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탄핵 막으려면.." 민주당 5인 마포서 비례당 결의

임장혁 2020. 2. 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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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윤호중·홍영표·전해철 등
코로나 와중에 실세들 마포 회동
위성정당 또는 외부 연대 검토
"비례당은 가짜 정당"이라던 여당
총선 불리해지자 불가론 뒤집어
윤호중 "힘 모을 세력 없겠나"
이인영 "정의당 함께 땐 X물 뒹굴어"
"애초 선거법 이렇게 하면 안 돼"
"그땐 공수처 걸려 어쩔 수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26일 저녁 민주당의 핵심 인사 5인은 서울 마포구 음식점에서 회동하고, 미래통합당의 비례 위성정당(미래한국당) 체제에 맞대응하는 위성정당을 하기로 합의했다. 방식은 미래한국당처럼 독자 창당하거나 외부 정당과 연대하는 두 가지가 논의됐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 않겠나”란 말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1200명을 넘어선 날이기도 한 이날 ‘마포 5인 회동’에는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전해철 당 대표 특보단장과 홍영표·김종민 의원 등이 참석했다. 당내 86그룹의 대표 격인 이 원내대표는 지난해 말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주도했다. 민주당 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는 윤 총장은 민주당의 공천 과정을 총괄하는 이해찬 대표의 최측근이다. 전 의원은 친문 성향의 의원 모임인 ‘부엉이모임’의 좌장 격이다. 홍 의원은 직전 원내대표로 지난해 4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전 의원과 홍 의원은 유력한 차기 당 대표 후보로 분류된다. 김 의원은 국회 정치개혁특위 간사로 선거법 개정 협상을 주도했다.

손혜원 무소속 의원과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 최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비례민주당’ 논의는 그간 당 일각에서 불가피론이 나오긴 왔지만 당 지도부의 추진 의사가 확인된 건 처음이다.

“비례당 좋은데 명분이 문제” “명분은 만들면 돼” “잘해보자”

비례정당 관련 기존 민주당 입장

중앙일보 취재팀은 이날 비슷한 시간대 같은 음식점 내 다른 방에 있었다. 큰 소리로 오가는 이들의 격론이 생생히 들렸다. 회동의 발제자는 윤 총장이었다. 윤 총장은 “미래통합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추진한 의미 자체를 완전히 처박아 버리고 있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저들이 저렇게 나오면 우리도 사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잘 찾아 보면 우리라고 왜 힘을 모을 세력이 없겠느냐”고 말했다. 윤 총장은 “이해찬 대표가 아니면 우리 다섯 사람이 해야 된다. 누가 있겠느냐”는 말도 했다. 이 대표는 그간 “우린 못 만든다”는 기조였다.

전해철 의원은 “명분이 문제”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우리가 왜 비례정당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세울 간판(명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다”면서도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고. 참 이거…”라고 했다. 그러자 김종민 의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래통합당이 지금 연동형 비례제의 의미를 완전히 깨부수고 있는데, 그렇게 땀 빼가면서 공들인 선거법의 취지 자체가 무색해진다는 점을 앞세우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곤 “명분이야 만들면 되지 않느냐”며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긴 하지만 비례정당을 만든다고 나갔을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아직 모른다.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들의 대화 중엔 목소리를 식별하기 어려운 한 참석자가 “(미래통합당이) 탄핵 이야기를 하니까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말도 들렸다.

’꼼수정당“→’뜻 모였다“, 입장 바꾼 민주당.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이들은 아예 비례민주당을 만드느냐, 외부 세력과 연대하느냐를 두고도 논의했다. “왜 힘을 모을 세력이 없겠느냐”는 윤 총장은 연대론에 무게를 두고 있었고, 김 의원은 “비례 정당을 만들자”며 독자 창당론을 주장했다. 연대론은 기성 정당이나 신생 정당 중 하나를 포섭해 정당투표를 몰아주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연대의 대상을 제한했다. 그는 “심상정(정의당 대표)은 안 된다”며 “정의당이나 민생당이랑 같이하는 순간, ×물에서 같이 뒹구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하기 어려운 한 참석자는 “비례 정당이 만들어져도 또 고민해야 할 게 있다”며 “우리가 먼저 비례 공천을 한 다음에 상황을 봐서 그쪽(비례 정당)으로 사람을 보내야 하는지 등도 문제”라고 했다. 미래통합당은 영입 인사 중 일부가 탈당해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 공모에 신청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소리도 나왔다. 전 의원이 “애초에 선거법 자체를 이렇게 했으면 안 됐다. (전체 비례대표 47석 중) 17석(병립형)과 30석(연동형)도 안 되는 거였고, (연동형) 비율을 더 낮췄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참석자는 “그 얘기까지 지금 하면 진짜 큰 싸움 난다. 그건 다 지나간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도 “그때 이렇게까지 될 줄 알았느냐”며 “그때는 공수처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격론을 마무리한 건 윤 총장이었다. 그는 “우리의 뜻이 확인됐으니 선거법 협상을 맡았던 김종민 의원이 어떤 방향이 돼야 할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까지 다 고민해 다음주에 발제해 달라”고 주문했다. 윤 총장은 “모두의 뜻이 모인 것으로 합의하고 한번 잘 해보자”고 했다.

◆가능한 시나리오들=민주당이 위성정당을 한다면 크게 봐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5인이 논의했듯, 우선 직접 창당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이 미래한국당을 만든 방식이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민주당이 전담한다. 비례대표 전체 47석 중 미래한국당이 절반 넘게 가져가는 걸 막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간 민주당이 “종이 정당, 창고 정당, 위성 정당. 그래서 가짜 정당”이라고 비난했던 통합당·미래한국당의 노정(路程)을 민주당도 되풀이해야 하는 게 부담이다. 의원 꿔주기부터 말이다.

둘째, 외부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자매정당화하는 방식도 있다. 민주당이 비례대표 선거에선 지지자들이 다른 정당에 투표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정의당·녹색당 등 기존 정당은 물론 민주당 지지자들이 창당한 정당도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 경우 고려사항이 많은데, 우선 민주당이 후보를 낼지다. 안 낸다면 사실상 비례정당이란 비판을 받을 테고, 낸다면 민주당도 당선자를 내야 하니 일정 정도 득표해야 한다. 대놓고 선거운동을 하기도 어려워 연대 세력으로 표의 이전(移轉)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몇 석 얻자고 명분을 잃는 격”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당선권에 어떤 비례대표 후보를 어느 정당으로 낼지도 쟁점일 수 있다. 외부 세력이 민주당의 뜻대로 움직일지도 미지수다.

고려 사항은 또 있는데, 범여(汎與)가 강행 처리한 개정 선거법에 따라 비례대표 공천 과정이 대단히 까다로워졌다는 점이다. 민주적 심사 절차와 민주적 투표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중앙선관위는 “회의록, 당헌·당규 등 민주적 절차에 따라 추천됐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등록을 수리하지 않는다”며 “이를 어길 시 해당 정당의 모든 후보자 등록을 무효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다음달 26~27일 후보 등록 때까지 창당→공천관리위 구성→후보 공모→투표의 전 과정을 마치기엔 촉박하다. 그래서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관리위원장인 우상호 의원은 “명분도 없고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임장혁·정진우·윤정민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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