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중국 "한국인은 자유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입력 2020.03.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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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우한과 후베이 지역을 ‘묻은 채’ 코로나 출구 전략이 시작된 중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월2일 베이징 군사의학연구원을 찾아 바이러스 검출 연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베이징에 옥란화가 활짝 피었다. 베이징 언론매체들은 경칩 소식을 전하며 드디어 “봄이 왔다”고 했다. 옥란화 핀 베이징 공원 사진 속에는 쪽빛 바다처럼 파랗고 맑은 하늘이 걸려 있다. 때를 맞추기라도 한 듯, 경칩을 하루 앞둔 3월4일. 중국 최고 ‘정치권력’ 실세들이 모인 정치국상무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3월 초부터 중국은 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라는 중국 최대의 양대 정치 행사가 열리고 있어야 한다. 양회 대신 핵심 정치 실세들만 모인 이날 회의 주제는 ‘작금의 전염병 방역과 사회경제 운영 안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회의를 주재한 시진핑 주석은 다음과 같이 ‘운을 떼며’ 회의를 시작했다. “전국 각지 모든 사람의 노력으로 현재 전염병 방역 상황이 지속적으로 나아지고 경제생활 질서도 가파르게 회복되고 있다. 계속적인 노력을 통해 경제사회 질서를 조속히 정상적인 궤도로 올려놓고 전면적인 소강사회 건설 승리와 빈곤 탈출 목표 실현을 위해….”

새로운 인터넷 관련 시행령

이날 회의에선 베이징에 핀 옥란화 소식과 함께 조만간 ‘코로나19 전쟁 종식’이 선언될 것이라는 중국 정부의 사전 대외 메시지를 내보였다. 베이징 각 언론매체도 곳곳에서 조업을 재개하기 시작한 베이징 소재 기업들 소식을 시시각각으로 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주요 외자기업과 식품·제약 회사 등 베이징 내 크고 작은 기업들이 몰려 있는 순이 지역에서는 3월1일까지 총 257개 회사가 다시 정상 출근을 시작했고, 식당 등 외식업체들도 영업을 재개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상흔을 지우기 위한 ‘탈코로나’ 전략이 시작됐다.

2003년 ‘사스 영웅’으로 불렸던, 중국의 대표적인 호흡기질병 권위자인 중난산 원사는 2월27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 내 수많은 온·오프라인 언론매체는 ‘카더라’식 보도를 일제히 내보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에서 독감으로 죽은 사람만 2천 명이 넘는다며, 이 독감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연관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도 3월2일 칭화대 의학원 등을 방문한 자리에서 과학자들과 연구원들을 격려하며 “코로나19의 근원지를 연구하라”는 주문을 했다. 시 주석의 ‘특별 주문’은 이미 ‘발원지가 중국이 아니다’라는 잠정적인 내부 결론을 내린 듯한 인상을 심어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리원량 의사의 죽음을 계기로 촉발됐던 ‘언론자유 촉구’ 목소리는 당국의 통제로 다 ‘잘려나가고’ 그 자리에는 코로나19 전쟁을 승리로 이끈 시진핑 주석과 당 중앙, 중국 사회주의체제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찬양가’가 들어섰다. 3월1일부터는 ‘인터넷정보내용생태치리규정’(网络信息内容生态治理规定)이라는 새로운 인터넷 시행령이 반포됐다. 이 시행령 규정에 따르면 앞으로 인터넷에서 ‘국가 명예와 이익에 반하는’ 각종 내용을 퍼뜨리는 사람은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언론자유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바로 ‘봉쇄 조처’에 들어간 것이다. 2월22일 중국의 대표적인 관영매체들에 일제히 실렸던, 관방잡지 <반월담>(半月谈) 평론가 양진즈가 쓴 ‘진실을 말한다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라는 글도 게재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격 삭제된 바 있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 찬양하던 자들이여”

티베트에서 승려처럼 사는 중국인 한족 친구도 최근 자신의 위챗 타임라인에 이런 글을 올렸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 찬양하던 자들이여, 그 터진 입 이제 닥칠 때가 되지 않았나.” 그가 올린 글은 특정 국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읽어도 ‘한국’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관방 언론들도 이와 비슷한 요지로 대놓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와의 전투 중, 중국 정치체제와 제도의 우수성이 돋보였고 (방역에)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로스앤젤레스 인구의 3배이며 런던 면적의 약 4배에 이르는, 인구 1100만의 도시 우한을 전격 봉쇄한 것은 가장 대표적인 일이다.”(<중국경제망> 보도 내용 중) “한국에서 대통령은 고위험군 직업에 속한다. 한국은 종교의 자유,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 체제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린 신천지라는 종교를 봐라. 한국 사회의 각종 모순이 결집해 있다. 한국인들은 지금 자유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중국은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베껴 쓸 가치가 있는 답안지’가 많은 국가다.”(네티즌 ‘웨이스니’ 글 중) 중국 내 다른 매체들과 인터넷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쏟아져 나온다. 초기에 우한 상황을 은폐했던 당국의 거짓말과, 공식 발표 하루 전까지도 거대한 귀성객들이 밀집한 기차역 등에서 춘절 귀성 축하 연설을 했던 시진핑 주석의 무책임한 행보에 대한 책임 논란도 지금은 어용 찬가들에 묻힌 지 오래다. 우한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40일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시진핑 주석은 단 한 번도 우한과 후베이 지역을 방문하지 않았다. 아직 우한과 후베이 지역에서는 매일 확진자가 100명 넘고 사망자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는 이미 마스크를 벗었다.

우한 출신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전 후베이성 작가협회 주석을 지냈던 팡팡은 우한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폭발한 이후 매일 인터넷에 ‘우한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2월27일자 일기에서, 우한과 후베이 지역을 ‘묻은 채’ 코로나19 전쟁 승리를 선포할 기세인 중국 정부를 향해 결기가 느껴지는 ‘쓴소리’를 쏟아냈다.

여전히 문밖을 나갈 수 없는데

“우리는 아직 집 안에 갇혀 있고 문밖을 나갈 수조차 없다. 하지만 벌써 다른 사람들은 큰 소리로 찬가를 부르고 있으며, 심지어 승리의 책(중국 정부에서 발간 예정이라고 밝힌 <대국의 전염병 전쟁>) 표지도 이미 봤다. 오늘 유머글 하나를 봤다. 어떤 사람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가 ‘너’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너’는 여기서 말하는 ‘대가’일 뿐이다. (…) 이번 재난은 절대로 일부 관료를 면직하고 직위해제하는 일로 끝나서는 안 된다. 2천 명 이상 ‘타살된’ 망령들과 그 유가족들, 밤낮으로 사력을 다해 사람들을 구하고 있는 의료인들, 고통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900만의 우한 사람과,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떠도는 500만 유랑민은 오직 하나의 해명과 결과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단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먼저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그다음에는 (당국의) 해명을 기다리고 있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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