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의인의 딸, 코로나19 현장으로 떠나다

변상철 입력 2020. 2. 25. 07:36 수정 2020. 2. 2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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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한 병원에서 의료활동 중인 세월호 생존자 자녀 김예나씨

[오마이뉴스 변상철 기자]

 '제주세월호생존자와그들을지지하는모임'창립총회
ⓒ 박기완
 
지난 22일,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기억 공간인 제주 '수상한집'에서 아주 의미 있는 모임이 열렸습니다.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 창립총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싸워왔던 김동수씨와 오용선씨 등 세월호에서 생존한 이들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그동안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생계와 관련된 지원이나 협력을 전혀 받지 못했던 그들이기에,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자발적 모임을 만든다고 하니 설레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제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의 현장으로 담담히 떠난 딸

그런데 기쁜 이날, 김동수씨의 마음은 한편으로 무겁기도 했습니다.

"아빠, 저 오늘 대구로 올라가요."

김동수씨의 둘째 딸 김예나씨는 이날 모임을 마치고, 곧장 직장인 대구의 모 병원으로 올라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대구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 곳입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의료진의 병원 내 감염도 이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대구로 딸아이가 출근을 위해 떠난다고 하니 어느 부모인들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습니까.

아빠는 마지막까지 세월호에서 아이들을 구하다 나왔고, 딸은 코로나19 현장으로 담담히 떠났습니다. 예나씨는 응급구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보내고 싶지 않은 게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아빠는 걱정 섞인 말을 한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잘 다녀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김예나씨가 개인 SNS에 올린 내용
ⓒ 김예나
          
대구에 도착한 김예나씨는 다음날 병원에서 근무하며 '그날' 세월호에서의 아빠를 더 이해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는 개인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며 아빠의 희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드러냈습니다.

"우리 아빠는 이 세상 누구보다 대단한 사람이다. 그날 아무런 보호구도 없이 수많은 사람을 살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은 그가 18살 고등학생이던 때입니다. 당시 한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어 아빠가 배에 타고 있는지 몰랐다. 아빠가 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눈물만 나왔다. 아빠는 구조됐지만 남아 있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라고 말하던 여린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어 또 다른 재난 현장에 뛰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전에는 몰랐던 아빠의 한 모습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부디 무사히 제주로 돌아오기를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가족의 희생이 대물림되는 것이 마음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시민의 희생을 혹시 가볍게만 보지는 않는가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난 6년간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처우를 생각하면 딸아이가 걱정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 후유증과 사고로 인한 신체적 후유증에, 본인 진료비 이외에는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 정부의 행태를 보면 말입니다. 그동안의 의로운 행동은 고통으로 돌아올 뿐이었다고 세월호 생존자들은 회상합니다.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나온 19일 오후 대구시 중구 경북대학교 병원에 긴급 이송된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래서일까요? 김동수씨의 따님은 그런 생존자들의 모임을 만들고 환하게 웃으며 대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그건 사람을 믿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행동에 찬사를 보내고, 고통에 함께 공감하는 이웃과 시민을요.

김예나씨의 어머니 김형숙씨는 딸 예나씨가 보내온 사진을 보며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의료장비나 넉넉하게 보내주면 좋겠어요. 의료진이라도 안전해야 사람들을 더 잘 돌볼 수 있을 테니..."라며 조금 더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사태를 우려하는 우리는 그런 당신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냅니다. 부디 그곳에서 무탈하게 지내며 이웃을 보듬어 주고 돌아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의 바람대로 무사히 지내다가 "빨리 제주도로 가서 아빠를 안아"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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