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공중부양 의원의 후회 " 미생물도, 진보·보수도 혼자는 못 살더라"

사천(경남)/곽창렬 기자 입력 2020.03.0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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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곽창렬기자의 열창] 농민으로 돌아간 강기갑 前의원
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제 공중 부양을 하지 않는다. 땅에 붙어 산다. 사진은 경남 사천시 사천읍에 있는 매실밭에서 그가 돼지를 돌보는 모습. 매실 농사를 하며 소·돼지·오리·칠면조 등 가축 30여 마리도 키운다. 파란색 옷은 과거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이 돌았을 때 방역하던 사람들이 입었던 것이다. 그는 아침 7시부터 하루 일을 시작한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한반도 남쪽 끝자락, 경상남도 사천시 산골에서 강기갑(69) 전 통합진보당 대표를 만났다. 한때 '공중 부양(空中浮揚)'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키고, 그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정치인이다. 그는 농민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덥수룩하게 수염을 길렀고 "다시 정치에 나설 일은 없다"고 단정 짓듯 말했다. 옆에 있던 아내 박영옥(55)씨는 "강기갑씨는 이제 보수당도 진보당도 아닌 성당(聖堂) 소속"이라고 했다.

농부 강기갑은 약 7000평(2만3000㎡) 사천 땅에서 매실나무 1000여 주를 키운다. 수확한 매실을 가공해 매실청이나 고추장을 생산한다. 소·돼지·염소도 키운다. 밭에 뿌릴 퇴비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 가운데 가장 힘을 쏟는 것은 미생물(微生物) 농사. 농사를 흙이나 동식물에 서식하는 미생물을 활용해서 짓는다. 그는 "집에서 장독을 청소하다가 10년 전에 담근 감·매실·식초에서 특별한 미생물을 발견하고 알아봤다"며 "미생물을 연구해 보니 진보도 보수가 있어야 제대로 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강기갑을 만났다.

강기갑 의원이 공중 부양하는 모습. 농성 중이던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을 강제 해산하려 한 데 대한 항의였다. / 오종찬 기자

미생물 연구가 바꾼 인생관

2009년 1월 미디어법 개정안 등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 그는 국회 사무총장실에 쳐들어갔다. 원탁 위에서 발을 구르며 뛰어올랐다. 그 순간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고스란히 TV로 전국에 방영됐다. 적잖은 국민에게 '진보=폭력'이라는 공식이 각인된 순간이었다.

―'공중 부양' 당시를 떠올린다면.

"당시 나는 '내 목이 열 개 날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 무조건 한나라당 이 양반들은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고 내 모든 것을 던졌다. 공중 부양이나 책상 두드리고 엎고 고함친 것은 거기에서 나왔다. 17·18대 국회 폭력은 강기갑이가 원조였던 거 같다. 국회에서 벌어진 폭력은 국민에게 엄청난 혐오감을 줬다. 거기에 2등 가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로 가장 큰 책임자가 나였다. 지혜롭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거 같은가.

"당연히 폭력은 안 된다. 상대가 내 주장을 안 받아들이면, 합리적으로 도전하고, 재도전해야 한다. 상대편이 안 받아들이고자 하는 이유를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그래도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아, 이 사람들도 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왜 이렇게 많이 바뀌었나.

"미생물을 연구하면서 정말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연구하다 보니 미생물도 절대로 한쪽만 있어서는 안 되더라. 완전히 다른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진화를 못 한다. 몸 안에서 나쁜 미생물만 싹 제거하면, 좋은 미생물이 진화를 못 하고 약해지게 되고 숙주(宿主·기생할 대상으로 삼는 동식물)를 지킬 수가 없다. 보수와 진보도 마찬가지다. 진보가 좋고 보수가 나쁘다고 여기는데, 결코 보수가 나쁜 게 아니다. 우리 마음 안에도 보수와 진보가 같이 있다. 내가 내 기득권을 지니고 가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진보를 위해 보수를 다 버릴 수는 없다. 오늘 조선일보와 하는 인터뷰도 과거 같으면 불가능했겠지만,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하는 거다. 이 인터뷰로 불편해하는 내 지인이 꽤 있을 거다."

―정치권에 있을 때 '대기업이 중소기업 억압한다'며 먹이사슬이 싫다고 했다. 그 생각도 변했나.

"결론적으로는 그렇다. 자본주의에 따라 대기업이 중소기업 잡아먹고, 중소기업이 가내(家內) 기업 잡아먹는 정글의 법칙을 정말 싫어했다. 그런데 미생물 공부하다 보니, 해충이나 바이러스가 생기더라도 먹이사슬 구조로 딱 균형을 잡더라. 사람도 똑같은 논리다. 물론 큰 게 작은 것 잡아먹는 것은 좋지 않은 현상이다. 하지만 지구 생태계에서만 보면, 다양하게 사슬이 뱅글뱅글 돌아가면서 균형을 맞춰 살아가게 돼 있다. 그러니 상생(相生)해야 한다."

