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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입국금지, 안되는데.." 재계 속앓이

문수정 정건희 이택현 김성훈 기자 입력 2020.02.2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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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시안반도체 공장 전경이다. 4대그룹 한 관계자는 "글로벌 분업 시대에 중국을 떼놓고 기업 경영과 국가 경제를 논할 수 없다"며 중국 입국 금지 여론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삼성전자 제공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때 겪어보지 않았습니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는 것을 바라보는 재계의 심정은 착잡하다. 재계는 중국인 입국 차단 시 바이러스 차단이라는 실익에 비해 ‘한국 불매운동’이나 중국 정부의 ‘보복성 규제’ 등 후폭풍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런 입장을 드러내기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어 속앓이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27일 주요 대기업들에 따르면 중국인 입국 제한 여론에 대해 “‘제2의 사드 보복 사태가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4대 그룹 한 관계자는 “(중국인) 입국 제한으로 사람이 못 들어오는 건 차라리 작은 부분”이라며 “그 조치로 인한 파장이 워낙 크다. 중국에 들어간 국내 기업과 얽혀있는 공급망 등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4대 그룹 관계자도 “대중관계 악화가 엄청난 실적 악화로 돌아온다는 것은 사드 때 이미 겪어봤다”며 “지금 입국금지가 효과가 커보이지도 않는데, 여론에 등 떠밀려 정부가 실익 없는 판단을 하지 않길 바랄뿐”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이 이구동성으로 사드 사태를 언급하는 이유는 중국의 각종 보복성 규제로 인해 입은 경제적 피해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2017년 사드 사태 당시 중국이 이른바 ‘한한령’으로 불리는 규제를 내리자 중국인 관광객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들에게 매출의 60~70% 가량을 의존하던 면세점 업계와 국내 관광 업계가 줄도산하는 등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중국 내 한국 불매운동으로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도 피해가 컸다. 롯데마트는 2017년에만 1조2000억원의 적자를 낸 뒤 결국 중국에서 112개에 이르던 모든 매장을 철수했다.

현대자동차는 2016년에 170만대가 넘는 차를 중국에서 팔았지만, 사드 이후 연간 판매량이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IBK경제연구소는 사드 여파로 2017년 한 해에만 17조원이 넘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당시 전망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드 사태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한령이 다 해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 장쑤성 롯데마트.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시키면, 보복성 규제로 인한 후폭풍이 잇따를 것으로 재계는 내다보고 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지금은 코로나19가 의료 이슈이지만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면 통상 이슈로 번지면서 중국 정부가 앞장서서 보복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이 한국에 수·출입 중단을 단계적으로 할 수 있어 사태가 엄청나게 커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도 “정부 정책에 의해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중국에 대해 입국금지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중국에서 철수하는 기업들이 더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우려가 제기되는데도 재계는 아직까지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진 않고 있다. 주요 경제단체들도 중국인 입국금지와 관련된 전망이나 입장에 대한 질문에 극히 말을 아끼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입국금지를 하면 지금 코로나로 피해를 본 사람보다 훨씬 많은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태가 올 것”이라며 “다만 코로나19 확산이 너무 빠르니까 (역풍이 우려돼) 의견을 내기가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입국금지 조치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섣불리 우리가 중국인 입국 금지하면 중국은 또 카운트파트(상응조치)로 나올 것”이라며 “양국 간 통상마찰이 일어나서 중국이 한국산 부품 수입을 완전 중단한다면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25%에 이르는 우리의 피해가 엄청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다른 나라에서 한국인 입국 전면금지를 할 구실을 주게 된다는 점에서도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대원 경기대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어느 한 나라에 대해 비합리적인 국경봉쇄 조치를 취하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국가이미지를 훼손시키는 조치다. 경제 뿐 아니라 문화, 개인차원의 교역에도 영향을 준다”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자산을 날리는 것이고 다시 회복하는 것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수정 정건희 이택현 김성훈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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