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트랜스젠더는 상상 속 존재가 아니니까

김도연 기자 입력 2020.03.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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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 인터뷰] 트랜스젠더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변희수 전 하사는 남성으로 입대한 뒤 지난해 11월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그는 여군 복무를 희망했지만 군은 심신 장애로 군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며 강제 전역시켰다. 변희수 전 하사는 지난 1월 "육군에 돌아갈 그 날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며 강렬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군 인식과 제도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2월7일에는 숙명여대 신입생 트랜스젠더 A씨가 입학을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 A씨는 성별 정정 허가를 받고 숙대 법학부 2020년 신입생으로 합격했지만 학내 래디컬 페미니즘 세력의 '혐오 부흥회'를 홀로 감내하긴 어려웠다. 남성 혐오에서 비롯한 반지성주의가 소수자 배제와 차별로 나타난 사례였다.

두 이슈가 터질 때마다 박한희 변호사(32·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가 소환됐다. 로스쿨 재학 중이던 2014년 커밍아웃을 한 박 변호사는 "이제 성소수자 인권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2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이뤄졌다.

▲ 박한희 변호사 인터뷰는 지난 2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진행했다. 사진=사진글방 장은혜

- 최근 두 사건으로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제가 두 사건에 관여한 건 아니었다. 변 하사나 A씨를 직접 본 적 없기도 하고.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트랜스젠더가 적어서 그만큼 주목도가 높았던 것 같다. 트랜스젠더가 평범한 학생과 군인으로 우리 옆에 있었다는 사실에 많은 분들이 놀라신 것 같기도 하다."

- 예전에도 트랜스젠더 이슈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20년 여론은 그때와 다른 것 같다.

"이를테면 성별 정정 판결이 있을 때, 당사자 신상은 익명으로 보도되곤 했었다. 변희수 하사는 신원이 공개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사를 봐도 사건 당사자가 직접 얼굴과 신상을 드러내는 경우는 없었다. 이들이 특별한 걸 요구한 게 아니었다는 점에서 불합리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계속 군 복무하고 싶다'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어, 이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거 아니야? 지금은 좀 이상한 거 아니야'라고 되묻는다. 그들의 평범한 생각이 세상을 뒤집겠다는 전복적 상상은 아니지 않나?"

- 변 하사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변호인단으로 참여할 예정인가?

"법률대리인단과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따로 꾸려진다. 참여연대도 공대위에 들어와 있는 걸로 안다. 저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다. 2월27일 정식 출범식이 프레스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때쯤이면 구체적 계획이 나올 것이다. 법적 대응이 병행돼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군이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 국내 트랜스젠더 인구는 5~25만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적지 않다. 우리가 만나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외국 통계에 기초한 예상치다. 국내에 관련 통계가 없어 인구가 구체적으로 어떤지 잘 모른다. 다만 전체 가운데 0.3%가 트랜스젠더라면, 국내 5천만 명에 대입해 5~25만 명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나라마다 성소수자 인구에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비율 면에서 대동소이할 것이다. 우리가 트랜스젠더를 만나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공개하는 일이 어렵다는 데 있다. 커밍아웃 시 주변의 혐오 문제, 제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 등이다. 이로 인해 트랜스젠더라는 걸 드러내지 않고 자기가 태어난 성별대로 산다든지, 아니면 법적으로 성별 정정을 마쳐도 트랜지션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경우도 있다."

- A씨 사건 예상했었나?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터프(TERF, trans-exclusionary radical fesminist)가 숙대에 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A씨 본인은 당연히 배치표에 따라 지원한 것이겠지만 '왜 하필 숙대지' '숙대는 힘들 텐데' 이런 생각도 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반발할 줄은 몰랐다. 말은 입학 후에야 나올 줄 알았지 아예 등록 자체를 막는 쪽으로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017년 강남역 살인사건 후 10~20대 중심으로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우리 사회가 증오 범죄를 방조하고 있다' '안전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로 요약되는데 인식이 극단으로 치닫다 보니 '내가 안전하려면 우리끼리만 있어야 한다' '나를 위협하는 이질적 존재는 싹 다 내쫓아야 한다'로 귀결되는 상황이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균질성만 인정하겠다는 것인데 굉장히 잘못됐다. 사람은 균질할 수 없는 존재다. 여성끼리만 있어도 그 안에 폭력과 괴롭힘 문제는 발생한다."

