의원 비율이다. 국회의원 300명 중 51명이 여성인 까닭이다. 인구의 절반, 시민의 절반,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들은 왜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할 의원을 갖지 못한 것일까.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정치참여를 목표로 정당을 창당하는 여성 세명을 만나봤다.

“그러니까 어디다 찍느냐는 말이야. 그 많은 표들이 찍을 데가 없다는 거지.”(이정자)

“유권자로서 제대로 한표 던지려 해도 주변에서 찍을 만한 정당이 없다고들 해요.”(이지원)

“여성의 투표율이 높다는 점은 지금 ‘여성의당’이 필요하다는 근거죠.”(김은주)

20대와 50대, 70대 세 명의 여성이 한자리에 모였다. 최근 선거에서 나타난 투표율에 대해 묻자 이야기 봇물이 터졌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여성의 투표율이 남성보다 높았던 것을 떠올리며 세명 모두 목소리가 커졌다. 높은 투표율에도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낼 그릇이 허술하다는 데 이들은 뜻을 같이했다.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정치참여를 목표로 하는 정당이 왜 그동안 없었을까, 이들은 궁금해했다.

‘여성의당’이 지난 15일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18살부터 84살까지 총 451명의 여성이 발기인으로 모였다. 1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서류 제출을 마치고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린 여성의당은 전국의 5개 시·도당에서 각 1천명의 당원을 모집하는 데 성공하면 공식 정당이 된다. 3월8일 ‘여성의 날’에 창당을 선언하고 창당대회를 여는 것을 목표로 삼은 창당준비위원회는 5천명의 당원을 전국에서 모집하고 있다.

여성 인권과 평등권을 전면에 내세운 정당을 꾸리자는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2월 초다. 여해여성포럼에서 여성계 인사들이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과 폭력, 불평등을 반대하는 ‘의제 정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이야기를 나눴고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성 정당을 만들어보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때마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국회를 통과했기에 이념이나 지역, 인물 중심의 정당이 아닌 여성 의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당이 설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상황이었다. 보름도 되지 않아 500명 가까이가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여성의당’ 커뮤니티를 개설하자 열흘 만에 1500여명이 가입했다.

지금 왜 여성의당이 필요한지 이야기하기 위해 창당 준비에 바쁜 발기인 세 명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모였다. 대학원생 이지원(27)씨, 김은주(54)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이정자(78) 여성정치포럼 대표가 그들이다. 이지원씨는 대학에서 정치학과 여성학을 전공하며 여성의 정치참여에 평소 관심이 많았다. 김 소장은 30년간 여성운동을 하며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이사 등을 지냈고, 이 대표는 여성운동에 평생 힘쓴 원로로 헌법개정여성연대 대표를 맡은 바 있다.이들은 창당준비위원회에서 각각 기획팀원, 창당준비위원장, 준비위원을 맡고 있다.

내가 새 정당 만들기 나선 까닭

―왜 ‘여성의당’ 창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나?

이정자 “어릴 때부터 부당한 걸 못 참았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한테 별도로 과외를 받는 학생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시장 딸이었다. 밤에 과외하고 나오는 걸 기다렸다가 그 애를 만나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불평등에 대해서 나는 체질적으로 못 참는 게 있다.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말하는 건 특별한 게 아니다. 그저 ‘인간주의’다. 요즘 ‘페미니즘’이란 표현을 쓰는데 그것보다 인간주의란 표현이 (내겐 더)자연스럽다.”

이지원 “10대 때부터 여성 폭력을 체감하며 자라왔다. 여성 몸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남성의 문화를 목격한 적이 있다. 디지털 기반의 성폭력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폭력은 계속 진화하는데 여성은 자신이 피해 당사자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여성은 불안에 떨며 절규하는데 이 목소리가 현실 정치에 왜 접목되지 않는지 고민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의정 활동에 반영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발기인이 됐다.”

김은주 “여성의 정치세력화 운동을 30년 해왔다. 그런데 30년간 진행한 여러 운동이 늘 벽에 부딪혔다. 기성 정당들 속에서 여성 의제는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다. 그러던 참에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만들어져 여성 의제를 전면화하는 정당이 국회에 진입할 통로가 열렸다. 그동안 삭제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터가 닦인 것이다.”

―발기인에 2030 ‘영페미’부터 7080 여성계 원로들까지 다양하다.

김은주 “다들 문제의식이 가득 차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당’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외치니까 10대부터 80대까지 모여들었다. 지금 7080세대는 먹고사는 문제가 절실하고, 민주화 세대는 정치적 대표성이 중요하고, 2030세대는 폭력과 안전 문제가 핵심이다. 여성 안에서도 경험치가 다양한 까닭이다. 경험이 다르다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이란 이름으로 모든 세대가 연대할 수 있는 ‘여성의당’이란 큰 집이 필요한 것이다.”

