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용 칼럼]"민주당, 왜 그래"

박래용 논설위원 2020. 2. 24. 20: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초선·서울 강북을)은 지역 민심이 싸늘해진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길에서 만나는 시민들, 특히 중도층들의 태도와 말투가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달라졌을까.

“종전에는 민주당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박용진이 열심히 하니까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박용진은 열심히 하지만 민주당이 마음에 안 들어서 못 찍겠다고 한다. 이건 어마어마한 변화다.”

민심의 변화는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갤럽 조사결과 ‘여당 승리론’은 지난달 52%에서 39%로 줄었다. 반대로 ‘야당 승리론’은 37%에서 50%로 높아졌다. 여당을 향해 있던 중도층이 야당으로 돌아선 때문이다.

불과 한 달 만이다. 올 초만 해도 민주당은 예산안과 선거법, 검찰개혁 법안을 처리하면서 자신감이 충만했다. 인재영입과 공약 발표 등에서도 한 발짝 앞서 나갔다. 거칠 게 없던 민주당의 발목을 잡은 악재는 여러 가지이지만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당 밖에선 추미애 법무장관의 무리한 엄호, 당내에선 임미리 교수 칼럼 고발과 서울 강서갑 공천에서 보여준 ‘조국 대리전’이다.

추 장관의 ‘공소장 비공개’와 ‘수사·기소 분리 방안’은 옳고 그름을 떠나 시기가 적절치 않았다. 검찰이 청와대 전·현직 인사 13명을 기소한 공소장은 검사의 주관과 예단이 가득 찬 정치선언문과 다를 바 없었다. 법관에게 선입견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공소장 일본(一本)주의’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그건 차라리 시민들이 정치검찰의 민낯을 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게 나았을 수 있다. 추 장관은 그걸 숨김으로써 더 많은 정치적 오해를 불렀고, 더 많이 잃었다.

임 교수 칼럼, 서울 강서갑 공천을 관류하는 공통점은 민주당의 오만과 독선이다. 임 교수 고발에서 민주당은 교수의 작은 핀잔도 듣기 싫어하는 ‘찌질이 정당’으로 비쳤다. 강서갑 공천에서는 조국에 비판적이었던 초선 의원(금태섭)의 소수의견도 수용하지 못하는 불통 정당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대통령은 “조국을 놓아주자”고 했지만, 되레 민주당은 잊힌 조국을 다시 소환했다. 중도층은 이런 모습을 보고 ‘민주당=오만’이라는 심증을 확증으로 굳힌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중도층이 확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며 판단하고 행동해왔다. 열혈 지지층은 꼭 필요한 자산이지만, 때론 부담이 될 수 있다. “팬덤을 기반으로 한 정치는 오로지 사람에게만 주목한다. 무슨 이야길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야기했느냐를 따진다. 그 사람이 내 편을 들면 동지고, 아니면 무조건 적이다”라고 유성엽 의원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말했다. 민주당은 내 편을 들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했다. 그 결과 중도층을 놓쳤다.

총선은 50일 남았다. 역대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를 비교하면 총선은 대통령 지지율을 보고 전망하는 게 정확하다. 4년 전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총선 직전 36%로 떨어졌다. 새누리당 지역구 득표율 38%와 거의 똑같다. 엊그제 갤럽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45%였다. 수도권의 경우 지역구에서 40% 이상 득표하면 당선권이다. 아직은 해볼 만한 지지율이다.

정치권은 앞으로 몇 번의 출렁임이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양당 대결 구도는 짙어질 것이다. 역대 정권의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총선은 ‘정권 심판론’이 대세였다. 보수야당은 상승세다. 미래통합당은 난제였던 물갈이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안정권에 접어든 모습이다. 당 안팎에선 ‘김형오 매직’이란 말까지 나온다. 제1당을 기대해볼 만하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민주당은 빨간불이 켜졌다. 여당은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집권당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겸손해야 했지만, 시민들의 눈엔 그렇게 비치지 않았다. 인적 쇄신도, 공천 흥행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한 달 동안 득점 없이 있는 점수마저 까먹으며 허송세월했다. 4년 전 새누리당이 그러다 폭망했다. 남은 시간 동안 호재는 없고 경제·코로나 등 악재만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현재의 지지율을 지키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비례민주당’ 아이디어는 그런 절박함에서 나온 자살골이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는 말 그대로다. 시민들은 ‘민주당, 왜 그래’라고 묻고 있는데, 민주당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거북이 등에서 털을 뜯고 있다.

박래용 논설위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