▲ 박한희 변호사 인터뷰는 지난 2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진행했다. 사진=사진글방 장은혜

-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을 강간한다든지 특정 사례를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공포가 과장됐을지언정 공포라는 감정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두려움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공포를 느껴선 안 된다' 이렇게 말할 순 없다. 다만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 정당한 근거에서 나온 감정인지, 과장된 사례에서 비롯한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두려움은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기제였다. 트랜스젠더 여성에 의한 강간 사건같이 어떤 사건들은 실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트랜스젠더가 아닌 여성에 의한 여성 성폭력 사건도 있다. 일례를 전체 문제로 일반화하고 공포를 유발하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이 퀴어 축제에서 분장한 사진을 놓고 '이 사람들은 여성 쉼터를 부수려고 모였다'는 식으로 이미지를 왜곡하는 일도 있었는데 사실이 아닌 것이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 A씨 사례에 비춰보면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이 일로 진학을 포기하는 사례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퇴보' 아닌가?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여대를 졸업한 트랜스젠더도 있고 지금도 다니는 이들이 있다. 없는 존재처럼 무시돼 왔던 것이다. 이 사건이 터졌을 때 트위터에 자신이 숙대 FTM(Female-to-male, 트랜스젠더 남성)이라고 익명 고백한 이도 있었는데 '남자인데 숙대에 왜 있냐. 자퇴하라'는 비난을 받았다. 일본 오차노미즈여대와 몇몇 대학에선 법적 성별이 남성이어도 본인이 여성이라 생각하면 여대 입학을 허용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2015~2016년 초등생 트랜스젠더를 둔 학부모가 대학에 몇 년 후의 입학에 대해 문의했고 대학들이 조사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대들이 모여 심포지엄을 열고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공부도 같이 했다. 우리도 이번 사건을 대화와 공부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학교가 '성소수자 입학은 실패했다'고 마무리할 것이 아니다."

- 일본에도 반발이 없진 않았을 텐데?

"물론 그렇다. 다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관심층들을 설득하면서 전체 구성원들이 합의를 봤다. 들은 바로는 A씨를 공격했던 분들은 대학 내에서 300~400명 정도였고 대다수인 1만 명 학생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무관심층이라고 한다. 온라인이나 익명 대자보로 과대 대표된 것이다. 이 사안에 관심 없는 다수를 설득하고 대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성별 정정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리나라는 성별 정정하려면 외부성기를 포함한 성전환 수술을 해야 한다. 대법원이 요구하고 있다. 저는 수술하지 않았다.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하지 않아도 사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현행 기준으로 나는 성별 정정을 받을 수 없다. 당사자로서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그 시기는 고민하고 있다."

- 성별 정정 절차는 어떻게 되는가?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 정정을 신청한다.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 이후 대법 내부 가이드라인('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 따라 성별 정정이 이뤄지고 있다. 요건이 무척 까다롭다. 성인이어야 하고 혼인 상태가 아니어야 하며 미성년 자녀가 없어야 한다. 또 성전환 수술을 받아 생식 능력을 상실한 상태여야 한다. 당시 법원이 국회 권한을 침해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국회와 정부 모두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일본처럼 법을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 2006년 말 노회찬 의원 등이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폐기됐다. 그 뒤로는 법이 발의된 적 없다."

- 성전환 수술은 주로 해외에서 이뤄지나?

"국내에 수술하는 곳이 없다. 의대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성소수자 관련 커리큘럼이 없다. 사실 성기 재건 수술이라든지, 유방 절제술 등 기존 수술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다수의 의사들은 트랜스젠더를 낯설어하고 나아가 혐오하기까지 한다. 성소수자에 우호적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태국 등 해외로 많이 간다. 태국은 이 분야가 산업화했다. 문제는 수술을 받고 부작용이 생겼을 때 비용과 거리 등으로 다시 태국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 곧 총선이다. 21대 국회를 상대로 입법 투쟁 필요성이 있겠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트랜스해방전선'이 작년 한 해 입법청원을 받았다. 사실 성별 정정 문제만 해결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주민등록상 성별이 1, 2번으로 나뉘어 표기되는 문제, 건강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 등 과제가 산적하다. 외국에서는 트랜스젠더인권법이 제정되고 있는데 트랜스젠더 인권 전반을 살펴야 한다. 숙대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성별 정정이 이뤄졌다고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먼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다른 법안들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 박한희 변호사 인터뷰는 지난 2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진행했다. 사진=사진글방 장은혜

- 트랜스젠더로서 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면?