이정자 “‘여성의당’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1975년이 ‘세계 여성의 해’였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여성 의식이 높아지고 교육과 사회운동이 많아졌다. 그 염원이 2020년에야 현실이 되고 있다. 모든 세대가 다 모였다는 것은 다른 세대가 처한 상황이나 고민을 이해할 폭이 넓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같은 여성이라도) 70대인 내가 20대의 상황을 잘 알 수 없다는 걸 ‘여성의당’ 단톡방을 보며 느꼈다. 나이 든 사람은 프로필에 자기 얼굴 사진과 자기 이름을 쓰는데, 젊은이들은 캐릭터 사진에 별명을 쓰더라. 죄다 개, 고양이, 꽃 이런 거야.(웃음) 단톡방에 자기 이름을 안 쓰는 걸 보고 젊은이의 익명 문화를 실감했다.”

이지원 “세대는 다를지라도 여성이 경험하는 생애주기에 대한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모든 세대의 여성이 하나의 정당으로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 중심 국회를 느꼈던 순간들

―기성 정당에서 여성 공천을 늘리면 되지 않나, 여성의당까지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김은주 “여성은 인구의 절반, 시민의 절반, 유권자의 절반인데 지금껏 국회에서 절반의 대표성을 인정받아왔나. 여성 공천 30% 할당제를 의무화하자고 해도 아직도 되지 않고 있다. 막상 선거 국면이 되면 법이 강제한 비례대표 여성 50% 이외엔 아무것도 안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상황에서 여성 의제 해결을 목표로 한 여성주의 정당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준연동형이라 연동률 50%에 비례대표 30석에만 적용되지만, 그동안 대표되지 못했던 다양한 의제를 그 30석에 담아야 한다.”

이정자 “기성 정당은 그저 유명한 사람을 공천한다. 특별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여성을 뽑는다. 그들은 결코 다수의 여성을 대표하지 못한다. 국회에 입성하더라도 스스로 남성화하지 않으면 여성이 살아남지 못하는 구조다. 국회에 들어갈 때는 여성의 얼굴로 들어가는데, 막상 들어가면 여성 의제를 발굴하지도 않는다.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에 아무런 비판도 못 하고, 다들 그렇게 되더라. 여성 의원이 소수다 보니 빚어지는 결과다.”

이지원 “17대 국회(2004년) 때 여성 의원 비율이 13%로 처음 10%를 넘었고, 20대 국회(2016년)에서는 전체 300명 의원 중 51명(17%)이 여성이다. 100명 중 17명꼴로 여전히 소수에 그친다. 또한 여성 의원 수 자체를 늘리는 것 그 이상으로 국회 내 문화를 성평등하게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보좌관도 의정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인데 4~5급 보좌관은 대부분 남성이고 6급 비서부터 여성이 많다. 여성의당은 후보도 여성이고 실무진도 여성이라 보좌진의 성별 직무분리 문화를 깰 수 있다.”

이들은 현재 국회가 ‘남성 중심의 국회’라고 느꼈던 순간이 많다. 김은주 소장은 “미투 국면 때 관련 법안들이 많이 발의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통과된 게 거의 없다. 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법이 만들어져야 되는데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되는 일이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이지원씨는 “여성 정책이라고 하면 ‘기혼의 유자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정하는 것이 답답하다. 기성 정당의 성인지 감수성으론 다양한 정책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여성의당’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여성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의원 비율은 낮지만, 여성 유권자 투표율은 그렇지 않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여성 투표율은 61.2%로 남성 투표율(59.9%)보다 높았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여성(77.3%)이 남성(76.2%)보다 근소하나마 더 투표를 많이 했다.

가장 느린 정당 돼도 괜찮다

나이, 직업, 지역, 사고방식 등 모든 것이 다른 이들이 ‘여성’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연대가 가능할까. “‘여성의당’은 남성 중심 정치, 여성에 대한 모든 혐오와 폭력, 고용과 임금 등 경제활동에서의 차별과 불평등, 모든 특권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원고지 18장 분량의 발기 취지문을 만드는 데에도 장시간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다. 표현 하나를 두고도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투표도 하고 묻고 또 물어서 의견을 구해 현재의 발기 취지문이 완성됐다.

당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하나로 모아갈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다. 이들은 가장 느린 정당이 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은주 소장은 “대한민국 여성을 모두 포함시키는 큰 판으로 함께 가려면 가장 느린 정당, 느림보 정당이 되더라도 공론의 장에서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창당준비위원회는 조직도 돈도 없는 상황에서 자원활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누군가의 추동이 아니라 전국의 여성들이 각자의 절실함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발기인이 모인 단톡방에 “홈페이지 웹디자인 하실 수 있는 분 계신가요” “발기취지문 영어 번역 해주실 분 계신가요”라고 올리면 누군가 “저요”라고 손을 드는 식이다. 하루는 후원회장이 회비가 부족하다고 했더니 밤사이 1만원, 5만원 등 십시일반으로 자금이 마련됐다. 이지원씨는 “이런 창당 과정이 민주주의 경험”이라며 “많은 유권자들이 선거 과정에서 무력감을 느끼는데 정당 창당에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경험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들의 목표는 70만표 득표다. 총선에서 70만표를 얻으면 3%를 확보해 의석 4석 획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정자 대표는 “전국의 모든 여성단체와 직능단체가 연대하면 좋겠다”며 “같은 직업군이 모인 직능단체의 여성들은 평생 유리천장을 경험하고 살았고 여성단체는 설립 목적 자체가 여성의 인권과 평등권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니까 ‘여성의당’이 생기면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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