농촌 총각 장가보내다 수염 길러

강씨는 1951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부터 고향에서 매실과 감나무를 키우고, 젖소의 젖을 짜는 농민으로 살았다. 1976년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며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가 1982년 사천 출신 가톨릭 신부의 영향으로 인천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 1987년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농민운동을 하던 중, 결혼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전국 농촌 총각들을 결혼시키는 운동을 했다. 마흔 살 노총각이던 그도 이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슬하에 3남 1녀가 있다.

―농촌 총각 문제가 심각했나.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는 전국에 있는 농촌 총각들이 장가를 못 가서 자살을 많이 했다. 분신도 하고 그랬다."

―어쩌다가 위원회까지?

"1980년대 후반 전국농민회는 총각들을 시위에 투입했다. 가정이 있는 사람을 감옥에 가도록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때 데모하다 서울 종로경찰서로 잡혀갔는데, 유치장에서 함께 잡혀온 농촌 총각들과 결혼대책위원회를 만들자고 결의했다. 나보고 위원장을 하라고 해서 맡았다. 그날 결의한 게 있다. 첫 쌍을 탄생시킬 때까지 위원장은 머리와 수염을 깎지 말자고. 그때 처음 수염을 길게 길렀다. 지금의 아내는 당시 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었다."

강기갑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본지와 인터뷰하는 모습. 그는 “정치권에 복귀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강씨는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전국농민회 부의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전국농민회는 정치 세력화를 결정한 뒤 농민 몫의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강씨를 추천했다. 하지만 아내는 "우리 제발 평범하게 살자"고 드러누우며 남편의 정치를 반대했다.

―남들은 금배지를 못 달아서 안달인데.

"국회 가기 직전 나와 아내는 젖소 120마리를 키우면서, 우유를 하루 1톤이나 생산해냈다. 근데 젖소 농사는 정말 힘들다. 하루라도 젖을 안 짜면 젖소가 유방염에 걸린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도 젖은 짜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 감나무도 5000평(약 1만6500㎡)이나 돌봐야 했다. 내가 집을 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사람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런데 결국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세 가지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곡식 농사, 아스팔트 농사, 정치 농사다. 곡식 농사는 실제 짓는 농사고, 아스팔트 농사는 농민을 위해 하는 시위다. 정치 농사는 실제 정치 영역에서 정책을 펼치는 거다. 나는 아스팔트 농사를 열심히 지었다.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면 농민을 위한 정치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당선되면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신감이 들었다. 막상 나에게 기회를 줬는데 거절하기 어렵더라. 또 서울에 계신 장인어른은 사위가 정치를 하는 데 대한 욕심 같은 게 있었다. 장인어른이 아내를 설득했고, 경남 지역 농민회 회장들도 돌아가면서 젖소 농장을 돌봐주겠다고도 했다."

―국회의원이면 연봉 1억원이 넘는데….

2012년 9월 강기갑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 낙향하겠다”고 말한 뒤 큰절을 하고 있다. / 조인원 기자

"국회에 들어가기 전에 빚을 내서 우유를 생산하는 기계를 들였다. 그런데 내가 국회로 가니 제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우유를 짤 사람이 없었다. 아내는 새벽 2~3시에 울면서 몇 차례 전화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에 2년 만에 젖소 120마리를 전부 처분했다. 매출이 1억원이던 젖소 농사를 못 하니 부채가 4억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의원 시절에는 월급과 수당 대부분이 당으로 들어갔다. 통장에 찍히는 돈이 한 달 180만원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렸다."

―아내 반대가 심했는데 재선까지 했다.

"재선에 나설 즈음, 아내가 '가정과 정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출마를 아예 안 하면 농민과 당에 대한 배신자가 된다'고 답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나는 정권 실세였던 이방호 의원에게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내가 이긴다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가서 당선되면 좋고 떨어지면 더 좋은 거 아니냐'고 설득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진행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자 경선 당시 온라인·현장 투표에서 대리 투표와 중복 투표 등 부정 의혹이 일었다. 당시 이석기·김재연 등 경기동부연합으로 대표되는 NL 계열 구(舊)당권파는 "어느 나라도 100% 완벽한 선거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노회찬·심상정·유시민 등 PD 계열 신(新)당권파는 '부정선거'라며 맞섰다. 신당권파에 속한 강씨는 비상대책위원장이 돼 수습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국민 대중의 기본적 상식 범주 안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검증받고 성장해 언젠가는 진보의 역사 속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자"는 말을 남기고 정치권을 떠났다.

