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속 모여앉은 의심환자들, 펜 하나 돌려가며 써.. 옆사람이 호흡곤란 호소하자 "어떡해" 뛰쳐나갔다

사회부 표태준 기자 2020. 3. 5.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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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코로나 확산] 선별진료소 체험해보니
사회부 표태준 기자

"이분이 호흡곤란 증세가 있어 먼저 검진해야 할 것 같아요."

고요하던 20평 천막 내부가 보건소 직원의 이 한마디에 발칵 뒤집혔다. 호흡곤란을 호소한 사람 뒤편에 있던 여성은 비명을 지르며 천막 밖으로 뛰쳐나갔다. 남아 있던 30여 명 사이에서도 "어쩌면 좋아" "큰일 났네" 등 탄식이 각자 얼굴을 가린 마스크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 천막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검진 대상자들이 진료받기 위해 기다리는 '강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 대기실'. 상황이 벌어진 것은 2일 오후 3시였다.

이날 하루 동안 검진 대상 약 200명이 이 천막을 거쳐 갔다. 대부분 확진자와 접촉했거나, 중국 방문 이력이 있거나, 기침·가래·콧물 등 증상이 있는 '의심 환자'다.

검사받으러 온 사람은 천막 입구에서 문진표부터 작성해야 한다. 방문자들은 책상 위에 묶여 있는 플라스틱 볼펜을 이용해 문진표에 신상 정보와 증상, 해외 방문 이력 등을 적었다. 볼펜 4자루를 이날 약 200명이 돌려썼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종이나 플라스틱에서 최소 2시간 이상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원칙적으로는 의료진이 매번 볼펜을 알코올 솜으로 소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진표 작성 뒤에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사람들은 전기 난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고, 기침하거나 마스크를 내리고 코를 푸는 이들도 있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 예방 수칙은 '타인과 2m 이상 거리를 유지하라'는 것이지만, 의심 환자 대기소에서 안전 거리 개념은 없었다.

지난 2일 오후 3시쯤 서울 강남구 보건소가 마련한 천막 대기실에서 우한 코로나 감염증 검진을 받으러 온 시민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표태준 기자

이날 방문자들은 평균 4시간 정도씩 기다렸다. 회사에 확진자가 발생해 동료와 함께 진단받으러 온 A씨는 "잠시 뒤 검진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도 하나도 개운하지 않을 것 같다"며 "같이 기다리던 사람 중 확진자가 있으면 여기서 감염될 위험이 더 커 보인다"고 했다. 기모란 위원장도 "의심 환자들을 한곳에 장시간 모아두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천막에 들어왔다가 의자가 부족한 걸 보고선 돌아나가 자신의 승용차에서 기다렸다.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자기 순번을 놓치고 뒤늦게 나타나자, 천막 안 사람들이 "우린 바보라서 벌벌 떨며 밖에서 기다리느냐"며 항의했다. 이날 기다림을 견디다 못해 돌아간 사람은 10명이 넘었다.

검진은 천막에서 3~4m 떨어진 '음압 진료실'에서 진행됐다. 의사가 기다란 면봉으로 코와 입안의 검체를 채취하고 나면, 의심 환자는 별도 공간에 들어가 가래를 플라스틱 통에 뱉어서 제출하면 끝난다. 검진과 소독 등을 포함해 1인당 약 5분씩 걸렸다.

대기 공간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검진 시간 예약제'를 통해 대기 중 환자의 건강이 악화되거나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춰야 한다는 전문가 권고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고쳐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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