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겨레21

그가 떠나고 그들은 안전해졌나

입력 2020. 02. 25. 11:49 수정 2020. 02. 2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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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트랜스 여성 변희수 하사가 강제 전역하고 숙명여대 합격자는 입학 포기한 이후 남은 것

2월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트랜스 여성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와 반대하는 대자보가 나란히 붙어 있다. 연합뉴스

“여성으로 태어난 여성들만 입장하라.” “트랜스 여성은 들어올 수 없다.”

낯설지 않은 이 배제의 문장들은 약 30년 전인 1991년, 미국 미시간에서도 있었다. MTF(Male to Female·생물학적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인 트랜스 여성 낸시 버크홀더는 미시간 여성음악축제에서 입장을 저지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었으므로. 당시 트랜스젠더 배제를 주장하는 쪽은 트랜스 여성의 참여를 여성 공간에 남성이 침입하는 것으로 여겼다. 1976년부터 약 40년간 이어진 이 축제는 트랜스젠더 배제 논란으로 2015년 끝내 막을 내렸다.

시간과 장소와 이름을 지우면 꽤 익숙한 상황이다. 시공을 넘어 유사한 사건은 2020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다. 트랜스 여성으로서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성별 정정을 거친 ㄱ(22)씨는 숙명여대에 합격했지만 입학을 포기했다. “(성별) 디스포리아(불쾌)를 겪어왔고, 이해해달라”는 ㄱ씨의 호소는 9일 만에 “등록을 포기하겠다”는 편지로 끝이 났다.

ㄱ씨 입학 포기에도 소수자들을 향한 날 선 문장들은 여전하다. ㄱ씨 전에 변희수 하사가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전에 또 다른 ㄱ씨가 있었던 것처럼, 트랜스젠더 배제는 과거형도, 과거완료형도 아니다. 현재 있는 그리고 앞으로 있을 소수자 배제와 차별의 현재진행형과 미래형이다.

마지막까지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2월8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21>과 만난 ㄱ씨는 언론에 자신의 이야기가 나간 뒤의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많은 뉴스 중 하나로 묻힐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반대가 있을 거라고 봤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ㄱ씨는 처음엔 신상이 노출됐을까봐 댓글을 읽었다. 댓글을 읽을수록 상처가 돼 나중엔 읽지 않았다. 입학 등록 마지막 날이던 2월7일 금요일 새벽, ‘숙대 등록 포기에 부쳐’ 글을 써내려갔다. 한참을 쓰다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고치고 또 고쳤다. 4년 동안 준비한 입시라 그냥 등록할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무서웠다. “누군가 트위터에서 그러더라. ‘당신 같으면 자기를 혐오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는 학교를 지나가고 싶겠냐’고.” ㄱ씨는 “연대해준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썼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1월30일 트랜스 여성 ㄱ씨가 숙명여대에 합격했다는 기사를 본 나수빈(숙명여대 법학)씨도 그렇게 생각했다. “ㄱ씨는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법적으로 성별 정정까지 해서 반대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낯선 존재와 함께 생활하는 게 싫을 순 있지만 그게 다라고 봤다. ‘여성의 공간을 지키자’를 넘어 조직적으로 입법부와 청와대에 (성별 정정을 막아달라고) 청원하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나씨는 ㄱ씨가 입학하면 동아리에 영입해서 함께 활동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합격 기사가 난 다음날, 나씨가 속한 숙명여대 공익인권학술동아리 ‘가치’는 학내의 래디컬(급진적) 페미니즘 단체들의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들을 규탄하며 ㄱ씨의 합격을 환영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하지만 ㄱ씨를 내시에 비유하는 등의 내용이 대자보 형식으로 올라오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과거 유사한 사건 때는 이른바 터프(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스트)들이 논리를 가지고 말했는데, 이번은 달랐다. 이렇게 저급한 발언은 처음이었다.” 나씨는 “트랜스 여성의 입학을 외부 남성의 침입으로 곡해하는 건 옳지 않다”며 실명을 건 대자보를 붙였다. 다른 인권단체와 동문들의 ㄱ씨 환영 성명도 이어졌다.

“올 것이 왔다, 여기서 막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숙명여대 페미니즘 모임에서 활동하는 박연수(가명)씨는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성별 변경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ㄱ씨 입학 반대 성명에 참여했다. 6개 여자대학의 23개 단체가 참여한 성명엔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금지해달라는 요구가 담겼다. 이들은 여자대학을 ‘여성들의 안전한 공간’으로, ㄱ씨 입학을 ‘남성의 침입’으로 봤다.

박씨는 ㄱ씨의 입학이 비수술 트랜스젠더의 입학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 기저엔 “혐오가 아닌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숙명여대에서 남성들이 침입한 사건이 많았다. 지난해엔 남자 직원과 교수들에게도 배지를 달도록 해달라고 학교 쪽에 요구할 정도로 학우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이 일이 터진 것이다.”

숙명여대에선 지난해 3월엔 마약을 소지한 남성이 여자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도망친 사건이, 6월엔 캠퍼스를 돌아다니던 여장 남성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혐오 아닌 두려움 때문이라 하지만

박씨가 참여한 성명을 쓴 하연정(가명)씨도 비슷한 이유를 댔다. “법원의 성별 변경을 반대하는 연서명에 1만8천 명이 참여했다, 불과 12시간 만에. 여성들이 이 사안에 공포를 갖는다는 뜻이다.” 하씨에게 여성이란 생물학적인 여성뿐이다. 여성으로 태어나 겪은 차별과 사회적 요구가 여성을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들은 여성이 겪는 피해를 겪지 않았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여성으로 느껴왔다고 하는데 그 근거가 뭐냐.” 하씨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여성만 있는 공간이 여성의 완전한 안전을 보장할까. 나씨의 답은 ‘아니요’였다. “모든 사회에서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꿈꿔야 한다. 남교수, 남직원 등 대학이 남성의 출입을 원천 차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성이 없으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 건 여성을 고립시키고 더 위험하게 한다. 여러 대학에서 비용 문제로 경비 인력을 줄였다. 우리는 ‘남성을 차단해달라’가 아니라 위험해 보이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인력을 늘려달라고 해야 한다.”