―통합진보당을 이끌던 시절, 소위 NL 계열 사람들과 결별했다.

"지금 그 진영에서도 정치하는 옛 동지가 있어서 말하기 조심스럽다. 암묵적으로 묵인해 왔던 것 아니냐는 생각에 억울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하얀 종이에 파리 똥 조그맣게 묻으면 표가 나도, 똥차에 파리 똥 묻으면 표가 안 난다. 보수 정당 등과 비교하면 별거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진보는 하얀 종이와 같다. 우리는 그들과 달라야 한다. 억울하지만 인정하고, 사죄하고 다시 출발하자고 했다."

―그 사람들(구당권파)과 합칠 때 저럴 것이라고 예상 못 했나.

"나는 솔직히 잘 몰랐다. 나는 농업·농민을 위해 일했다. 나중에 보니 심각한 부분이 많이 있더라."

―만약 실체를 알았으면 합쳤을까.

"그런 부분은 지금까지도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다. 다 지나간 것이다."

"보수를 다 매도하면 대통령 못 돼"

―조국 사태는 어떻게 바라보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표현이 적절할 거 같다. 막상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그 유혹을 떨칠 수 있었다고는 말 못 하겠더라. 지도적 위치에 있고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일수록 청렴결백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못 한 점에 대해 문제없다고 말할 수 없다."

―정의당은 어정쩡한 대응을 해서 지지율을 많이 깎아 먹었다는 비판이 있다.

"내가 거기에는 답을 못 하겠다. 정치라는 것은 한두 가지 사안으로 자르듯이 할 수는 없는 거다. 큰 것을 위해 일정 정도 흠이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어쨌든 갈수록 진영 논리가 커지면서 나중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졌던 거 같다."

―만약 현재 정의당 대표라면 어떻게 했겠나. 장관 부적격이라고 판단했겠나.

"정말 고민이 많이 됐을 거 같다. 내가 아는 일부 민변 변호사가 올린 글을 보면 (조 전 장관이)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다. 물론 진보건 보수건 다른 사람도 (조 전 장관처럼) 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장관, 그것도 특히 법을 다루는 장관이다. 자기 삶이 명쾌하지 않으면, 자신 있게 뜻을 펼쳐나가기 어렵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반을 넘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평가하나.

"진정성을 가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이 하는 정치는 너무 대결 구도로 치닫게 했다. 옳고 그름에 너무 각을 세웠다. 반대하는 절반 정도의 국민을 두 번, 세 번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 행복, 평화 등의 목표에 대한 시비를 따지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정치가 돼 버린 거 같다. 안타깝다."

―정의당 지지율이 정체돼 있다. 노회찬·심상정 이후 새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내 잘못이 크다. 진보 진영 내 패권 다툼 때문에 국민이 상당히 실망했다.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폭력적 행태가 나왔다. 자기 눈에 들보를 넣어놓고, 남의 눈에 티가 들어 있다고 호통치고 고함친 내 모습을 되돌아보니 너무나 부끄럽고 비참했다. 그렇다 보니 새 인물 수혈이 안 됐다. 그 책임으로 나는 지금까지 당적을 안 갖고 있다."

―진보 진영이 회복하려면 어떤 반성을 해야 하나.

"진보의 생명력은 희생과 헌신이다. 자기 당에 손해가 가더라도 그것을 하는 정당에 표를 주게 돼 있다. 지금 당장은 손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좋은 의제를 잡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면 물꼬를 틀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보수는 어떤 반성을 해야 할까.

"합리적 보수가 돼야 한다. 당리당략에 따라 억지 부리거나 주장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자기 지역구 사정이나 농민·서민을 고려할 때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당이 시키면 다 줄을 선다. 보수일수록 그게 강하다. 공천 때문이다. 여기서 어느 정도 벗어나야 보수 정당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국민에게 인정받을 것이다."

―다음 대통령의 자격을 생각해본다면.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할수록 보수 성향이 강해진다. 한국은 보수 성향 국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보수의 이기적 성향을 다 매도하면 안 된다. 진보는 한발 앞서서 공생공존(共生共存)으로 견인하는 노력은 하되 '보수가 100% 틀렸다'고 무시하면서 단독으로 치고 나가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앞으로 대통령 되기 어렵지 않겠나."

그에게 정치판에 복귀해 뜻을 펼칠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그는 본인 자랑 같은 일화를 들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갈아타다 길을 잃었는데, 한 남성이 친절하게 길을 알려줬다. 얘기해보니 김일성·김정일 욕하는 완전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지지자였다. 그런데 그분은 나한테 '의원님, 다시 정치하시라'고 하더라.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만큼 열정도 없고, 체력도 떨어졌다. 더 잘할 자신도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젊고 패기 있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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