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외주화' 현대중 하청노동자 또 추락사

김한솔 기자 2020. 2. 2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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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강풍 속 트러스 작업 강행…안전 그물망 등 제대로 안 갖춰져
ㆍ서류상 소속 다른 하청의 하청노동자…노조, 24일 추모 집회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작업 중 추락해 사망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에 따르면 사망 당일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었던 작업 현장에는 안전 그물망 등 추락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다 하청노동자가 숨지는 ‘죽음의 외주화’ 사고가 또 발생한 것이다.

현대중공업노조는 지난 22일 오후 2시쯤 울산 현대중공업 내 2야드 동편PE장인 풍력발전소 쪽 LNG 트러스작업장에서 하청노동자 ㄱ씨(62)가 작업 중 추락해 사망했다고 23일 밝혔다.

경찰 및 고용노동부와 함께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노조는 초기 조사 결과 ㄱ씨를 포함한 작업자 3명이 1개 조로 트러스 7단에서 합판 조립을 하던 중 ㄱ씨가 미처 고정되지 않은 합판을 밟으면서 중심을 잃어 트러스 2단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트러스작업장은 작업용 발판 구조물을 말한다. 트러스 단과 단 사이의 높이는 약 3.2m로, ㄱ씨는 약 16m를 추락한 것이다. ㄱ씨는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다른 작업자 2명의 신고로 울산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하는 과정에서 오후 3시쯤 숨을 거뒀다.

사고 현장에는 작업자 보호를 위한 안전 그물망조차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ㄱ씨는 고층 작업자의 추락 방지를 위한 보호구인 안전대(안전벨트)를 착용하고는 있었지만, 안전대를 안전줄에 건 채로는 작업 현장까지 이동할 수 없어 고리를 걸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형균 현대중공업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사고 현장이 (작업자가) ‘가로’로 움직일 때는 고리를 걸 수 있는데, ‘세로’로 움직일 때는 고리를 해지해야 하는 곳”이라며 “크레인 위에 장착된 CC(폐쇄회로)TV를 통해 확인하니 (ㄱ씨가) 다른 작업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다 고정이 안된 상태의 베니어판을 밟고 빈틈으로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조는 사고 당일 ㄱ씨가 일하던 지역의 풍속이 초속 9.5m를 기록하는 등 강한 바람이 불어 고층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고 지적한다. 김 실장은 “(바람이) 어느 정도였냐면, 어제 노조 간부들이 사고 조사를 하러 현장에 갔을 때에도 (작업자들이) 발판으로 사용하는 베니어판이 바람에 날려 떨어질 정도였다”며 “그런 작업을 해선 안됐다”고 말했다.

ㄱ씨가 서류상 소속과 실제 소속이 다른 ‘하청의 하청’ 노동자인 사실도 드러났다. 노조는 ㄱ씨가 서류상으로는 현대중공업의 1차 하청업체인 진오기업 소속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2차 하청업체인 오성기업 물량팀 소속이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사고가 났을 때 (서류에) 유족 연락처가 없어 경찰을 통해 번호를 겨우 찾아냈다”며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노조 간부들이 유족들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는 작업 현장에서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르자 지난해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대응에 나섰지만 같은 사고가 반복됐다. 개정된 법률에서는 재해 예방관리를 위한 원청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했다. 원청의 안전관리 소홀로 인해 노동자가 사망에 이를 경우 원청 사업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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