"하나의 사례로 예전에 관악구에 산 적이 있다. 처음 집 계약할 때는 트랜지션을 하기 전인 남자 모습이었다. 그 집에 살던 중 커밍아웃을 했다. 집주인이 어느 날 내게 누구시냐고 물어보더라. 나는 여동생이라고 했다. 집주인 생각에 이상한 거다. 계속 여동생만 보이니까. 집주인이 자꾸 물어서 '오빠는 유학 갔다'고 했다(웃음). 집주인이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걸 알고 집을 빼라고 하진 않을지, 동네에 이상하게 소문나진 않을지 걱정이 안 됐던 것은 아니다. 결국 스스로 생활 반경을 좁히게 된다."

- 로스쿨 재학 시절 커밍아웃했다. 당시 동료들은 박 변호사를 차별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내가 성소수자라고 대놓고 무시하는 동료들은 없었다. 동료 구성원 입장에서 내 성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변 하사도 부대원들이 다 지지했다. 그들에겐 나랑 함께 일한 성실한 동료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로스쿨 1년은 커밍아웃하지 않고 남자 모습으로 다녔다. 2학년 때 커밍아웃을 했다. 친한 로스쿨 남동생 둘에게 처음 사실을 알렸다. 그들은 흔쾌히 '몰라서 미안했다.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게 큰 힘이 됐다. 믿었던 동생들인데 걔네들이 부정적이면 로스쿨을 자퇴할 생각도 했었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더 다닐 이유가 있을까."

- 박 변호사는 변호사이고 대중에 알려진 인사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의 어려움이 다른 트랜스젠더보다 덜하지 않을까?

"내 일 자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직업이다. 변호사 이전 일반 회사를 다녔을 때 보호 장치가 없다고 느꼈다. 일이 내게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사실이 알려지면 바로 쫓겨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컸다. 변호사는 성소수자 관련 일을 하면서도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직업이었다. 굉장히 자본주의적이고 신자유적이지만 성소수자들이 일단 성공한 뒤 관련 단체를 지원하겠다고 꿈을 꾸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가 나를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회사 서류 지원조차 어려워한다. 서류에서 바로 성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진과 성별이 다르거니와 혹 서류가 통과돼도 면접에서 트랜스젠더라 알려지면 탈락을 면치 못한다. 이 때문에 육체노동을 많이 한다. 상대적으로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으니까. 트랜스젠더 남성의 경우 배달이나 공사일, 트랜스젠더 여성은 이나 음식 공장 등에서 일한다. 신분증이 없어도 되는 일 대부분은 4대 보험 사각지대에 있다."

- 언제 가장 행복한가? 박한희의 행복을 들려 달라.

"고양이를 배에 올려놓고 놀 때다. 내 정체성이 뭔지 상관없을 때 아닌가.(웃음) 그동안 사람과 선을 긋는 게 가장 힘들었다. 감춘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로스쿨 다닐 때 친구들이 '오빠는 여자친구 안 만나?'라고 물으면 '옛날에 사귀었는데 안 좋게 헤어져서 더 만날 생각 없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죄책감이 생겼다. 동료들은 나를 생각해 말하는 건데 나는 거짓말할 수밖에 없었으니. 오픈한 뒤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다. 졸업하면서 친구들을 끊었는데 트랜스젠더들이 대체로 그렇다. 언젠가의 성별 정정을 위한 '신분 세탁'이랄까. 2017년 한 매체와 인터뷰가 나가고 친구들이 기사 보고 연락이 왔다. 그들을 다시 만났는데 너무 편했다. 내 바뀐 모습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평범하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스스로 벽을 치고 끊어야 했던 시간이 힘들었다."

- 아직 벽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분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지금은 약간 책임감을 느끼면서 걱정하기도 한다. '박한희는 변호사이고 안정적이니까 커밍아웃한 것이지 그렇지 못한 나는 저렇게 살 수 없을 거야'라고 단념할까봐 우려할 때가 있다. 또 내가 과잉 대표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계속 이야기한다면, 그래서 사람들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쉽게 자신을 오픈하지 못해 고통받는 이들이 다소간 용기를 내지 않을까. 자신의 존재를 주변에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트랜스젠더가 먼 상상 속 존재는 아니니까."

인터뷰는 본지 김도연 기자가 참여연대의 월간 매거진 '참여사회' 인터뷰어로 참여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참여사회 2020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사진은사진글방 장은혜님이 촬영했습니다. 인터뷰는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인용 시 '참여사회' 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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