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있는 아이는 안 받습니다

반기웅 기자 2020. 3. 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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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7살 태진이(가명)는 대전 유성구에 있는 유치원에 다닌다. 경기 양주에서 살다가 올해 초 대전으로 이사를 왔고, 지난 1월 13일 새 유치원에 등원했다. 태진이는 1형 당뇨를 앓고 있다. 흔히 소아당뇨라고 불리는 질환이다. 태어난 지 26개월 만에 발병했다. 혈당이 오르면 인슐린을 주입하고, 당이 떨어지면 주스를 먹어 혈당 수치를 조절한다. 다행히 태진이는 수시로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 태진이 몸에 부착한 센서가 24시간 자동으로 혈당을 체크하고 혈당 수치를 보호자에게 전송한다. 보호자는 원격 조종으로 인슐린 펌프에 신호를 보내 인슐린을 넣을 수 있다. 태진이 엄마 박정미씨(36·가명)는 유치원 첫 등원 전에 태진이 몸 상태를 유치원 측에 설명했다. 주사 놓을 일은 없지만 당이 떨어지면 연락할 테니 아이에게 주스를 먹여달라고 요청했다.

유명무실한 ‘UN아동권리협약’

유치원 등원 한 달 뒤 태진이는 퇴원 통보를 받았다. 유치원 원장은 ‘아이 몸 상태가 불안하고 신경이 쓰이니 규모가 작은 다른 유치원으로 가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 동안 태진이가 당뇨와 관련해 별도의 조치를 받은 건 두 차례 주스를 먹은 게 전부였다. 박씨는 유치원의 퇴소 조치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당국에 문제를 제기할 뜻을 밝혔다. 유치원 측은 뜻을 굽히지 않고 맞섰다. 하지만 다음날 상황이 바뀌었다. 대전교육청은 유치원의 퇴소 요구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뜻을 통보했고, 유치원 원장은 ‘퇴소 권유를 한 것이 아니었다’며 박씨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갈등을 빚은 유치원에 아이를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태진이는 유치원을 나왔다. 대전교육청은 2월 25일 박씨가 제기한 민원에 대해 “상담 과정에서 학부모 입장을 헤아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유치원 입학 거부와 중도 퇴소는 1형 당뇨 환아를 비롯해 건강질환이 있는 아이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유치원으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받더라도 보호자들은 대응하지 못한다. 문제가 커지면 소문이 나서 인근 유치원에서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속앓이를 하다가 조용히 유치원을 옮긴다. 박씨는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라는 단체가 도와줬기 때문에 공론화할 수 있었다”며 “혼자였다면 아이와 가족이 상처받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질병과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균등한 돌봄과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는 통하지 않는 조항이다.

국무조정실은 2017년부터 교육부·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어린이집, 학교 내 소아당뇨 어린이 보호대책’(이하 소아당뇨 어린이 보호대책)을 마련해 추진해왔다. 여기에는 건강질환(1형 당뇨·희귀난치성 질환)이 있더라도 일상적인 유치원 생활이 가능한 유아의 경우 보건 인력이 배치된 국공립유치원에 우선 입학할 수 있도록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권장하는 방안도 담았다. 2019년 유치원 모집 요강에서 건강질환 유아들은 처음으로 모집 우선순위 대상자에 포함됐다. 국무조정실은 ‘건강 취약계층 유아가 안정적인 유치원 생활과 세심한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정책 성과로 내세웠다.(2019년 9월 25일 보도자료)

아픈 아이를 둔 가정이 처한 현실은 다르다. 2019년 유치원 모집 요강에 건강 취약계층 유아를 우선순위 대상자로 포함한 유치원은 전국 31개에 불과하다. 세종 28곳, 충남 3곳에 몰려 있다. 해당 지역 거주 유아 외에는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올해는 어떨까. 2020 유치원 모집 요강에서 건강질환 유아를 우선순위 대상자로 올린 유치원은 공립과 사립을 포함해 전국 2800개에 달한다. 이들 유치원에서 정한 건강질환 유아의 우선순위는 법정 저소득층, 북한이탈주민 가정 자녀 등의 다음인 4순위다.

4순위라도 우선순위 대상자로 반영하는 유치원 수가 늘었으니 혜택이 고루 돌아가게 된 걸까. 전국 국공립유치원 가운데 보건 인력은 50명이 채 안 된다. 원아 200명 이상 전국의 대형 공립유치원 40곳 가운데 보건 인력이 없는 곳은 38곳에 달한다. 공립 단설 유치원 351곳 가운데 보건 인력이 있는 곳은 41곳에 불과하다.(교육부 단설 유치원 보건 인력 배치현황, 2017년 3월 1일 기준) 사립 유치원은 사실상 보건 인력이 전무한 상황이다. 유아교육법 제20조에는 ‘유치원에는 교원 외에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를 둘 수 있다’고 돼 있지만 강제력이 없다. 보건 인력 배치는 관할 교육청에서 관장하는데 당국은 비용·예산을 이유로 인력 증원을 하지 않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유치원 보건 인력을 의무적으로 배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상황도 마찬가지

어린이집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경남 김해에 사는 박수연씨(가명)는 6살 윤주(가명)를 집 근처 국공립어린이집에 입소시키려고 했다가 어린이집으로부터 입소 보류를 통보받았다. 윤주는 지난해 6월 1형 당뇨가 발병해 혈당 관리를 받는 아이다.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보육에 지장이 없다는 점을 인정받아 어린이집 우선 입소 점수에 가산점 100점을 받았다. 맞벌이에 두 자녀, 1형 당뇨 추가점수로 입소 순위 안에 들었지만 결국 어린이집 상담 과정에서 ‘돌보기 부담스러우니 근처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회장은 “건강 관련 케어가 필요한 아이들은 멀리 있는 어린이집이라도 오래 입소 대기해서 가려고 한다”며 “기껏 기다려 어렵게 들어가더라도 어린이집에서 거부하면 집에서 돌보거나 받아주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100명 이상 규모의 어린이집에는 간호사 혹은 간호조무사 등 보건 인력이 상주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보건 인력이 있는 어린이집은 찾기 어렵다. 보건 인력 상주 요건을 갖춘 대형 어린이집은 전국 3만9000여 개 어린이집 가운데 1900개에 불과하다. 전체 4.8% 수준이다. 전국 어린이집 보육 교직원 보건 인력 비율은 0.3% 정도다.(2018년 보건복지부 보육통계)

보건 인력이 배치된 어린이집에서도 건강관리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원장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보건 인력으로 등록해 형식적인 요건만 갖춘 시설이 많기 때문이다. 현원 100인 이상 어린이집 보건 인력 배치 인원 중 원장이 겸직하고 있는 비율은 전체 42%에 달한다.(2019년 말 기준, 보건복지부 통계)

지난해 12월 경기 용인의 어린이집에서는 원장이 1형 당뇨 원아에 대한 보육을 거부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해당 어린이집 원장은 간호조무사를 겸직했지만 원아의 건강관리와 관련한 일체 지원 행위를 거부했다. 원아의 식사도 가정에서 따로 하고 올 것을 요구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원장의 간호사(간호조무사 포함) 겸직 폐지는 국가재정 여건 등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원장이 겸직하는 경우 환아의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보육 현장에 협조 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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