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이재웅, 불굴의 혁신가인가 비운의 투사인가

김현아 입력 2020. 3. 9. 05:05 수정 2020. 3. 9. 07:3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할 말은 하는 벤처 맏형..'모빌리티 혁신' 다시 총대 멜까
다음 시절 강행한 '온라인 우표제'
현재 '카톡 알림톡' 모델과 유사
업계 반발에 '국민메일' 자리 뺏겨
타다 좌초했지만 인식 전환 성과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저는 실패했지만, 누군가는 혁신에 도전해야 하는데 사기꾼, 범죄집단으로 매도당해 누가 도전할지 모르겠습니다.” 3월 7일 새벽 1시 21분. 이재웅(52)쏘카 대표가 ‘타다금지법(여객운수자동차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한 시간 반 만에 페이스북에 심경을 밝혔다. 그는 “후배들과 다음 세대, 일자리를 잃을 드라이버들에게 면목이 없다”고 사과하면서도, 정치인들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향해 날 선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기업인을 매도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민낯을 보았다”, “코로나 경제위기에 위기인 교통산업을 지원하는 대신 (국토부는)어떻게 혁신의 싹을 짓밟을까 고민했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이 대표는 소위 ‘타다금지법’ 논란이 가열된 1년여 동안,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검찰에서 형사고발당했을 때도, 소관 상임위에서 법안이 통과됐을 때도, 법사위 문턱까지 넘었을 때도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때가)아니다”라고 호소했고,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한 지금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고 있다.

이런 그를 보고 사람들은 “불굴의 혁신가”라고 치켜세우기도 하고, 논란의 한 가운데에서 소신을 외쳤지만 실패한 “비운의 투사”로 부르기도 하고, 자기 말만 하는 “관종(관심종자)에 불과하다”고 비하하기도 한다.

비운의 투사인가..온라인 우표제, 7년 만에 알림톡으로 부활

그가 ‘비운의 투사’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다음커뮤니케이션 재직 시절 ‘온라인 우표제’ 논란이 있을 때, 직원들 반대에도 밀어붙이다가 국민 메일 자리를 네이버에 뺏긴 선례 때문이다. 온라인 우표제는 스팸메일이 골치 아프던 시절, 메일을 대량 발송하는 기업들에게 실명으로 발송하게 하면서 한 통당 10원을 내도록 한 것이다. 네티즌들 입장에선 여전히 무료인데다 스팸이 줄어 나쁠 게 없었지만 기업들은 반발했고 자사 사이트 회원가입시 다음메일(한메일)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온라인 우표제’는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일반인에게는 무료로 제공하고 카톡으로 안전하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기업을 상대로 ‘알림톡’이라는 유료 서비스를 하는 것과 비슷한데, 당시에는 먹히지 않았다. 다음이 2008년 접은 ‘온라인 우표제’가 ‘카카오 알림톡’이란 이름으로 2015년 재탄생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재웅 쏘카 대표
소통능력 부족은 논란..타다가 만든 인식 전환 정당한 평가 받을 것

‘타다 금지법’은 재석 185인, 찬성 168인, 반대 8인, 기권 9인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국회를 통과했다. 만약 이재웅이 아닌 소통능력 있는 사람이 정부와 국회를 설득했다면 달라졌을까. “이재웅 대표를 만나고 나니 법안을 통과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되려 굳어졌다”고 말하는 국회 의원이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벤처 종사자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모빌리티 분야에선 국토부나 정치권이 택시업계 주장을 받아들여 서비스를 금지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는 기사와 차량을 함께 빌려주는 ‘타다’를 막기 전, ‘풀러스’와 ‘럭시’가 하던 카풀 서비스를 불법으로 만드는 법을 통과시켰다. 카풀을 오전 7~9시, 오후 6~8시로 제한하는 법이었고 결국 사업을 접었다.

그래서인지 기업들은 타다가 법 통과 이후 현행 서비스(타다베이직·타다 어시스트)를 접겠다고 발표했음에도 타다의 기여를 인정하고 있다. 이찬진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는 법안 통과에 대해 “(택시와의 갈등을 끝냈다는 점에서)20대 국회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높게 평가하면서도 “타다는 위대한 변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계기를 만들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역할을 힘들지만 충실히 해줬고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꽉 막힌 국토부가 모빌리티 기업의 사업 진입 장벽인 기여금이나 면허 총량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국내 최대 스타트업(초기벤처)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법 통과 직후 성명을 내고 “타다금지법이 아니라 상생혁신법임을 이제 국토부가 응답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할 말 하는 벤처 CEO 한 명은 필요하다

이재웅 대표는 2008년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를 그만두고 2018년 4월 쏘카 대표이사로 11년 만에 경영일선에 복귀했을 때,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장으로 위촉됐다 4개월 만에 그만뒀을 때, “기존 대기업 위주의 혁신성장 대신 크고 작은 혁신 기업과 함께 하는 게 필요하다. 기업에서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했다.

타다금지법의 국회 통과로 타다의 사업 모델은 바뀔 전망이다. 타다가 모든 사업을 접을지, 택시 면허 기반의새로운 플랫폼 운송사업에 도전할지, ‘타다 프리미엄’ 같은 가맹 사업을 강화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스타트업들은 이재웅 대표가 앞으로도 벤처 1세대 선배로서 할 말은 해 주기를 바란다. 당장은 인정받지 못해도 사회 전체로 보면 혁신의 속도를 앞당기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현아 (chaos@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