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마스크 퍼준 뒤 혹독한 대가..韓·日·伊·이란의 후회

임선영 입력 2020. 3. 5. 05:01 수정 2020. 3. 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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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란·이탈리아·일본 4개국의 공통점이 있다.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 중국에 수십만장에서 수백만장까지 마스크를 보낸 점이다. 그랬던 이들 4개국은 이제 혹독한 마스크 부족 대란을 겪고 있다. 자국의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하면서다.

이란인들이 중국에 마스크 300만장을 지원한 정부를 성토하며 SNS에 올린 사진. 쿠르드족이라고 소개된 이 노인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쌀포대의 일부를 잘라내 끈으로 연결해 썼다. [트위터 캡처]


한국시간 4일 기준 신종 코로나 확진자 수는 한국 5621명, 이란 2922명, 이탈리아 2502명, 일본 1000명(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706명)이다. 확진자 수가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 1~4위를 차지한다.

한국 정부와 지자체 등이 지난달 잇따라 중국에 보낸 마스크, 라텍스 장갑, 손 세정제 등의 구호물품이 담긴 상자들. [주중 한국대사관 웨이보 캡처]


이들 국가 가운데 한국·이란·일본은 사태 초기 신종 코로나 진원지인 중국발 입국을 막지 않은 공통점도 있다.


이란, “中에 보내 우리 쓸 마스크 없다” SNS 성토

지난 29일(현지시간) 테헤란타임스에 따르면 이란이 지금까지 중국에 보낸 마스크는 300만개다. 이란은 무역 등을 이유로 중국과 교류가 활발하다. 이란의 첫 신종 코로나 사망자 역시 정기적으로 중국을 다녀온 상인이었다.

마스크를 쓴 이란인들이 지난 2일 테헤란의 거리를 걷고 있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폭증한 이란에선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진다. [AP=연합뉴스]


이란 내 신종 코로나 사망자는 지금까지 92명이다. 감염에 대한 공포로 마스크 수요가 폭증하자 중국에 대량의 마스크를 보낸 이란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정부가 중국에 마스크를 보내서 이제 마스크가 필요한 이란 사람들은 약국·가게에서 마스크를 찾을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의 글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또 “자리프(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는 중국에 300만개의 마스크를 기증했고, 반면 우리는 마스크가 부족하다. 이 쿠르드족(이란·이라크·터키 등에 흩어져 있는 유랑 민족)을 봐라. 그는 쌀포대의 한 귀퉁이를 잘라 마스크를 만들었다. 이란 정권과 지지자들은 부끄러워하라”는 글이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이 사진 속에서 한 노인은 쌀포대의 일부를 잘라 끈으로 연결해 쓰고 있다.

마스크를 쓴 이란인들이 약국에서 마스크를 구입하려고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의 한 교민은 4일 중앙일보에 “지난달 19일 이란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 이후 환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돈이 있어도 마스크를 구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전했다.


이탈리아, 의료시설 마스크 곧 바닥나 비상
이탈리아 바티칸 교황청은 지난달 4일 중국에 마스크 70만개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의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지금까지 2502명, 사망자는 79명이다.

이탈리아 바티칸 교황청이 지난달 중국에 지원한 마스크. [바티칸뉴스 트위터 캡처]


이탈리아와 이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추진해온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참여국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코도뇨의 한 약국 문에 ‘마스크 품절’이라고 적혀 있다.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감염자가 폭증하면서 로마·밀라노·베네치아 등 주요 도시의 약국·마트 등에선 마스크를 찾기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병원 등 의료시설의 마스크 재고가 동이 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감기 증상으로 치료를 받은 로마 제멜리 병원의 관계자들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마스크 재고가 곧 바닥날 텐데 마스크를 어디서 구해야 할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보건당국 관계자는 3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러스 환자와 접촉하는 의료진이 써야 할 마스크가 최소 1000만개는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지난달 25일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마스크로 폭리를 취하는 이들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27일 가디언에 따르면 마스크 5장을 5000유로(약 663만 원)에 판매한 이들이 이탈리아 당국에 적발됐다. 이들은 평범한 마스크를 두고 “신종 코로나를 완벽하게 예방한다”고 허위 광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마스크 줄 서다 감염될라” 우려
우리 외교부는 지난 1월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중국 우한 지역 내 긴급 의료물품 조달의 시급성과 특수성을 감안해 민관이 협력해 마스크 200만장, 의료용 마스크 100만장과 방호복·보호경 각 10만개 등 의료 물품을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목표 수량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중국에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등이 별도로 기부한 수량을 감안하면 실제 이보다 더 많은 마스크가 중국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다. [뉴스1]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 첫 확진자가 나온 건 지난 1월 20일이다. 국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 속에 중국에 대량의 마스크를 보낸다는 점에서 당시 우려 섞인 비판이 일었다. 확진자가 증가할 경우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금까지 국내 확진자는 5621명으로 중국 다음으로 많고, 사망자는 34명에 이른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 마스크 품절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마스크 부족 현상이 극에 달하자 급기야 정부는 국민에게 보급한다며 초·중·고교에 비축된 마스크를 수거해 가기도 했다. 또 우체국· 농협 등을 통해 공적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몇 시간 줄을 서고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마스크 사러 왔다가 오히려 신종 코로나에 감염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일 대구에서 확진자가 자가격리 지침을 어기고 마스크 구매 행렬에 끼어 있다가 발각돼 보건당국에 넘겨진 일도 있었다.


일본, ‘마스크 새치기’ 하다 몸싸움도
한국보다 먼저 발 빠르게 중국에 마스크를 보냈던 일본은 지금 ‘마스크 이중고’를 겪고 있다. 신종 코로나 확산에, 봄철 화분증(꽃가루 알레르기) 유행기까지 겹치면서다.

지난 2일 일본 도쿄의 시나가와 역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위생재료공업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일본 내 마스크 수요는 약 60억장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2~5월 화분증 기간에 대비해 10억장 이상의 재고를 확보했지만, 신종 코로나 발병 후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마스크가 ‘귀하신 몸’이 되자 마스크를 놓고 다툼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일본 후지뉴스네트워크(FNN)에 따르면 일본 요코하마시 한 약국 앞에선 두 남성이 격한 몸싸움을 벌였다.

당시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의 문이 열리기 전부터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새치기를 하려고 하면서 이를 목격한 시민과 새치기를 시도한 시민 간에 시비가 붙은 것이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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