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전담 재판부 실무 강의 맡은 판사 '성인지 감수성' 논란
[경향신문] ㆍ고 구하라씨 명시적 동의 없었지만 ‘불법촬영’ 무죄로 판단
사법연수원이 오는 6일 성폭력범죄 전담재판부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원격 법관 연수의 강의자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오덕식 부장판사를 선정했다. 법관 연수는 판사들에게 심리 방법 등을 알려주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오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 관련 법령 해석과 부수처분’ 강의를 맡았다. 신상정보 등록, 공개·고지명령, 수강·이수명령 등 피고인에게 부과되는 각종 부수처분과 관련해 법령과 실무상 유의사항을 설명하는 ‘기술적인’ 내용의 강의라는 게 사법연수원 설명이다.
문제는 오 부장판사가 내린 판결이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이다. 오 부장판사는 가수 고 구하라씨를 불법촬영하고 폭행·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최종범씨의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불법촬영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구씨가 촬영에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구씨 의사에 반해 촬영되지는 않았다고 본 것이다. 불법촬영이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구씨가 목숨을 끊으면서 판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성폭력 사건을 심리하는 판사가 성인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지는 가해자의 유무죄 판단, 재판 절차에서의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방지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등에선 성폭력 사건을 주제로 한 법관 연수는 전문성을 가진 시민단체와 협력해 진행하기도 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은 ‘법관은 시대의 기후를 읽어야 된다’고 말했는데, 한국 법원은 시대의 기후를 잘못 읽고 있다”며 “단지 하나의 판결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없다는 것을 넘어 법관 전체의 성인지 감수성 수준이 어떻게 정형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고, 비판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 측은 “실무적 대표성이 있는 서울중앙지법 성범죄 전담재판부 단독 부장 직책자를 강사로 초빙해왔다”며 “다른 전·현임 직책자들이 강의를 고사한 가운데 오 부장판사를 어렵게 강사로 초빙했다”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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