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복 소매엔 작은 구멍을"..현장 '꿀팁' 나누는 공보의들

김정연 2020. 3. 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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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호텔 컨벤션센터에서 2020년도 신규 의과 공중보건의사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현장 배치 대비 직무교육을 받으며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호복을 벗을 때를 위해 상의에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볼펜 등으로 뚫어두는 게 좋다. 손가락으로 뚫다간 방호복이 찢어진다.” “N95마스크 윗줄을 너무 낮게 하면 검체 채취 중 마스크가 내려가는 문제가 생긴다. 줄이 귀를 눌러 아프기도 하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공보의협의회)가 지난 5일 배포한 ‘레벨D 착탈의 및 검체채취 안내’ 중 일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과 싸우고 있는 일선의 의료진을 위해 현장 공중보건의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매뉴얼’이다.

'마스크 줄 위치 조정을 잘못 하면 마스크가 내려가 보호가 안되고, 귀를 눌러 통증이 심하다'는 내용은 '직접 해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렵다'는 평을 들은 부분이다. [자료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매뉴얼 제작을 주도한 김형갑 공보의협의회장은 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 지침이 있긴 하지만 각 지자체ㆍ진료소마다 상황이 많이 달라서 현장에서 응용하기엔 ‘디테일’이 부족했다”며 “협의회로 질문이 많이 왔고, 앞으로 역학조사관 업무 등이 시도로 이관되면 현장 혼란이 클 것 같아 공보의 사이에서 공유하던 정보를 모아 공개했다”고 밝혔다. 호흡기내과ㆍ감염내과 교수 등의 검수도 받았다.

1월 말부터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착용해온 공중보건의사들이 직접 시범을 보이며 만든 'Level D 착탈의 및 검체채취 안내' 자료 일부. 진료 후 방호복을 벗는 과정 중 '마스크‧고글 벗기' 설명. [자료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한 달 쌓은 노하우 모음
최종 완성된 안내서는 A4 36장 분량이다. 대구 수성구보건소 소속으로 지난 1월부터 선별진료소에서 근무중인 김 회장은 동료 공보의들과 함께 스스로 현장에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을 매뉴얼로 만들었다.

방호복 브랜드마다 목 부분이 가려지는 정도가 다른 점을 직접 보여주는 자료. [자료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매뉴얼은 검체 채취와 진료 과정에 필수인 레벨D 방호복을 입고 벗을 때 생기는 여러가지 상황에서의 대처법을 담았다. ‘후드 착용 이후 머리카락이 내려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날카롭거나 뾰족한 부분이 없는 헤어밴드의 사용은 고려할 만하다’‘외부 물질이 신발로 들어가지 않도록 처음에는 꽉 조여주고 두 번째는 리본매듭을 묶어 나중에 풀기 쉽도록 하라’ 등의 상세한 '팁(Tip)'도 있다.


없는 매뉴얼은 만들어 쓴다

'동선이 겹치지 않아야 한다'는 큰 지침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를 그리기 어려운 현장을 위해 동선 예시를 그려넣었다. [자료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이와 별도로 ‘선별진료소 운영 안내’, ’이동검체 채취’ 등 2개의 안내서도 집필을 완료하고 내용을 검수하고 있다.

‘이동검체 채취’는 정부 지침이 제대로 없어 현장 공보의들이 완전히 새로 만들었다. 안내서에는 ‘(최선) 4인 1조, (차선) 3인1조로 구성, 보조인력 1명(폐기물관리자1명) 포함 4인 1조로 구성해야 오염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다’는 식으로 다양한 현장 상황에 적용될 수 있게 했다. 김 회장은 “하루 7~10회 정도 출동을 하는 현장 의료진들의 경험을 토대로 오염에 노출될 수 있는 다양한 상황과 대비책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감염관리는 의사 외 직원들까지 챙겨야"

'이동검체 채취' 매뉴얼은 전무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현장에서 '비가 오면 오염 관리를 못한다'는 목소리를 모아 매뉴얼을 나름대로 만들었다. [자료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공보의협의회 매뉴얼의 1차적인 목적은 대구ㆍ경북 등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현장으로 긴급 투입되는 신규 임용 공중보건의들을 위해서다.

하지만 협의회 측은 전국 선별진료소에서 쓰일 수 있도록 매뉴얼을 공개했다. 김 회장은 “현장에서는 의사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의료진과 직원까지 같이 챙겨야 감염관리가 된다”며 “한 달째 일하면서 쌓인 노하우가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도 전달이 됐으면 했다”고 말했다.

신규 임용된 공보의들은 배치에 앞서 군사훈련 대신 현장 투입을 위한 직무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교육 기간 중 레벨D 방호복 등을 실제로 착용한 이들은 시범에 나선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 졸업 후 바로 공보의가 됐거나, 일반적인 병원 수련의 과정을 거친 공보의들 상당수가 방호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


"처음 방호복 입고 당황…매뉴얼이 알려줬다"

채취 중과 탈의 때 오염 방지를 위해 '검지손가락 구멍을 펜으로 뚫어 끼운다'는 팁을 설명한 자료. 손가락으로 뚫을 경우 방호복이 찢어지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자료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매뉴얼에 대한 일선 의료진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충북의 한 선별진료소에서 근무 중인 김모(32)씨는 “처음 방호복을 입었을 때 소매가 자꾸 위로 딸려 올라오길래 팔 토시나 긴 장갑을 써야 하나 고민했는데, 매뉴얼을 본 뒤 엄지손가락 구멍을 뚫어놓으니 해결됐다”며 “해본 사람이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TMI(Too much information‧과도하게 많은 정보)'가 실전에서는 중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2015년 메르스 때 음압병동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적이 있는 신규 공중보건의 A(31)씨도 “‘고글을 벗을 때 눈을 감고 벗는다’는 사소한 ‘팁’, 검체채취할 때 검사 대상자의 비말을 최대한 피하는 법 등이 디테일이 살아있는 매뉴얼”이라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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