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밀봉' 전략에도 피해 적지 않아 .. 확산땐 체제 치명타 [세상을 보는 창]

박병진 2020. 2. 2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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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코로나19 청정구역? / 항공·도로·철도 등 모든 통로 막고 / 외교관·관광객 등 입북 전면 불허 / 北 주재 외교관들 감시·통제도 강화 / 軍동계훈련 등 대표 행사 대폭 축소 / 관영언론 "확진자 없다" 수차례 강조 / 우리 정보당국 "피해 적잖다" 분석 / 국제적십자사는 '장비 지원' 준비 / 경직된 남북관계 해결 변수 시각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더믹’(pandemic·세계적 유행병)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30여개 국가에서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발원지인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는 세계 2위 코로나19 감염국이 됐다. 정부는 지난 23일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수준을 ‘경계’ 단계에서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했으나 지역 확산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
 
비상이 걸리기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북녘땅에선 아직까지 단 한 명의 확진환자가 없다고 한다. 북한은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 국경을 전면 봉쇄하는 강수를 뒀다. 폐쇄적인 북한 정부 속성과 주민들의 열악한 보건 환경을 감안하면 북측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북한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 장비 및 진단 키트, 개인 보호용품 지원을 준비 중이다.
북한 평양시민들이 22일 마스크를 착용하고 무궤도전차에 탑승해 있다. 북한은 한국 등 주변국가의 코로나19 확산 소식을 신속하게 보도하면서 주민들에게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며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코로나19 ‘청정지역’ 아니다”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의 공식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미 북녘땅에도 코로나19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정보는 차고 넘친다.

지난 20일 만난 정보당국 고위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다 얘기할 수 없지만, (북한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나 타격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2일 북한이 북·중 국경을 봉쇄한 것이 무슨 의미겠나. 그때부터 상황이 심각했다”면서 “우리보다 심하면 심했지, (피해 정도가) 작지는 않다.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대략 1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 북한이 WHO 등 국제 사회나 우리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까’라는 질문에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그 정도로,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 그리되지 않겠나”라고 예상했다.
앞서 이달 중순 만난 한 정부 소식통도 북한 내 코로나19 확산 정도와 관련해 “최근 바이러스 감염으로 여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많은 수의 확진환자가 생겼음을 의미한다”며 비슷한 판단을 내놨다. 소식통은 이어 “(정부에는) 여러 정보수집 채널이 있고, 이 채널들을 통해 북한 내 이곳저곳에서 그런 얘기들이 나오는 것을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정확한 확진자 수와 사망자 통계는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북·중 국경지대에서 평양까지 확산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자, 소식통은 “발생 지역을 언급하긴 곤란하다. 보건 인프라가 열악한 북한은 우리와 사정이 다를 것”이라고 말해 광범위한 확산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 내 코로나19 확진 및 사망자 소식은 일부 매체를 통해서도 알려진 상태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지난 7일 북한 내부 소식통 발언을 인용해 “북·중 국경지역에서 북한 주민 5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로 돌연 사망했고, 북한 당국은 기밀 유지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12일에는 “현재까지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평양에서만 3명”이라면서 “추가로 코로나19 확진자 18명이 제3인민병원에 격리돼 있다”고 소식통발로 전했다. 인용된 소식통은 “북한 보건당국은 최근 사망한 20대 중국 유학생이 바이러스 진원지로 파악하고 있다”고도 했다.

북한 내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유추할 수 있는 정황들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북한 주재 외교관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 강화다.

지난 4일 러시아 타스통신은 “북한 주재 모든 외국인은 20일까지 대사관 건물에 머물러야 하며, 평양 외교관들은 현재 반감금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들의 감염 가능성을 우려하는 조치이긴 하지만 북한 내부 정보를 통제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타스통신은 “북한은 모든 외국인 외교관들의 출입을 통제함과 동시에 평양 내 호텔·상점·식당·공공장소에서의 대외국인 서비스를 모두 중단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북한 당국이 파견한 의료진이 각국 주재 대사관에 직접 들어가 검진을 시작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북한군은 동계훈련을 대폭 축소하고, 지난 8일 건군절에는 대규모 열병식 행사도 생략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16일 있었던 김 위원장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도 연장선상에 있다. 이날 참배는 지난달 25일 김 위원장이 가족과 함께 설 명절 공연을 관람한 뒤 22일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 위원장은 마스크는 쓰지 않았지만 수행간부 수를 대폭 줄여 대동했다. 또 지난해와 달리 간부들과 5m 정도는 떨어져 움직였다. 북한군 출신 탈북민 A씨는 “김정은이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모습은 북한 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기감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중앙TV는 23일 코로나19 유입을 막기 위해 수입물자에 대한 검역과 소독을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화물이 실린 열차를 방역요원들이 소독하는 모습. 연합뉴스
◆‘발병 제로’ 강조하는 이유는

북한은 지난 2일 조선중앙TV를 통해 ‘발병 제로’를 처음 언급했다. 남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백명을 돌파한 이후에도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북한은 과거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2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확진자 유무에 대해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는 뒤늦게 세계동물보건기구에 딱 1건의 발생 사실만을 알렸다. 감염병에 대해 WHO에 발병 사실을 보고한 것은 신종플루가 유일했다.

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 등 관영 언론을 통해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보다 체제 유지를 위한 고육책으로 분석된다.

탈북민 K씨는 “코로나가 북한에 대거 유입될 경우 안그래도 위태로운 북한 경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주민 감시와 통제에 열성일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의 경제정책 기획 및 수립, 지도·감독을 총괄하는 국가계획위원회가 북한 내 코로나19의 방역대책을 총괄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북한은 항공과 도로, 철도 등 모든 통로를 차단했다. 외국인 관광객과 외교관, 출장객 등의 입북도 불허하고 있다. 국가 자체가 밀봉된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건위생체계의 취약성을 방증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K씨는 “북한의 보건체계가 어느 정도로 낙후돼 있는지 남쪽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할 것”이라며 “3년 전 판문점을 통해 탈북하다 총상을 입고 이송됐던 오청성씨 몸에서 기생충 수십 마리가 나온 것을 보고도 기겁하지 않았나. 그런 것은 북한에서 놀랄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북한은 북·중 국경지대와 평양을 코로나19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아직 국제 사회에 지원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덕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가 지방으로 확산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열악한 의료 인프라 때문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K씨는 “지방은 코로나19에 걸려 죽더라도 독감이나 지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치부되고 통계에는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이 의료 장비 지원을 위한 IFRC 요청에 대북제재 면제를 받아들인 것은 북한의 코로나19 위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 국무부도 인도적 차원에서 코로나19 대북지원에 긍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경직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변수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지난 21일 조혜실 통일부 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민간단체나 국제기구가 대북지원 협력을 공식 요청해올 경우 “해당 기관과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정부는 감염병 전파 차단 및 대응을 위한 남북 간 협력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한 쪽에서 지원 등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협의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다. 감염병 확산 방지라는 공통된 목표가 남북 협력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바람이기도 하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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