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통령 전용기로 귀환하고.. 농부가 발견해 돌아오고.. '어보의 귀향'

강구열 입력 2020.03.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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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문화유산 극적 환수 / 조선·대한제국, 어보·국새 412점 제작 / 가치·상징하는 바 커 엄격하게 관리 / 재난·전쟁·불법행위 등으로 유실돼 / 조창수 선생, 美서 문화재 찾기 헌신 / 직접 구입해 고종어보 등 93점 기증
2017년 7월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환수된 문정왕후 어보. 세계일보 자료사진
2017년 7월 2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돼 한동안 화제가 됐다. 취임 후 첫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이 뒤따르던 공무원 2명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허리를 깊숙이 숙여 예의를 표한 것. 문 대통령의 정중한 인사를 받은 것은 공무원들이 들고 나온 가방 속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였다. 6·25전쟁 당시 미군이 불법 반출해 간 것을 돌려받아 대통령 전용기에 싣고 이날 귀국한 것이다. 어보 2점을 가져오는 호송관 역할을 했던 국립고궁박물관의 서준 학예연구사는 “대통령이 먼저 나갔는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90도에 가까운 인사를 하는데 깜짝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장면은 왕실의 권위, 조선의 국권을 상징했던 어보(왕·왕비 등의 덕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의례용 도장)와 국새(공문서에 사용된 실무용 도장)의 의미, 그것의 불법 반출과 극적인 환수 등을 함축한다. 지난달 19일 ‘대군주보’ 국새, ‘효종어보’가 어렵게 환수돼 공개됨으로써 이 같은 사실을 되새겨보게 된다.
2017년 7월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전용기에 실려온 문정왕후 어보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안 검은 상자 속에 어보가 보관돼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훔치고, 불지르고… 어보·국새의 수난사

조선, 대한제국은 412점의 어보와 국새를 제작했고, 그것의 가치와 상징하는 바가 컸던 만큼 엄격하게 관리했다. 그러나 긴 세월을 겪으며 뜻밖의 재난이나 전쟁, 불법 행위 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명종실록’에는 1553년 경복궁에 큰 화재가 나 강녕전과 사정전 등이 불타고, 궁궐에서 보관하던 진귀한 물건과 서적 및 어보가 유실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1590년에는 어보를 보관하던 종묘에 도난, 방화사건이 있었다. 어보 등을 훔친 뒤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도적들이 일부러 불을 지른 사건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거치며 큰 피해를 보았음은 물론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의외로 어보 유출이 적었다. 오히려 종묘의 각 실마다 보관되어 있는 어보의 현황을 파악해 관리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국새는 일본으로 가져가 궁내청에서 보관했고, 미군정청이 광복 1주년을 기념해 ‘제고지보’ ‘칙명지보’ ‘대원수보’를 1946년 반환하고서야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제의 이런 태도는 어보, 국새의 용도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의례용인 어보를 섣불리 건드렸다간 민족 감정을 자극할 수 있음을 우려했지만 실무용인 국새는 국권을 빼앗은 만큼 빼돌린 것으로 보인다.

어보, 국새의 해외 반출은 6·25전쟁 동안 미군에 의해 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공개된 대군주보, 효종어보뿐만 아니라 ‘덕종어보’, ‘장렬왕후어보’ 등 환수된 것 대부분이 미국에서 발견됐다.
고종어보.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종어보, 해외문화재 환수의 모범사례

제자리를 벗어난 문화재의 귀향은 극적인 스토리와 함께할 때가 많다. 어보, 국새의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어보, 국새는 성격상 왕실 유물에 특화된 국립고궁박물관이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도 7점이 있다. 이 중 고종, 순종, 명성황후의 어보는 고 조창수 선생이 기증한 것으로, 해외 우리문화재 환수의 모범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조창수 선생은 일제강점기 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스미스소니언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며 이 박물관이 소장한 한국문화재를 찾아내고 정리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조 선생이 어보를 포함한 한국 관련 유물이 경매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87년. 소장자는 6·25전쟁 참전 미국인으로, 1951년 서울의 시장에서 25달러를 주고 유물을 샀다고 했다. 어보 등 해당 유물의 의미, 한국에 돌아가야 할 이유 등을 설명하며 기증을 설득했으나 실패하자 직접 유물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교포들과 함께 하는 음악회와 자선의 밤 등 모금 행사를 열었고,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고종 등의 어보를 포함한 93점을 구매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일했던 고 조창수 선생은 미국 경매에 나온 고종어보 등 한국 유물을 구매해 1987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사실 어보와 국새는 외부 유출, 거래 등이 불법이기 때문에 수사·소송 등을 통한 강제 환수가 가능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이런 논리가 자리 잡기 전이라 구매 후 기증이라는 형태로 환수됐다.

문정왕후의 어보는 모두 4점이 제작되었는데 이 중엔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환수된 것 말고도 조선시대에 병자호란(1636∼1637년) 후 밭에서 뒹굴다 농부가 발견해 궁궐로 돌아온 것도 있어 흥미롭다. 청나라의 침입에 강화도로 조정이 피란 갈 당시 어보도 함께 옮겨졌다. 전쟁이 끝나고 조정이 한양으로 돌아올 때 어보도 다시 옮겨 왔으나 극심한 혼란의 뒤끝인지라 일부가 유실되었던 모양이다. ‘인조실록’ 1638년 3월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강화의 백성이 성 안에서 밭을 갈다가 금인(金印)을 얻어 바쳤는데, 바로 문정왕후의 어보였다. 중종(문정왕후의 남편)의 (종묘) 재실(齋室)에 간직해 두고, 이어 미포(米布)로 상을 주라고 명하였다.”

국립고궁박물관이 발간한 ‘조선왕실과 대한제국 황실 어보’는 “2017년 환수된 문정왕후 어보는 1547년 ‘성렬대왕대비’라는 존호를 올리면서 제작한 것”이라며 “인조실록에 언급된 것은 같은 해 제작한 ‘인명’(仁明) 존호보로 보인다. 1842년 편찬된 ‘종묘의궤’에 ‘양 모퉁이가 결실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땅에 묻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소개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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