ㄱ씨 입학을 찬성하는 이들도 여성의 공간에 남성이 침입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이해한다. 하지만 ㄱ씨를 향한 날 선 발언들이 “낯선 존재에 대한 혐오”라고 단언했다. 나씨와 함께 ‘가치’에서 활동하는 이다경(법학과)씨는 “그 두려움은 남성 집단에서 기인한 거지,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에게서 온 게 아니다. ㄱ씨는 본인이 일생을 살아오면서 남성성이 자신의 성정체성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타고난 신체를 바꿔가면서 여성이 되려고 했다. 이를 남성과 같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씨는 트랜스 여성의 사회적 여성성 구현을 비난하며 여성의 자격을 묻는 것도 경계했다. “트랜스 여성은 필연적으로 시스젠더(Cisgender·생물학적 성과 성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의 여성성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생물학적 여성들이 어떤 사회적 역할을 했고 어떤 모습인지 보면서 답습할 수밖에 없다. ‘진짜 여성’의 자격을 물을수록 배제되는 여성만 늘어날 것이다.”

조짐은 있었다. 2015년 전후 페미니즘 리부트(재시동) 이후 트랜스 배제 움직임의 시발점은 2016년 메갈리아에서 워마드로 분화하던 때로 꼽는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발병이 한국을 강타할 때, 남성들의 여성 혐오를 미러링(되돌려 보여주기)하며 메갈리아 사이트가 생겼다. 이후 게이(남성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충’ 논란 속에 이 단어의 사용 금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워마드로 이동했다. 워마드는 생물학적 여성만 가입할 수 있다는 규칙을 내걸었다. 트랜스 여성의 참여를 막고 생물학적 여성만 여성으로 보겠다는 뜻이었다.

타인 존재 부정하고 기회 빼앗는 페미니즘?

이 흐름은 2016년 말부터 있었던 비웨이브 주최 ‘낙태죄 폐지’ 시위로 이어졌다. 당시 참가 자격을 자궁 유무로 나누면서 자궁을 적출한 여성은 여성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그래서 생물학적 여성만 집회에 참여하도록 했다. 같은 의제로 집회를 연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쪽이 참여 제한을 두지 않은 것과 반대다. 2018년 서울 혜화역 등에서 열린 불법촬영 규탄 집회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이어졌다. 집회 주최 쪽에서 생물학적 여성으로 참가 자격 조건을 둔 까닭이다.

당시 우정연(가명)씨도 일련의 상황을 지켜봤다. “2017년으로 넘어오면서 여성 이슈와 다른 의제가 함께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면, 이후에는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판단하는지가 중요한 기록이 됐다.” 우씨는 2017년 초 충남 지역에서 열린 페미니스트 캠프를 언급했다. “당시 참여 대상을 지정 성별 여성이거나,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한 사람으로 했지만 큰 반발이 없었다. 하지만 그해 10월 보라×뮤직페스티벌에선 정체화한 여성에게도 참가 자격을 준다는 이유로 대규모 환불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에 대한 분노가 남성 동성애자로, 트랜스 여성에게로 이어졌고, 트랜스젠더 혐오는 온라인에서 자율적인 운동 공간으로, 법으로 보장된 학습권 침해로 강화됐다. 이제는 성별 정정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건, 그동안 차별과 편견에 맞서며 조금씩 걸음을 내디딘 트랜스젠더 논의를 퇴보시켰다는 지적을 받는다. 인권운동의 성과로 한국은 2006년 6월 대법원에서 “성의 결정에 있어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결정을 얻어냈다. 이후 성전환자가 성별을 정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세계보건기구(WHO)도 2018년 국제 질병 분류 제11차 개정판에서 트랜스젠더가 정신질환이라는 항목을 삭제했다. 이는 트랜스젠더 성정체성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낙인찍는 게 아닌, 인간의 다양한 성정체성을 인정한 역사적 변화다. “존재 부정은 천부인권에 역행하는 것이다.”(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트랜스젠더 혐오가 페미니즘 논리를 입고 여성 위협의 대상을 남성, 장애 남성, 게이 남성, 트랜스 여성에게까지 확장했다. ‘한번 실패하면 나락’인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 감수성을 키우는 게 모험이긴 하지만, 남성과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어떻게 인권을 확대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저 ‘그런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미국의 트랜스젠더 연구자인 수잔 스트라이커는 책 <트랜스젠더의 역사>에서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그냥 ‘그렇다’. 인구의 소수는 (아마 우리 자신을 포함해) 그저 단순히 ‘그렇다’는 사실을 그저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을 단순히 ‘그런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숙명여대를 포함한 5개 대학 17개 단체는 ‘여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여페넷)를 발족했다. 이 단체는 ㄱ씨 입학 거부와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으로 가시화된 트랜스젠더 혐오와 여성 공간에 대한 공론장을 만들 계획이다.

차이가 혐오로 치환되기는 너무 쉽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무수한 차별과 혐오의 역사에 맞서왔다. 나수빈씨는 ㄱ씨와 또 다른 ‘ㄱ씨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더 싸우고 노력해 좋은 공동체를 만들겠다. 다음엔 함께했으면 좋겠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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